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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끼나와 시정권자인 미국이 총칼과 불도저를 앞세워 주민을 몰아내고 강제로 접수한 토지를 아주 싼 가격에 일괄적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처리하려 한 데 대해 오끼나와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여 전개된 사건이다 ..  <오끼나와 이야기>(아라사끼 모리테루/김경자 옮김, 역사비평사, 1998) 131∼132쪽

 

“오끼나와 시정권자(施政權者)인 미국”에서 ‘시정권자’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모릅니다만, “오끼나와를 다스리는 미국”으로 다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강제(强制)로 접수(接收)한”은 “힘으로 꿀꺽한”이나 “힘으로 빼앗은”으로 손보고, ‘토지(土地)’는 ‘땅’으로 손봅니다. ‘싼 가격(價格)’은 ‘싼값’으로 손질하고, “사들이는 방식(方式)으로 처리(處理)하려 한 데 대(對)해”는 “사들이려 했기에”나 “사들이려고 하니”로 손질하며, “크게 반발(反撥)하여 전개(展開)된 사건(事件)이다”는 “크게 불끈하며 펼쳐진 일이다”나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난 일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일괄적(一括的) : 한데 묶는

 │   - 일괄적 처리 방식 / 일괄적인 명예 회복 조처가 필요하다

 ├ 일괄(一括) : 개별적인 여러 가지 것을 한데 묶음

 │   - 일괄 사표 / 일괄 타결 / 일괄 현상

 │

 ├ 일괄적으로 사들이는

 │→ 통째로 사들이는

 │→ 송두리째 사들이는

 │→ 한 묶음으로 사들이는

 │→ 한데 묶어 사들이는

 │→ 모조리 사들이는

 └ …

 

얼마 앞서 서울 환경운동연합 상근자 한 사람이 돈을 빼돌린 일이 들통나면서, 이 시민모임 상근자 ‘모두가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잘못을 빈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알리는 언론매체들을 보면 흔히 ‘일괄 사퇴’라는 말을 씁니다.

 

한꺼번에 모든 이가 그만두었다면 ‘한꺼번에 그만둔다’고 하면 되고, 다 함께 모두가 그만두려 했다면 ‘다 함께 그만둔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소식을 알리는 기자를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일괄 사퇴’ 아니면 ‘일괄 퇴진’ 아니면 ‘일괄 사의’ 아니면 ‘일괄 사표’라고만 이야기합니다.

 

 ┌ 일괄적 처리 방식 → 한데 묶는 처리 방식 / 한데 묶어 다루기

 └ 일괄적인 명예 회복 조처가 필요하다 → 한꺼번에 명예를 찾아 주어야 한다

 

우리한테 ‘모두 함께’를 가리킬 토박이말이 없다면야 ‘일괄’이든 이괄이든 삼괄이든 얼마든지 쓸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말에는 ‘모두’도 있고 ‘함께’도 있습니다. 둘을 더해 ‘모두 함께’를 넣어도 어울리고 ‘다 함께’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자리에 따라서 ‘한꺼번에’나 ‘한데 묶어’를 넣고, ‘한 묶음으로’나 ‘모조리’나 ‘송두리째’를 넣을 수 있습니다. ‘통째로’가 알맞는 자리가 있고, ‘통틀어’가 걸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 일괄 사표 → 한꺼번에 사표 / 모두 사표 / 통째로 사표

 └ 일괄 타결 → 한꺼번에 타결 / 한번에 타결 / 모두 묶어 타결

 

얼핏 생각하는 분들은, ‘일괄’이나 ‘일괄적’이라는 낱말을 더 쓰면서 ‘우리 말 살림을 늘리고, 우리 말 씀씀이도 넓히니 좋지 않느냐’ 하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조금이나마 우리 말과 삶을 헤아리는 분이라면, ‘일괄’이나 ‘일괄적’ 같은 낱말을 쓴다고 하여 우리 말 살림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우리 토박이말 쓰임새가 줄거나 밀리게 됨을 깨닫습니다.

 

‘한꺼번에’라 할 자리에 ‘한꺼번에’가 아닌 ‘일괄적으로’를 넣는다고 우리 말 씀씀이가 넓어질까요? ‘한데 묶어’라 안 하고 ‘일괄적으로’처럼 적으면 글자수도 하나 더 늘지만, 모든 사람이 넉넉히 알아들을 수 없기도 합니다.

 

 ┌ 나란히 그만둠

 ├ 줄줄이 그만둠

 ├ 잇달아 그만둠

 └ …

 

“한데(一) 묶는다(括)”는 뜻으로 ‘일괄’을 쓸 일이 아니라, 말뜻 그대로 ‘한데 묶는다’고 말하거나 ‘한데묶기’ 같은 새 낱말을 빚어낼 일이 아니랴 싶습니다. 꼭 새 낱말을 빚어야 하지 않으니, ‘나란히’ 같은 낱말을 넣어 볼 일이라고도 느낍니다. 뜻은 조금 달라지는데, 말하는 자리에 따라서 “이번 일을 뉘우치며 줄줄이 그만두기로 했습니다”라 말해도 됩니다. “이 일을 뉘우치는 뜻에서 저를 비롯해서 모든 직원이 뒷갈무리를 마친 뒤 잇달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라 말해도 괜찮습니다.

 

생각과 느낌과 마음을 어떤 말그릇에 담아내느냐 하는 일입니다. 혼자서 잘난 마음그릇으로는 혼자서 잘난 말그릇이 될밖에 없습니다. 다 함께 어우르려는 마음그릇이요 생각그릇일 때에는, 다 함께 거리낌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말그릇으로 새로워집니다.

 

잘못은 숨김없이 뉘우치고, 잘한 일은 자랑이나 뽐내기가 아니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일입니다. 잘못을 숨김없이 뉘우칠 생각이기에, 제 잘못을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말과 글에 겉치레를 씌우지 않습니다. 자랑이나 뽐내기가 아니니 겉꾸밈이나 겉바르기가 아닌 수수함과 소담스러움이 가득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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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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