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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도로가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 유카탄 정글 도로 곧게 뻗은 도로가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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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탄 반도의 중심도시인 메리다를 떠난 지 사흘째. 길 가다 만난 조셉은 친절했다. 전날 밤 시골 경찰서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더랬다. 물만 나와도 감사하다고 생각되는 노후한 화장실에서 어찌어찌 샤워도 해냈다. 수건이 없어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냈지만 안 씻는 것보다야 백 번 나은 일이다. 허기는 이곳의 맛좋고 영양가 풍부한 과일로 달랬다. 이러니 몰골자체가 보릿고개다. 정글의 이름도 모를 작은 마을에서 인터넷방 겸 작은 슈퍼를 경영하는 조셉을 만난 건 그래서 행운이다.

그의 따뜻함이 유카탄 자전거 여행의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 고마운 친구 조셉 그의 따뜻함이 유카탄 자전거 여행의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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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까지 딸린 애 아빤데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하지만 의젓함은 나와 견줄 바가 아니다. 인터넷 할 생각으로 들어간 내게 그는 빵부터 내어 왔다. 흠칫 놀라는 내게 무료니 그냥 먹으란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간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자 그는 다시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조셉의 가게는 현대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혁신과 마케팅이 없다. 인터넷 가게가 독과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공급물량을 무기로 가격횡포를 일삼지도 않는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가게 안에 모든 자원을 무한 공급하겠다며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꼭 와서 인터넷도 하고 여행에 필요한 쥬스와 과자도 챙겨가라며 단단히 일러주는 조셉. 전날 밤 경찰서 마당 찬 바닥에 자게 했던 게 영 마음에 걸렸나 보다. 나는 그의 친절을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 그의 집에서 묵자는 것을 정중히 거절했던 것이다.

수강생 3명이지만 열정 하나로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한글 수업 수강생 3명이지만 열정 하나로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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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아래 스페인 어로 음을 달았다.
▲ 또박또박 한글 아래 스페인 어로 음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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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진입 나흘 째. 한낮의 더위와 허기를 단번에 날릴 방도를 찾던 중 어느 허름한 과일 가게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한 통이나 1kg이 아닌 수박 한 조각과 망고 하나, 파인애플 반개를 일일이 흥정하는 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쫌생이’ 캐릭터가 된다. 그런데 파리 날리는 가게 안 과일박스 위에 걸터앉아 우적우적 과일을 씹던 중 또 한 번 귀가 솔깃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정글 안에 한국인이 산다는 것이다. 다니면서 참 놀랄 일도 많다. 

현지 유치원을 경영하는 한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토요일은 한글수업이 열린단다. 유카탄 반도의 어느 이름모를 해안 도시에는 단 한 가정뿐인 선교사 가족이 살고 있다. 또다른 한국인인 그가 강의하는 수업에 참관했다. 수강생은 달랑 세 명. 거기에는 심지어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짧은 수업을 위해 차로 한 시간 반이나 달려오는 열정을 보인다.

유카탄 반도에는 1세기 전 대양을 건너 온 한인 후손들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다행히 열악한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 자기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현지화 되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그나마 아직 한국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라도 한국 문화를 전하기 위한 노력이 힘겹게 경주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나 단체의 후원 없는 개인적 열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명의 선교사는 유카탄 반도 어느 작은 마을에 가족과 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 강의를 하러 차를 몰고 온다.
▲ 한글 강의 무명의 선교사는 유카탄 반도 어느 작은 마을에 가족과 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 강의를 하러 차를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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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일본인이다.
▲ 학생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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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탄 어느 한인 후손의 집에 방문해 이틀 간 묵었을 때 일이다. 외관은 영락없는 한인이고, 집 안에는 이런저런 한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장식물들이 있었으며 한 형제로 반갑게 맞아준 한국적인 정이 남아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감정표현에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도 그것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오는 안타까움과 서운함(그들에게 느끼는 것이 아닌)이 아직도 마음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집안 곳곳에 태극기와 한복 입은 인형, 한국 풍경 사진 등 우리 정서를 함의한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 한인 후손 집 집안 곳곳에 태극기와 한복 입은 인형, 한국 풍경 사진 등 우리 정서를 함의한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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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사흘 간 쉬는 동안 수업 시간에 만난 꼬마신사, 꼬마숙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천사 다름 아니다. 어찌나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인물 사진의 8할을 할당할 정도로 특별히 아끼는 내게 이 조그만 개구쟁이들과의 교제 시간은 아무 근심없이 순간을 즐기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깊은 눈망울과 허물없는 장난, 그리고 언제든 내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의 체온은 나를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귀여운 멕시코 아이.
▲ 미소 귀여운 멕시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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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여자아이가 유난히 날 따르던 녀석이었다. 사진 찍은 후 유치원 모든 아이들과 프리허그를 했다. 프리허그 동영상은 멕시코 마지막 기사에서 공개 예정.
▲ 유치원 커플? 왼쪽 여자아이가 유난히 날 따르던 녀석이었다. 사진 찍은 후 유치원 모든 아이들과 프리허그를 했다. 프리허그 동영상은 멕시코 마지막 기사에서 공개 예정.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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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신나게 사진도 찍고, 여행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프리허그(Free Hug)를 하게 되었다. 유난히 나에게 안기던 한 녀석만 해 주기가 마음에 걸렸는데 50여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어느 순간 열을 이루더니 가슴팍에 안긴다. 따뜻했다. 행복했다. 봄 햇살 아래 병아리들의 삐약삐약 소리처럼 앙증맞고 생기가 넘쳐흘렀다. 며칠 쉬고 떠나는 나에게 두 팔을 벌려 불러주는 노래의 뜻은 잘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천사들의 합창이었다는 것이다.

단조로울 것 같았던 일주일간의 메리다 라이딩을 무난하게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만남은 기분 좋은 긴장을 일으키게 되고, 엔도르핀을 분비시키며, 여행을 하는 본질적 이유를 상기시켜 준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지.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 정글이 끝날 때까지 계속 달린다. 저기 멀리서 진한 카리브 해 냄새가 난다. 드디어 칸쿤이 보인다.

One way!
▲ 정글 도로 라이딩 On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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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멕시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유카탄, #라이딩인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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