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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배우와도 같은 존재이다

 

.. 도시 꽃들의 세계는 또 특별하다. 그들은 배우와도 같은 존재이다 ..  <노은님-내 짐은 내 날개다>(샨티,2004) 24쪽

 

 ‘특별(特別)’이란 말을 곧잘 듣는데, ‘다르다-남다르다-돋보이다-눈에 띄다-달라 보이다’ 같은 말로 다듬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보기글을 보니 ‘그들’은 ‘꽃들’을 가리킵니다. 꽃도 이런 대이름씨로 가리킬 수 있지만, 글쎄, 서양 말투에서는 잘 어울리겠지만, 우리 말투에서는 썩 내키지 않군요. 그냥 ‘그 꽃들’이라 하면 될 텐데요.

 

 ┌ 그들은 배우와도 같은 존재이다

 │

 │(1)→ 그 꽃들은 배우와도 같다

 │(1)→ 그 꽃들을 보면 꼭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배우와도 같은 꽃들이다

 │(3)→ 그 꽃들은 배우 노릇을 한다

 └ …

 

 3인칭 대이름씨를 써서 꽃을 가리키니, ‘존재’라는 말도 저절로 쓰는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말투와 말씨를 알뜰히 살피고 추스르는 분들은 ‘존재’라는 말을 안 씁니다. 이 자리라면 “배우와도 같다”라고 하지, 사이에 ‘존재’를 넣을 까닭이 없거든요. 굳이 어떤 말을 넣고 싶다면 “배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든지 “배우 노릇을 한다고 느낀다”로 적어 줍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 나날이 서양 문물이 우리 삶터로 파고들고, 서양 책과 말투도 우리 삶터로 스며듭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고 깨끗하던 우리 말투는 자연스러움을 놓치고 깨끗함을 잃으면서 어긋나고 있습니다. 서양 책과 말투가 말썽거리가 아니라, 서양 책과 말투를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편, 우리 삶을 우리 삶 그대로 단단히 여미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가 말썽거리입니다.

 

나라 밖 말투에서도 우리가 받아들일 대목은 받아들이면 됩니다. 나라밖 낱말 가운데 우리한테 아직 없어서 고맙게 받아들일 대목은 받아들여야 넉넉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일 까닭이 없거나 받아들이면 얄궂은 말투까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어찌 될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열매를 내버리거나 내치거나 내팽개치면 어찌 되나요. 내 삶이 아름다운 줄 깨닫지 못하며 바깥에서만 기웃기웃하면 어떡하지요. 내 마음에 서려 있는 살가움을 끄집어내어 두루 나누지 못하는 가운데, 빈 껍데기만 자꾸 뒤집어쓰려고 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됩니까.

 

 

ㄴ. 악하게 태어나는 존재

 

.. 전쟁은 많은 것을 망쳐 놓았다. 나는 사람은 선하지 않고 악하게 태어나는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278쪽

 

 ‘선(善)하지’는 ‘착하지’로 다듬고, ‘악(惡)하게’는 ‘나쁘게’나 ‘못되게’로 다듬습니다.

 

 ┌ 악하게 태어나는 존재

 │

 │→ 나쁘게 태어나는 사람

 │→ 나쁘게 태어나는 목숨

 └ …

 

 우리 말로는 ‘착함나쁨’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보다 ‘선악’이라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착하게 살아야지” 하고 말하지만, 편지를 쓰거나 다른 글을 쓸 때면 으레 “선한 마음이 되어야지” 하고 말합니다.

 

 착하니 착한 사람이요 ‘착한이’입니다. 나쁘니 나쁜 사람이요 ‘나쁜이’입니다. 그러나 ‘善人’과 ‘惡人’이라는 말을 좀더 즐겨쓰는 우리들이 되어 있어요.

 

 ┌ 착하지 않고 나쁘게 태어난다고

 ├ 착한 마음이 아니라 나쁜 마음으로 태어난다고

 ├ 착한 마음은 없이 나쁜 마음으로 태어난다고

 └ …

 

 알맞게 쓸 말을 알맞게 쓰지 못하는 가운데, 알맞는 말씨뿐 아니라 알맞는 마음과 생각이 널리 퍼지기 어렵습니다. 알맞게 쓸 말을 알맞게 쓰는 동안, 알맞는 말씨뿐 아니라 알맞춤하게 서로를 헤아리거나 살피는 마음이 두루 퍼지기 마련입니다. 말은 낱말 하나로 그치는 법이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한자말#한자#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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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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