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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보수논객 조갑제씨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아닌 자살로 표현해야'라는 주장을 했다. 진보정당인 진보신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추모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는데, 당원들 중 일부가 이에 반발, 탈당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피하는 단체들도 보인다.

 

<대학생사람연대>는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연대'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진보학생운동이다. 그래서 고인의 재임 시절 장애인교육지원법 등 많은 지점에서 싸웠다. 그러나 조갑제 식의 고인에 대한 모독, 일부 진보진영의 도식적 접근과 고의적 회피에 반대하며 국민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추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7년이 낳은 대통령, 87년에 배반당한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욕의 한국보수정치의 진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지역주의정치를 깨고자 몸소 부산에서 출마한 것, 권위주의 타파와 3권 분립 등을 위해 노력했던 것, 자신의 반대파라도 내쫓지 않은 점 등 이전의 정치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했다. 그것은 그의 삶에서도 단초를 엿볼 수 있다. 81년 부림사건(81년 이적표현물을 학습했다는 이유로 민주인사 22명이 구속된 사건)의 변호를 맡기도 했고, 5공화국 청문회에서 전두환을 꾸짖기도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사회에서 87년 항쟁으로 표현된 형식적 민주주의의 전진을 수렴한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한계에 부딪혔던 지점은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개발주의, 한미FTA, 삼성공화국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 이후의 문제였다. 그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87년의 한계가 노무현도, 우리사회의 진보도 붙잡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민주주의의 문제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포스트 노무현'이 한국정치사의 중요한 과제였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과제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여러 가지 성격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이명박대통령은 "우리가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 국민이 화합하고 단합해서,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렇듯 이명박대통령이야말로 역풍을 의식한듯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들이 침묵하고 조용히 있는 것이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것일까?

 

이명박 정권은 왜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나?

 

건설자본의 이득을 위해 철거민이 죽어야 했던 용산참사는 한국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와 형식적 민주주의 후퇴가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비극이었다. 30원의 임금인상이라는 경제적 문제와 1인 시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파괴는 박종태라는 한 화물노동자의 죽음을 야기했다.

 

당연히 민중들의 저항이 일어났고, 이명박 정권은 강압적 공권력 언론장악이라는 이미 우리사회가 청산했어야 할 과거의 낡은 유물로 국민들을 통치하고자 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노무현시대의 '퇴행적 청산'이었다. 이명박은 권력을 잡자마자 노무현 정권의 인사들을 숙청했다. 그리고 그 최종지점에 노무현이 있었다.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은 파괴되었고, 권력의 시녀가 된 사법부가 행정부를 대신해 그를 압박했다.

 

이명박 정권하의 민주주의의 후퇴가 바로 고인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그는 그답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권력에 꼬리내리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루어놓았다고 자부하는 그의 시대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고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오히려 한나라당. 행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

 

한나라당은 그의 유지(遺志) 중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를 근거로 그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이미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누지 마라는 강변이다. 그렇기에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가 내세웠던 정부의 이름이 '참여정부' 아니었던가? 노무현대통령의 한계였던 경제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정치참여를 이루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 원망할 대상이 없는 우리의 대안정치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대학생사람연대>는 국민들에게 감히 이렇게 주장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애도하자.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애도를 넘어서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진정한 정치를 실현하는 것, 우리가 노무현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정치인 노무현을 가장 노무현답게 기억하는 방식이다. 인간 노무현은 슬픔을 머금고 보내자.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 그의 시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우리역사의 커다란 짐으로 안고 가자.

덧붙이는 글 | 박정훈기자는 대학생사람연대 대표입니다.
이 글은 대학생사람연대 정치신문과 블로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노무현서거, #한나라당, #이명박,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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