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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테이블(table) 1 : 협상테이블

 

.. 올브라이트 여사가 세르비아 측의 거부를 자극한, 랑부예 협상테이블에서 제안된 원래의 거래는 코소보인들에게 지금 누리는 것과 같은 보다 실질적인 자율권과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  <전쟁이 끝난 후>(이후, 2000) 16쪽

 

“세르비아 측(側)의 거부(拒否)를 자극(刺戟)한”은 어딘가 얄궂습니다. 뜻이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세르비아 쪽이 거부하도록 건드린”이나 “세르비아사람들이 발끈하도록 한”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제안(提案)된’은 ‘나온’으로 손보고, “원래(元來)의 거래(去來)”는 “처음 맺은 다짐은”으로 손보며, ‘코소보인(-人)’은 ‘코소보사람’으로 손봅니다. “지금 누리는 것과 같은 보다 실질적(實質的)인 자율권과”는 “지금처럼 자율권과”나 “지금과 같은 자율권과”로 손질하고, “허용(許容)하는 것이다”는 “누리게끔 하는 일이다”나 “누리도록 하겠다고 했다”로 손질합니다.

 

 ┌ 테이블(table) : ‘상’, ‘식탁’, ‘책상’, ‘탁자’로 순화

 │   - 테이블 위에는 선인장이 놓여 있고

 │

 ├ 협상테이블

 │→ 협상자리

 │→ 협상마당

 └ …

 

 ‘협상(協商)’이라는 낱말도 털어내고 “랑부예에서 문제를 풀고자 만났을 때”나 “문제를 풀고자 랑부예에서 만난 자리에서”처럼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 ‘협상’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협상자리’나 ‘협상마당’으로 적어 주고요.

 

 ┌ 테이블 위에는 선인장이 놓여 있고 (x)

 └ 받침대(책상)에는 선인장이 놓여 있고 (o)

 

 영어 ‘테이블’은 국어사전에 실리기는 하지만, 말풀이를 보면 ‘순화대상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어 낱말은 걸러지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쓰임새를 넓힙니다. 밥상이든 책상이든 받침대이든 어디이든, 우리는 우리 물건이름을 쓰면 되지만, 우리 물건이름을 안 쓰고 그예 영어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겨레옷이 아닌 서양옷을 입고, 겨레집이 아닌 서양집에서 살며, 겨레밥이 아닌 서양밥을 먹는데다가, 겨레일이 아닌 서양일을 하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은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꾸리는 삶이라기보다 서양 문물을 해바라기하듯 좇기만 하는 삶이기 때문일까요.

 

 한정식집 같은 밥집이든 레스토랑 같은 밥집이든, 밥집 일꾼은 모두들 “몇 번 ‘테이블’ 주문이요!” 하고 말합니다. “몇 번 ‘자리’ 주문이요!” 하는 분도 없지는 않으나, 너무 적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만, 앞으로는 ‘자리’라는 말은 눈녹듯 사라지고 ‘테이블’이라는 낱말만 덩그러니 남지 않으랴 싶어요. 생각을 담는 말은 삶에 따라서 달라지고, 삶이 고스란히 생각이 되어 말로 스미기에, 우리 말이 설 자리는 조금도 없습니다.

 

 

ㄴ. 테이블(table) 2 : 옆 테이블

 

.. 혼자 앉아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  <강명한-포니를 만든 별난 한국인들>(정우사,1986) 18쪽

 

 우리는 밥상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식탁(食卓)’이란 말이 나타나 ‘밥상’은 밀려났고, 보기글에서 보듯 ‘테이블’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

 │

 │→ 옆자리에서 하는 이야기

 │→ 옆에서 하는 이야기

 └ …

 

 가게로 차린 곳이든, 일터에서 마련한 곳이든,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앉을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를 살핍니다. “자리가 없나?” “여기 자리 있어요.” 이렇게들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테이블 비었나요?” 하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썩 드물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 해 두 해 갈수록 ‘테이블’을 입에 담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가게 일꾼뿐 아니라 손님 스스로 ‘테이블’을 외고 있습니다.

 

 

ㄷ. 테이블(table) 3 : 저쪽 테이블

 

.. 일본인 기술자 같은 손님 두 명과 중공인 10여 명이 저쪽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  <중공유학기>(녹두,1985) 108쪽

 

“일본인(-人) 기술자”는 “일본 기술자”로 고치고, ‘중공인(-人)’은 ‘중공사람’으로 고쳐 줍니다. “10여(餘) 명(名)이”는 “열 사람 남짓이”로 다듬거나, 앞말과 이어 “중공사람 열 남짓이”로 다듬어 줍니다.

 

 ┌ 저쪽 테이블에 둘러앉아

 │

 │→ 저쪽 상에 둘러앉아

 │→ 저쪽 자리에 둘러앉아

 │→ 저쪽에 둘러앉아

 └ …

 

 “이것아, 상도 안 펴고 뭐해?” 하고 우리들 어머님은 말씀해 왔습니다. “가만 앉아서 놀지 말고 상이라도 펴.” 하고도 말씀하지요. 밥을 먹을 때는 밥상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책상입니다. 걸터앉으면 걸상이에요. ‘상(床)’은 한자이지만, 한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 손님이 와서 술병을 올려놓으면 술상이네요. 밥상, 책상, 걸상, 술상, 찻상 …….

 

 우리는 예부터 ‘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자리’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그냥저냥 “저쪽에 둘러앉아”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고 가리키고 나타내고 알아들으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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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외국어#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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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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