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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자랑, 나의 희망

 

.. 어린 영혼들과 만나는 글쓰기는 나의 자랑이었고,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  《강무지-다슬기 한 봉지》(낮은산,2008) 5쪽

 

 '영혼(靈魂)'은 '넋'이나 '얼'로 고쳐 줍니다.

 

 ┌ 나의 자랑이었고

 │

 │→ 내 자랑이었고

 │→ 나한테 자랑이었고

 │→ 나로서는 자랑이었고

 └ …

 

 글을 쓰는 분이 부쩍 늘면서 글투가 많이 퍼집니다. 글말이 입말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글말과 입말이 섞이면서 두루뭉술해지거나 뒤죽박죽이 되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말하듯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을 해야 알맞습니다. 말과 글이 동떨어지지 않아야, 글과 말이 남남이 되지 않아야 올바릅니다. 말을 할 때 한자말이라 하여 한자를 밝히면서 말할 수 없습니다. 한자를 밝혀 준다 한들 뜻을 제대로 새길 수 없습니다. 알파벳을 밝히며 영어를 쓴다고 하여 좀더 꼼꼼하고 또렷이 우리 느낌을 나타낼 수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말을, 프랑스말을, 덴마크말을, 폴란드말을, 저마다 알파벳으로 어떻게 적는가를 이야기해 준다 한들,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리둥절해지기 일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바깥말을 써야 하는 자리라 한다면 쓰되, 손쉽게 알아듣도록 풀어내어야 올바릅니다.

 

 그래서, 입으로 말할 때 쓰는 말은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쓸 만한 낱말을 골라서 쓰게 되는가를 돌아보는 자리가 되곤 합니다. 거꾸로, 글을 쓸 때에는 글쓴이 느낌과 높낮이를 꾸밈없이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글쓴이로서는 속으로 이야기를 건네듯 글을 쓰는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아무 느낌 없이 읽어버릴 수 있어요.

 

 ┌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

 │→ 내 희망이었습니다

 │→ 나한테 희망이었습니다

 │→ 나로서는 희망이었습니다

 └ …

 

 요즈음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운데 '글을 짓는 솜씨'만 키우고 있지 않느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을 꾸미는 재주'는 키우지만, 읽는 사람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거나 새겨지도록 추스르는 분은 얼마나 되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낱말을 알맞춤하게 고르거나 살피는 눈매를 기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말투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추스르는 손길을 닦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자기 말씨를 가꾸거나 보듬는 매무새를 익히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자기 말매무새를 한껏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손길을 못 뻗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맞춤법도 틀림없이 배울 대목이지만, 맞춤법을 넘어서는 '우리 말과 삶'을, 또 '우리 글과 사람'을 깊이깊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말과 삶을 배우지 않고서 쓰는 글이란 얼마나 맥알이가 없습니까. 우리 글과 사람을 배우지 않고서 쓰는 글이란 얼마나 우물에 빠진 채 헤어나지 못하는 셈입니까.

 

 ┌ 내 자랑이었고 내 꿈이었습니다

 ├ 내 자랑이자 꿈이었습니다

 └ 내 자랑이면서 꿈이었습니다

 

 글쟁이가 늘고 말쟁이가 늡니다. 새로운 책이 쏟아지고 새로운 교수님과 학자님이 태어납니다. 수많은 논문이 도서관에 꽂히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사가 인터넷과 신문 방송에 떠돕니다. 그러나 말다움을 갖춘 말이란, 글다움을 갖춘 글이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얼을 차근차근 북돋우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글이란 그렇게 어렵고, 우리 넋을 두루두루 끌어올리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말이란 그렇게 힘들까 궁금합니다.

 

 ┌ 나한테 자랑이었고 꿈이었습니다

 ├ 나로서는 자랑이자 꿈이었습니다

 └ 나한테 자랑이 되고 꿈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도 될 법한데, 조금이나마 마음을 기울여 주는 말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살짝살짝 마음을 쏟아 주어도 될 성 싶으나, 살짝살짝 마음을 쏟아 주는 글을 찾아 읽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말감을 깊이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라면, 자기 말씨와 말투도 깊이 돌아보아 준다면 더없이 반가우련만. 글감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쓰는 글이라면, 자기 글투와 낱말도 꼼꼼히 가다듬어 준다면 그지없이 좋으련만.

 

 나와 너와 우리가 어우러지는 삶터이고, 내 자리와 네 자리와 우리 자리가 따로 있지 않은 삶터이며, 내 마음과 네 마음과 우리 마음이 다 다른 테두리에서 만나는 삶터입니다.

 

 서로를 잇는 고리를 튼튼히 여미어 준다면 삶과 넋과 말이 모두 알뜰살뜰 이어갑니다. 서로를 맺는 끈을 단단히 동여 준다면 삶과 넋과 말이 모두 아름다이 이어집니다. 노동운동이 환경운동과 이어져 있고, 교육운동이 사회운동과 이어져 있으며, 역사읽기가 문화읽기와 다르지 않은 가운데,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은 함께 나아가야 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과 글을 어떻게 써야 할는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 생각을 펼쳐야 할는지, 어떻게 자기 뜻을 나누어야 할는지 스스로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생각을 바치지 않기에 길을 열지 못하고 길을 뚫지 못하며 길을 마련하지 못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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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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