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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본래의 직업에서 벗어나

 

.. 자신들의 본래의 직업에서 벗어나 타락한 정당들의 출세 계단에서 높은 곳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직업 정치인들이야말로 실제적인 낙오자들이다 ..  《페트라 켈리/이수영 옮김-희망은 있다》(달팽이,2005) 31쪽

 

 “높은 곳을 향(向)해”는 “높은 곳으로”로 다듬습니다. “실제적(實際的)인 낙오자들”은 “실제 낙오자들”이나 “참말로 낙오자들”로 손봅니다. ‘서서(徐徐)히’는 ‘천천히’로 고쳐 줍니다.

 

 ┌ 본래(本來) : 사물이나 사실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 ‘본디’로 순화

 │   - 본래의 모습 / 그는 본래부터 말이 없고 점잖다 /

 │     본래 이곳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 / 남편의 성품이 본래 그렇기도 했지만

 │

 ├ 자신들의 본래의 직업에서 벗어나

 │→ 자신들이 예전부터 하던 일에서 벗어나

 │→ 자기가 예전에 하던 일은 그만두고

 │→ 자기가 그동안 하던 일은 내버리고

 └ …

 

 국어사전을 보니, ‘본래’를 ‘본디’로 고쳐쓰라고 하네요. 이 자리에서는 ‘예전’이나 ‘처음’ 같은 말을 넣어 주면 한결 낫구나 싶어요.

 

 국어사전 보기글을 좀더 살피겠습니다. “본래의 모습”은 “본디 모습”으로 다듬기보다는 “예전 모습”이나 “처음 모습”으로 다듬습니다. “본래부터 말이 없고”는 “본디부터 말이 없고”도 어울리지만 “예전부터 말이 없고”나 “처음 볼 때부터 말이 없고”로 다듬으면 한결 나아요. “본래 이곳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도 “처음부터 …”나 “예전부터 …”로 다듬어 주고요.

 

 “본래의 직업에서”로 적은 이 자리에서는 “본래 하던 일에서”쯤으로는 손봐야겠지요. 사이에 ‘-의’를 끼워 넣을 까닭이 없으니까요. “본래의 모습”과 “본래 모습”은 얼마나 다른 말일까요. ‘본래’라는 말도 얄궂지만, 이 말 뒤에 ‘-의’를 붙이면 더더욱 얄궂은 말이 되어 버립니다.

 

 국어사전에 말풀이를 다는 분들은 이런 대목까지 조금 더 헤아려 주면 좋겠어요. 기계처럼 딱딱딱 풀이와 쓰임새 몇 가지만 달고서 지나가지 말고요. 우리들 말씀씀이를 두루 살펴서, 그때그때 말흐름과 말법을 잘 맞추는 가운데 우리 나름대로 자기 말씨를 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ㄴ. 사랑의 본래의 모습

 

.. 왜 맹목적인 사랑이 나쁘단 말인가? 맹목인 게 바로 사랑의 본래의 모습이 아닐는지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18쪽

 

 ‘맹목적(盲目的)인’은 ‘눈먼’이나 ‘외곬’로 다듬어 봅니다. “맹목(盲目)인 게”는 “눈먼 모습이”나 “외곬이”로 손봅니다.

 

 ┌ 사랑의 본래의 모습이 아닐는지

 │

 │→ 사랑 본래 모습이 아닐는지

 │→ 사랑 참모습이 아닐는지

 │→ 사랑이 아닐는지

 └ …

 

 사랑을 하니 믿습니다. 믿으니 사랑합니다. 사랑하여 나누고, 나누니 사랑입니다.

 

 날마다 주고받는 말에도 사랑을 담을 때와 사랑을 안 담을 때가 사뭇 다릅니다. 목소리 느낌이 다르고, 말매무새가 다릅니다. 낱말 고름새도 다르고 말씨도 다릅니다.

 

 아끼고 믿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건네는 말과 아예 처음 보거나 낯선 사람한테 건네는 말을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누구한테나 똑같이 말하고 마주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마주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때, 우리들 말씨와 말매무새가 어떠한가요. 살갑고 애틋하고 포근하다고 느끼는 사람한테도 얄궂거나 짓궂거나 꺼림직하거나 뒤틀린 말을 하십니까. 반갑고 고맙고 알뜰하다고 느끼는 사람한테도 못나거나 모질거나 엉뚱하거나 비뚤어진 말을 하십니까.

 

 ┌ 사랑다운 사랑이 아닐는지

 ├ 사랑다운 모습이 아닐는지

 ├ 참사랑이 아닐는지

 ├ 참된 사랑이 아닐는지

 └ …

 

 어버이 된 이는 당신 딸아들한테 들려주는 말씨로 이웃과 마주할 노릇입니다. 예배당에 다니는 분들은 하느님 앞에서 읊는 말씨로 이웃과 마주할 노릇입니다. 절집에 다니는 분들은 부처님한테 바치는 말씨로 이웃과 마주할 노릇입니다. 젊은이들은 당신이 사랑하는 님한테 건네는 말씨로 이웃과 마주할 노릇입니다.

 

 한 마디씩 바꾸어야 두 마디가 바뀌고, 두 마디 세 마디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야 우리 마음이 움직이면서 우리 가슴이 건네어집니다. 찬찬히 우리 가슴이 이리로 옮아가고 저리로 옮아가면서, 우리가 함께하고프던 아름다움을 널리 퍼뜨릴 수 있고, 우리가 함께하고픈 아름다움을 두루두루 나누면서 우리 세상을 한결 촉촉하게 적시는 슬기로운 길을 찾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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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의#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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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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