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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열매로 계란 프라이 해 먹던 시절도 있었지!"

 

내가 제주도로 갓 시집을 왔을 때만 해도 동백나무는 효자 노릇을 했다. 당시 시어머님께서는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계란 프라이나 나물을 무쳐 먹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동백나무는 빨간 꽃 자체만으로도 올레꾼들 마음을 흥분시켰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지가 그러했다. 1870년대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어느 할머니가 방풍림으로 뿌린 씨앗이 지금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남원포구에서부터 동백나무 군락지까지는 6.5km, 1시간 40분 정도를 걸었다.

 

몽돌 자갈길에 털썩- 주저앉으면 그곳이 노천카페 

 

동백나무 숲을 빠져 나와 바닷가 몽돌 길을 걷게 됐다. 동글동글한 몽돌 길은 발마사지에 안성맞춤이었다. 제주의 몽돌은 뚫린 구멍도 각양각색이다. 남편과 나는 넓적한 돌을 밑바닥에 깔고 돌탑을 쌓았다. 그 돌탑을 하나하나 쌓아 올릴 때마다 정성을 들여야만 했다. 역시 탑은 정성이 최고다.

 

그 돌탑 옆에서  준비해간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제주올레에서는 길을 걷다가 주저앉으면 그곳이 곧 카페가 된다. 바닷가 몽돌길에 털썩- 주저앉아 마시는 커피는 여느 카페보다 더한 운치가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천정 없는 하늘이 보이는 바닷가 노천카페랄까. 

 

 

부자마을 위미리, 한때 해군기지로 긴장

 

한때 제주 남쪽 위미리 마을은 부자마을로 통했다. 감귤원을 하는 농가가 많아, 예전에는 감귤나무 하나만으로도 아이들 대학을 가르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지금도 이 남원 위미리에서 생산하는 감귤은 당도가 높아 많은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소나무 숲 터널을 벗어나 보이는 위미항에 도착하자, 우리는 제주지역 이슈인 해군기지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위미 마을 사람들도 해군기지 때문에 긴장 꽤나 했었는데..."

 

말을 아끼며 걷던 남편이 오랜만에 던진 말은 해군기지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남원읍을 긴장시켰던 해군기지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지 않은가. 위미항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빨간 등대는 한때 해군기지 건으로 어수선했던 마을주민들의 안타까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직된 모습이다.

 

"조배머들코지 기암괴석은 진짜 이무기였을까?"

 

위미항을 바라보며 서 있는 기암괴석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배머들코지. 위미항 쪽으로 뻗은 조배머들코지라는 기암괴석이 올레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하늘을 비상하는 용처럼 꿈틀거리는 기암괴석. 제주의 돌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배머들코지 기암괴석 역시 안타까운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일제시대 일본 한 풍수학자의 꾐에 '큰 인물이 나올 곳'으로 맥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마을 유력자를 거짓으로 꾀었다고 한다. 즉, 바위가 김씨 집안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형상이므로 바위를 파괴해야 우환이 없다고 한 것이다. 김씨는 기암괴석을 파괴했으며 이때 이곳에서는 이무기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주의 길을 걷다 보면 이처럼 일제시대 맥을 끊기 위해 저질렀던 만행이 곳곳에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암괴석은 진짜 이무기였을까?"

 

조배머들코지 안내 표지석을 읽어 내려가면서 기암괴석을 바라보니 정말이지 여러 해 묵은 구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바다가 지척인 위미 해안로 길, '섬집아기' 생각나다  

 

일제시대 어업 전진기지였던 위미항은 시골마을 항구 치고 꽤나 넓었다. 수십 여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등대까지 이어지는 방파제를 스님 한 분이 걷고 있었다.

 

이렇듯 제주올레 5코스는 바다올레와 마을올레가 반복되면서 바다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이었다. 더욱이 바닷가 어귀마다 크고 작은 포구가 많아 바람한 점 없이 아늑하고 한적한 포구모퉁이에서 쉬어 갈수 있음은 제주올레만의 특별함이 아닌가 싶다.  

 

'위미 해안로 400번길', 바다를 동경해온 내게 그 길 동경의 길이었다. 그리고 바다가 지척인 그곳사람들이 부러웠다. 바닷가 주변 집들은 아주 값 나가는 저택은 아니다. 아주 협소한 슬레이트집이다. 하지만 그저 창문 열면 바다가 보이고 대문에서 몇 발자국 옮기면 바다로 통하는 동요 '섬집 아기'가 생각나는 집이다. 그런데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행복해 보일까.

 

'물이 마른 노천탕 넙빌레'... 풀어야 할 숙제 무엇일까  

 

마을로 통하는 또 하나의 코지(곶)가 있었다. 그곳이 바로 신우지 코지. 신우지 코지는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한다. 밤에 파도 소리만 들어도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 하니 그만큼 신령스런 코지가 아닌가. 그러나 썰물 때라 갯바위에서 멀어진 바닷물은 잔잔할 뿐이었다. 

 

지금은 휴게소로 변한 노천탕 넙빌레, 넙빌레란 제주어로 넓은 자갈밭이란 말로 자갈과 돌이 깔린 곳이다. 위미항에서 1km 떨어진 넙빌레는 한때 해군기지 유치로 의견이 분분했던 자갈밭이다. 용천수가 차갑고 깨끗하여 마을 사람들의 피서지로 사용했다는 넙빌레는 어찌된 일인지 물이 말라 버렸다. 남탕이라 써진 노천탕으로 내려가 보니 위미리 앞에 떠 있는 섬 지귀도가 아스라이 떠 있었다.

 

울퉁불퉁 솟아있는 넙빌레 검은 갯바위로 내려가 보았다.  검은 현무암 깔린 넙빌레는 해군기지로 떠들썩했던 마을 사람들 마음을 알는지.

 

동백나무군락지에서 마을올레를 따라 위미항을 거쳐 넙빌레까지 이어지는 올레는 제주의 남쪽 사람들이 채취가 묻어나는 길이었다. 그 길은 올레꾼들에게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숙제가 제시하는 미래를 향한 길이었다.

 

ⓒ 김강임

 


태그:#올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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