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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 《쌍동밤》 《좁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 들에 그림을 그렸으며, 앞으로도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  (어느 책 날개에 적힌 소개글)

 

 책을 살 때면 이 책을 쓰고 그리고 엮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피곤 합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서 나누려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려 함께하려 하는지 궁금하니까요. 예전에는 이런 글이 없는 책이 많았는데, 요사이는 거의 모든 책에 이와 같은 글이 곁들여집니다. 짤막한 몇 줄짜리라 하더라도, 글쓴이나 그린이하고 읽는이가 만납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면서 좀더 깊이 들여다보거나 껴안게 됩니다.

 

 ┌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

 │→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 좋은 그림을 그리는 일에

 │→ 좋은 그림 그리기에

 └ …

 

 좋은 그림 한 점만큼, 좋은 느낌이 우리한테 건네지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한 마디만큼, 좋은 생각이 우리한테 옮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말 한 마디를 조금 더 가누어 볼 수 있을 때, 글 한 줄을 살짝이나마 더 돌아볼 수 있을 때, 우리한테 작고 낮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고운 사랑과 튼튼한 믿음이 시나브로 배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각 한 줌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한테 따스히 베풀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 걸음씩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한 가지씩을. 많이도 적게도 아닌 하나씩을. 그림 한 장을, 글 한 줄을, 생각 한 줌을, 사랑 한 번을.

 

 

ㄴ. 소통구조의 확립을 위한 사업

 

.. 서구의 사전 편찬사는 근대적 소통구조의 확립을 위한 모국어 정리 사업이 어떻게 수행되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  《최경봉-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80쪽

 

 '위하다'를 섣불리 쓰는 사람치고 쉬운 말을 쓰는 사람을 거의 못 봅니다. '-의'나 '-적'을 함부로 쓸 뿐 아니라, 수많은 어려운 낱말을 거침없이 쓰고 맙니다. 꼭 한자말만이 아니며, 서양말만이 아닙니다. 말투와 말씨와 말결을 살뜰히 추스르는 모습을 보기가 꽤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말 한 마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그마한 곳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마음이 못 되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따스히 보듬는 마음결이 못 되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 한 마디 알뜰히 다루고, 글 한 줄 살뜰히 손질하는 매무새가 될 때 비로소 말이며 글이며 아름다워집니다만, 우리 삶자락 모든 자리에서도 작은 일 하나부터 고이 여기고 애틋하게 다룰 때 비로소 삶이 아름다워집니다만, 우리들은 너무 바쁩니다. 너무 바빠 작은 자리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쁘고 고단하여 대충대충 어영부영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삶이든 일이든 생각이든 놀이든 말이든 다르지 않습니다만. 언제나 같은 흐름이요 줄기요 뿌리입니다만. 하나부터 알차게 여미어 둘과 셋과 열과 백까지 알차게 엮어나가려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맙니다.

 

 ┌ 확립을 위한

 │

 │→ 확립하려면

 │→ 세우려면

 │→ 일으켜세우려는

 │→ 만들려는

 │→ 짜려는

 └ …

 

 "서구(西歐)의 사전 편찬사(編纂史)는"은 "서양에서 사전을 엮어 온 역사는"으로 다듬습니다. "근대적 소통구조(疏通構造)의 확립(確立)을 위(爲)한"은 "새로운 사회와 삶에 알맞는 틀을 세우려는"으로 손봅니다. "모국어(母國語) 정리(整理) 사업(事業)이"는 "겨레말 갈무리가"로 손질하고, '수행(遂行)되었나'는 '이루어졌는가'로 손질해 봅니다. 통째로 풀어쓴다면, "서양에서 사전을 만들어 온 발자취는 새로운 사회와 삶에 알맞는 틀을 세우려는 겨레말 갈무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쯤 됩니다.

 

 이렇게 풀어서 고쳐써 보기는 하는데, 글쓴이 생각이나 뜻이 얼마나 잘 나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당신 말투와 말결과 말씨를 가다듬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근대적 소통구조'란 무엇이고, '근대적 소통구조의 확립'이란 또 무엇이며, '근대적 소통구조의 확립을 위한 모국어 정리 사업'은 또또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곱씹고 되씹으면서 풀어내 주면 더없이 반갑겠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말로는 이렇게밖에 나타낼 수 없는가 궁금합니다. 이렇게 쓰여진 글을 머리카락 쥐어뜯으면서 읽어내야만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이와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이와 같은 글 때문에 책 하나가 얼마나 덜 읽히고 덜 나누어지게 되며 덜 함께하게 될는지를 헤아리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모쪼록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우리 생각바탕이 되어 준다면 기쁘고 반가우련만, 이런 날을 언제쯤 맞이할 수 있을까 알지 못하겠습니다.

 

 

ㄷ. 그를 위하는 마음

 

.. 또 상대에게 지적을 할 때도 내 분별심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  《법륜-붓다 나를 흔들다》(샨티,2005) 58쪽

 

 "상대(相對)에게 지적(指摘)을 할"은 "다른 사람한테 무엇을 알려줄"이나 "다른 이한테 무슨 말을 할"이나 "옆사람한테 가르쳐 줄"로 다듬어 줍니다. '분별심(分別心)'이란 "분별하는 마음"일 텐데, 이 자리에 쓰인 '분별'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글흐름을 살펴서 "나 때문이 아니라"나 "내 마음 때문이 아니라"쯤으로 손질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 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 그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 …

 

 "너를 위해 한 일이야"나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같은 말을 흔히 듣습니다. 술자리에서도 "위하여!" 하고 외칩니다.

 

 ┌ 너를 위해 한 일이야

 │

 │→ 너 때문에 한 일이야

 │→ 너를 생각해서 한 일이야

 │→ 네가 걱정되어 한 일이야

 └ …

 

 "그것을 위해서라면"은 "그것 때문이라면"이나 "그것을 생각한다면"으로 다듬어 봅니다. 그렇지만, 술자리에서는 "위하여!"를 달리 고치기 어렵습니다. "위하여!"라고 외칠 때에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를 줄여서 뒷말만 외칠 텐데, 앞말만 따서 "우리 모두를!"이라 외쳐도 괜찮으리라 보기는 하지만, 글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기에 털어내야 한다고 그렇게들 꼬집는 낱말 한 마디도 거의 못 고치거나 안 고치는 우리들인데,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히면서 외치는 한 마디를 고칠 수 있을는지요. 술 한잔 걸치며 해롱해롱거리는 우리들이 우리 말 한 마디를 보듬을 수 있을는지요. '오라이'나 '만땅'조차 털어내지 못하는 우리들이 이런 데까지 마음을 쏟아 줄 수 있을는지요. 그저 예부터 해 오던 대로 그냥 쓰지 뭘 골치아프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시간 빼앗기느냐고, 더 빨리 더 많이 돈벌 생각이나 하지 뭐하느냐는 핀잔이나 들을 노릇이 아니온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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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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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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