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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원만하고 둥글게

 

..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과 원만히 지내기 위해 모가 나서는 안 되고 둥글어야지요 ..  <유시 노무라/이미림 옮김-사막의 지혜>(분도출판사,1985) 89쪽

 

 "지내기 위(爲)해"는 '지내자면'이나 '지내려면'으로 다듬습니다. "지내야 하니"나 "지내려 할 때에"나 "지낼 수 있도록"으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말하고자 하는 뜻을 살피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알맞게 다듬으면 좋겠습니다. 그냥저냥 쓰는 말이 아닌, 깊이 생각하며 쓰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 원만(圓滿)

 │  (1) 성격이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다

 │   - 원만한 성품 / 그는 성격이 원만해서 친구가 많다

 │  (2) 일의 진행이 순조롭다

 │   -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다 / 쌍방의 원만한 합의 아래 소장이 취하되었다

 │  (3) 서로 사이가 좋다

 │   - 원만한 부부 생활 /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다

 │

 ├ 원만히 지내기 위해서는 (x)

 ├ 모가 나서는 안 되고 (o)

 └ 둥글어야지요 (o)

 

 보기글을 보면,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려면 '모가 나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둥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만'이란 '모가 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고, 또 '둥근'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보기글은 뜻같은 말을 세 가지로 잇달아 적은 셈입니다.

 

 말하는 사람 나름이고 글쓰는 사람 깜냥이니, 이렇게 말한들 저렇게 글쓴들 딱히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말투를 놓고 글쓴이 개성이라 여길 수 있으며, 이러한 말매무새를 가리켜 글쓴이 취향이라 내세울 수 있습니다. 옳게 쓰든 그르게 쓰든, 바르게 쓰든 얄궂게 쓰든 저마다 좋아하는 말투를 살리는 노릇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둥글게 지내려면 다투지 말아야지요

 ├ 모가 나지 않게 지내려면 싸우지 말아야지요

 ├ 사이좋게 지내자면 툭탁거리지 말아야지요

 └ …

 

 둥글게 지내려면 '싸우지 말고' 어울려야 합니다. 모가 나지 않게 어울리려면 '툭탁질을 말고' 지내야 합니다. 사이좋게 함께 살자면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터전에서 둥글게 지내자면 이런 말을 하든 저런 말을 읊든 그리 따지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말로 이 나라에서 모가 나지 않게 살아가자면 이런 글을 쓰든 저런 글을 적바림하든 깊이 들여다보지 않을 노릇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들한테 '의사소통'이란 바르거나 옳거나 착하거나 훌륭하거나 곱거나 살갑거나 싱그러운 말과 글을 알맞게 쓰는 일이 아니라 할 만하니까요. 오늘날 우리들한테는 바쁜 일이 몹시 많고, 마음둘 일이 대단히 많으며, 다른 놀거리 즐길거리에 들일 짬마저 모자라니까요.

 

 우리 삶이 바른 길로 접어들지 않는데 바른 말을 이야기해 보아야 부질없습니다. 우리 삶이 고운 길하고 멀어지고 있는데 고운 말을 들먹여 보아야 덧없습니다. 우리 삶이 착한 매무새를 잃고 있는데 착한 말을 뇌까려 보아야 쓸데없습니다.

 

 말이 말다움을 잃기 앞서 넋이 넋다움을 잃은 이 나라요, 삶이 삶다움을 잃은 우리 나라입니다.

 

 

ㄴ. 앞으로 펼쳐질 미래

 

..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나와 우리 가족, 지훈이, 주호, 홍시를 비롯한 내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  <백성현-당신에게 말을 걸다>(북하우스,2008) 303쪽

 

 '가족(家族)'은 '식구'로 다듬어 줍니다. 아니, '식구'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족'이고 '식구'이고 똑같은 한자말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말밑으로 따진다면 두 낱말은 모두 한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쪽은 일본 한자말이고 한쪽은 한국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면 같은 한자말이지 일본에서 지어서 쓰는 한자말하고 우리가 지어서 쓰는 한자말이 무어 다르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본 한자말 '결혼(結婚)'과 우리 한자말 '혼인(婚姻)'을 뒤죽박죽 쓰고 있으니까요.

 

 우리들이 우리 한자말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우리답게 알맞고 싱그럽게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말밑은 한자일 수 있고 영어일 수 있으며 일본말일 수 있습니다. 옹근 토박이말일 수 있고 나라밖에서 들여온 말일 수 있습니다. 말밑만 따지면서 이 말은 좋네 저 말은 그르네 할 수 없습니다. 말에 묻은 삶을 돌아보며 우리한테 알맞춤할 말을 헤아립니다. 말에 스민 넋을 곱씹으면서 우리 겨레한테 아름다울 말을 찾아나섭니다.

 

 지식으로만 읊는 말이 아니라, 내 살아가는 매무새에 따라서 나누는 말입니다. 머리를 굴리며 뇌까리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이웃과 어우러지는 삶자락에 따라 주고받는 말입니다. 겹말인가 아닌가 하는 대목 또한, 우리가 우리 삶을 얼마나 슬기롭게 돌아보면서 가꾸고 있느냐는 생각을 바탕으로 따지고 살피고 다독이며 어루만집니다.

 

 ┌ 미래(未來) : 앞으로 올 때. '앞날'로 순화

 │   - 미래를 설계하다 / 어린이는 우리 미래의 꿈이다

 │

 ├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나

 │→ 앞으로 펼쳐질 내 나날

 │→ 내 앞날

 └ …

 

 앞으로 올 날을 가리켜 '앞날'이라 합니다. 이 낱말을 한자로 옮기면 '미래'가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도 한다지만, "앞으로 펼쳐질 앞날"이나 "앞으로 올 앞날"처럼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날"이나 "앞날"이라고 말하면 넉넉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앞으로 살아갈 나와 우리 식구"라든지 "앞으로 펼쳐질 내 삶에서 나와 우리 식구"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앞으로는 나와 우리 식구"처럼 말머리를 열어도 됩니다. '앞으로 펼쳐질'이라는 말마디 느낌을 살리면서 "이제부터는 나와 우리 식구"라든지 "오늘부터는 나와 우리 식구"처럼 첫 마디를 적바림해도 되고요.

 

 생각을 슬기롭게 가누고, 말마디를 알차게 여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고, 글줄을 싱그럽게 엮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ㄷ. 폭이 넓은 강

 

.. 우리는 많은 숲과 바다처럼 넓디넓은 호수를 지나고 폭이 넓은 강을 건너갔다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42쪽

 

 '호수(湖水)'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못'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 폭(幅)

 │  (1) = 너비

 │   - 폭이 좁다 / 마을의 어귀에 폭 넓은 개울이 흐르고 / 폭 넓은 통바지

 │  (2) 자체 안에 포괄하는 범위

 │   - 그 사람은 행동의 폭이 넓다

 │  (3) 하나로 연결하려고 같은 길이로 나누어 놓은 종이, 널, 천 따위의 조각

 │   - 치마의 폭을 마르다

 │  (4) 하나로 연결하려고 같은 길이로 나누어 놓은 종이, 널, 천 따위의 조각

 │      또는 그림, 족자 따위를 세는 단위

 │   - 열두 폭 치마 / 한 폭의 동양화

 │

 ├ 폭이 넓은 강

 │→ 너비가 넓은 강

 │→ 넓은 강

 └ …

 

 "높이가 높다"고 말하고, "길이가 길다"고 말하며, "빠르기가 빠르다"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비가 넓다"고 말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높다", "길다", "빠르다", "넓다" 한 마디만 할 때가 한결 어울리며 매끄럽습니다.

 

 ┌ 폭이 좁다 → 너비가 좁다 / 좁다

 ├ 폭 넓은 개울 → 너비가 넓은 개울 / 넓은 개울

 └ 폭 넓은 통바지 → 통이 넓은 바지 / 가랑이가 넓은 통바지

 

 우리 말에는 우리 말다운 느낌과 맛이 있습니다. 서양말에는 서양말다운 느낌과 맛이 있고, 일본말에는 일본말다운 느낌과 맛이 있습니다. 저마다 느낌과 맛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위말을 앞에 넣기보다는, 단위말 없이 "높다", "길다", "빠르다", "넓다"처럼 말하기를 좋아하고, 이런 말투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길 때에도, 이런 우리 말 느낌과 맛을 좀더 깊이 헤아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겹말#중복표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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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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