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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새로운 유형의 갈등

.. 서양인과 중국인 개종자 및 고용인과 청나라 사이에 사법 관할권을 놓고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표면화하는 동시에 ..  <조너선 D.스펜서/김석희 옮김-칸의 제국>(이산,2000) 139쪽

'표면화(表面化)하는'은 '드러나는'이나 '나타나는'으로 다듬고, '동시(同時)에'는 '함께'로 다듬습니다. "서양인과 중국인 개종자(改宗者)"는 "서양사람과 서양종교를 믿는 중국사람"으로 손질해 봅니다.

 ┌ 유형(類型) : 성질이나 특징 따위가 공통적인 것끼리 묶은 하나의 틀
 │   -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다 /
 │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유형의 한국 여성이다
 │
 ├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표면화하는
 │→ 새로운 갈등이 드러나는
 │→ 새로운 모습으로 갈등이 생겨나는
 │→ 갈등이 새롭게 나타나는
 │→ 갈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불거지는
 └ …

한자말 '유형'을 풀이하는 국어사전은 "하나의 틀"이라고 가리키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것끼리"라고 적어 놓기도 합니다. 풀이말부터 알맞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하며 손쉽지 못합니다. 국어사전 풀이말을 달아 놓은 분들은 국어사전을 찾아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헤아리지 못했고 들여다보지 못했으며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왜 우리 국어사전은 풀이말마저 이렇게 적어 놓고 있어야 할까요. "한 가지 틀"이나 "틀 하나"로 적을 수 없었을까요. "같은 것끼리"나 "똑같은 것끼리"로 적으면 안 되었을까요. 한자말을 즐겨쓰든 한자말로 풀이말을 달든, 옳고 바르게 가다듬을 우리 말투를 버리거나 잊거나 잃어서는 안 될 텐데요.

 ┌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다
 │→ 세 가지로 나누다
 │→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다
 ├ 전형적인 유형의 한국 여성이다
 │→ 으레 볼 수 있는 한국 여성이다
 │→ 가장 한국 여성다운 모습이다
 └ …

우리 스스로 좀더 슬기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결 아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꾸준히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 하나에도 곱고 깊은 믿음을 담고, 말마디 하나에도 너르고 푸근한 믿음을 담으며, 몸가짐 하나에도 따숩고 넉넉한 믿음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생각을 아끼고 네 생각을 아끼며, 내 말을 돌보고 네 말을 돌보며, 내 삶을 북돋우고 네 삶을 함께 북돋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우리 모습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가꾸고, 우리 매무새를 우리 손으로 알차게 여미며, 우리 마음결을 우리 온몸으로 싱그러이 보듬는 땀방울이 우리 말글에 알알이 깃들면 더없이 반갑겠습니다.

ㄴ. 몇 가지 유형의 스케치

.. 내 스케치북들에는 몇 가지 유형의 스케치가 담겨 있습니다 ..  <클레어 워커 레슬리,찰스 E.로스/박현주 옮김-자연 관찰 일기>(검둥소,2008) 80쪽

국어사전에서 '스케치북(sketchbook)'을 찾아보면 '사생첩(寫生帖)'으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사생첩'이란 "사생을 할 수 있게 도화지를 묶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스케치북'이라고만 하지 '사생첩'이라고는 안 하지 싶습니다. '스케치북'을 다듬어 주려면 '그림첩'이나 '그림그리기책'쯤으로는 풀어내 보아야지 싶어요.

 ┌ 몇 가지 유형의 스케치
 │
 │→ 몇 가지로 나눈 밑그림
 │→ 몇 가지 밑그림
 └ …

이 자리에 쓰인 '유형의'는 덜어내 주면 한결 낫습니다. 바로 앞에 '몇 가지'라고 적었기에, 구태여 '유형'을 안 넣어도 됩니다.

보기글은 토씨 '-의'를 붙였기에 말썽이라고 하겠으나, 토씨 '-의'를 붙이지 않은 자리에 쓰인 '유형'도 그다지 알맞지 않다고 느낍니다.

 ┌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다
 │
 │→ 사람을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다
 │→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다
 └ …

"세 가지" 뒤에 무언가 넣고 싶으면 '모습'을 넣으면 됩니다만,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다"처럼 적으면 그만입니다. 아니면, "사람을 세 갈래로 나누다"로 적어 보든지요. 또는, "사람을 셋으로 나누다"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ㄷ. 두 번째 유형의 인간

.. 저는 두 번째 유형의 인간이에요. 그러니 교장직을 사양합니다 ..  <김수정-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달,2009) 79쪽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 줍니다. "교장직(-職)을 사양(辭讓)합니다"는 "교장자리를 받지 않겠습니다"나 "교장은 맡지 않겠습니다"나 "교장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나 "교장은 하지 않겠습니다"로 다듬어 봅니다.

 ┌ 두 번째 유형의 인간
 │
 │→ 두 번째 유형인 사람
 │→ 두 번째 모습인 사람
 │→ 두 번째라 할 사람
 │→ 두 번째 사람
 │→ 두 번째에 드는 사람
 │→ 두 번째에 들어가는 사람
 └ …

한자말 '유형'을 쓰고 싶다면 쓰되,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한자말이 아닌 영어를 쓰든 토박이말을 쓰든 매한가지입니다. 언제나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엉뚱하게 쓰거나 틀리게 쓰거나 어처구니없이 써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내 마음에 따라 쓰는 말입니다만, 내멋대로 뇌까려도 괜찮은 말이나 글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내 느낌을 살리며 쓰는 말입니다만, 제멋대로 휘저어도 괜찮은 말이나 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떠한 놀이를 즐기든 지켜야 할 자리가 있고 맞추어야 하는 틀이 있습니다. 억지스러운 틀이나 고리타분한 굴레가 아니라, 나와 내 이웃을 살피는 틀이요 나와 내 둘레를 헤아리는 이음고리입니다.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틀인 가운데, 내 동무와 이웃을 함께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틀입니다.

말이 되든 글이 되든 언제나 마찬가지인데,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대로 말이 나오고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삶을 꾸리며, 이렇게 꾸리는 삶결대로 말이 터져나오고 글이 샘솟습니다. 싱그러운 삶에서는 싱그러운 생각과 싱그러운 말이요, 슬기로운 삶에서는 슬기로운 생각과 슬기로운 말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우리 이웃을 좀더 널리 살피거나 보듬는 매무새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가 우리 이웃한테 나누거나 펼치는 생각과 말이라는 자리에 들어설 때에는 더더욱 이웃을 살피거나 보듬는 생각이요 말이 됩니다. 저절로. 시나브로. 살며시.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을 살피거나 보듬지 못하는 삶이라 한다면, 우리가 품는 생각과 우리 입으로 터져나오는 말마디란 우리 이웃을 살피지 못하는 말이 되고 우리 이웃을 보듬지 못하는 말이 됩니다.

 ┌ 저는 두 번째 사람이에요
 ├ 저는 두 번째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 저는 두 번째처럼 사는 사람이에요
 ├ 저는 두 번째와 같은 사람이에요
 └ …

사랑스러운 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논문을 쓰고 책을 쓰고 방송말을 하고 신문글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내 짝꿍한테 알려주는 이야기라고 여기면서 논문이든 책이든 방송이든 신문이든 적바림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한테 말씀드리는 이야기라고 헤아리면서 말과 글을 펼쳐야지 싶습니다.

지식만 담는 말이나 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지식만 담는 말이나 글을 쓸 때가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때, 그러니까 지식만 담는 말이나 글이 될 때 이러한 말과 글이 얼마나 부드럽거나 사랑스럽거나 듣기 좋거나 읽기 괜찮은지를 생각해 봅시다. 지식으로만 펼치는 말이나 글이 될 때, 지식만 보여주는 말이나 글일 때, 이러한 말과 글은 누가 듣고 누가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은, 또 우리 아이들은 지식만 받아먹으려고 학교를 다니겠습니까.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지식만 받아먹는 곳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돈만 버는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사귀는 짝꿍은 살갗 부비기만 하는 사랑놀이를 같이 즐길 사람입니까.

삶을 담는 말이요 삶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말을 가꾸려는 마음이라면 삶을 먼저 가꾸어야 합니다. 글을 북돋우고 싶다면 삶부터 북돋워야 합니다. 세상에 쏟아지느니 글쓰기 책이고 말하기 책인데, 겉으로 글과 말을 꾸미거나 가꾼다고 해 보아야, 삶을 꾸미거나 보듬지 않은 다음에는 모두 헛일 헛품 헛땀으로 그칩니다. 삶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말이 오르지 못하고, 삶을 아끼지 못하고는 말을 아끼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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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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