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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을 잊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도 나흘째로 접어들었습니다. 봉화마을의 조문객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전국 각지에 분향소가 만들어졌고 조문을 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모두 애도의 심정에 빠져 있는 이때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정부에서는 PSI에 전면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예식장에 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는 대뜸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죽었대.' 합니다. 거짓말 같은 소리에 텔레비전을 켜니 정말이랍니다. 머리가 멍하더군요. 그리고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서거 소식을 접하곤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동생네 모심기를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내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가신 분의 생각뿐입니다. 5공 청문회의 때의 모습에서 2002년 대선의 모습과 문성근의씨의 이야길 듣다 주루륵 눈물을 흘렸던 그 모습. 수많은 돼지 저금통, 대통령에 당선 뒤 그를 환호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때 너무 기뻐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행복해했던 모습들이 구름처럼 스쳐갔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평검사들과 대화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저런 것들하고 대화를 하실까. 좀 더 힘있게 밀어붙이지. 그런 한편으론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준다는데 왜 저들은 저리 집단적인 반발을 하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걸까. 그래 권력 때문이겠지. 기득권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아마 이건 당시 텔레비전을 봤던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이란 사람은 평생을 힘 있고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과의 싸움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끝없는 도전을 했고 실패를 맛봤지만 한 번도 절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하는 시간에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그 도전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과 어울렸고 농사를 지었고 사랑스런 손주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길을 달리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그런 모습은 지금까지 어떤 전임 대통령에게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봉화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싫었나 봅니다. 현직 대통령보다 더한 전임 대통령의 소박한 인기가 눈에 가시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먼지를 털기 시작했고 욕을 하기 시작했고 그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의 언론들은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은 그 언론을 이용해 올가미로 손과 발 그리고 그의 목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평생 도덕적 가치와 양심의 가치를 목숨보다 더 큰 신념으로 여기고 살아왔는데 세상은 그를 갈기갈기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발가벗기고 난도질당하다가 세상을 버렸습니다. 자신을 버렸습니다. 실패가 아닌 딱 한 번의 절망에 그는 세상과 멀리 한 것입니다.

 

그의 절망은 깊고 깊었을 것입니다. 온갖 상처를 입은 그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들을 살리려 했습니다. 그의 지난 삶을 떠올려 보면 늘 그랬듯이 그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 것도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그는 힘없고 빽없는 이 나라의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자들의 오만함과 부조리를 깨트리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알기에 그의 서거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애통한 심정을 가지고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대통령의 영정 사진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연들을 적으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도 수많은 추모의 글과 애통과 회한의 글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심하게 아려 옵니다. 그분 생각만 하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국민께 죄송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분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한나라의 전직 대통령 하나조차도 지키지 못한 우리는 면목이 없습니다. 항상 국민을 생각하시고 착하신 우직함으로 모두가 맞다고 했을 때도 혼자서 '아니다'고 하신 그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잃고서야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왜 살아 계실 적에 그 소중함을 못 느꼈을까요. (……)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글의 한 부분입니다. 정말 우리는 몰랐습니다. 원망도 했습니다. 갑작스레, 원통스레 떠난 뒤에야 그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간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픕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신세를 진 건 가신 분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행복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렇게 아플까요.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 그는 당신이 살아있으면 헤어릴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억누르고 압박하고 쇠사슬로 죄어 옴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그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만 것입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그런데 그는 가면서도 남은 자들을 걱정합니다. 슬퍼하지 마라고요. 미안해하지도 말고 원망도 하지 마라고요.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인 것처럼 나고 자란 봉화산 자락의 한 자연이 되겠다고 하면서요.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요. 운명이 아닌데 운명이라고 하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의 운명을, 비극적인 운명을 만들어낸 자들은 떵떵거리며 있는데  말입니다.

 

그의 죽음 앞에 나는, 우리는 모두 죄인된 심정일 것입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척박한  이 나라에 작은 희망과 기쁨을 주고자 했던 대통령은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이제 남은 자들은 전직 대통령 하나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마음 참 오래오래 삭일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겠지만요. 잠시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요. 따라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척 하는 자들의 그 거짓 눈물을.


태그:#노무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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