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중국인의 정취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그곳이다. 지난 19일, 나는 친구와 함께 국철을 타고 인천역에 내려 온통 먹거리, 구경거리로 가득 찬 인천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단번에 차이나타운임을 알려주는 관문격인 패루를 통과하면 그 옆에 차이나타운의 유래와 개요를 살펴볼 수 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개화기 인천의 상권을 주도할 만큼 번성하기도 하였던 화교들은 한국전쟁으로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고 중국과의 국교단절과 무역중지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하여 현재는 600명 정도가 화교중산학교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상권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
오천 평 규모의 구릉 지대로 이루어진 이 차이나타운을 관광해보기로 하고 서서히 걸음을 내딛었다. 약 5분 정도의 언덕을 올라가자 온통 붉은 물결 투성이었다.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돈과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인지 자장면 거리에 들어서자 마치 ‘붉은 간판 대회 거리’ 같았다.
중국음식점마다 유창하게 중국어를 쓰는 화교들 덕에 여기가 중국거리인지 한국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장면을 만들어 팔았다는 공화춘도 보이고 언론에 많이 공개되었다는 이름있는 중국음식점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거리 어디를 가나 길가에 고추를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태양초인 셈이다. 한 할머니께 고추를 해마다 말리시느냐고 묻자 “우린 안 사먹어”하시며 손사레를 친다. ‘중국인들도 중국산 고추를 못 믿는 걸까? ’
그곳 주민이 ‘맛있다’는 한 중국집에서 삼선 짬뽕을 시켰다. 가격은 일반 짬뽕이 5000원, 삼선 짬뽕은 7000원으로 자장면 한 그릇에 3500원에서 5000원 정도 하는 서울과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짬뽕에는 새우며 오징어 각종 야채가 듬뿍 들어 있었고 국물 맛도 아주 일품이었다. 화교들이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고 자신들의 색깔을 유지한 음식이라 그런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니 한국최초의 서양식 공원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우리를 반긴다. 탑을 뒤로 한 채 아래로 내려오면 공원의 넓은 공터가 있고 인천항이 눈 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인천 앞바다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보였다. 맥아더 장군은 이제 막 가슴을 여는 초가을의 맑고 밝은 하늘처럼 하늘을 향해 힘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맥아더 장군과 장미넝쿨이 아름다운 공원을 뒤로 하고 길을 따라 내려오니 이번엔 공자상이 보인다. 공자상 옆에 서니 공자의 생애에 대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공자는 중국 봉건사회의 철학, 교육, 문학, 예술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그의 유가 사상은 중화민족사상을 대표함과 아울러 인류역사상 중요한 유산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공자상을 뒤로 두고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삼국지 벽화가 그려진 길이 보였다. 이른바 ‘삼국지 벽화거리’다. 삼국지의 명장면이 해설과 함께 그려져 있어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 거리가 되고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오른쪽 벽과 달리 맞은 편 벽은 화교들의 일반 가정 집 담벼락이다. 페인트가 벗겨져 먼지가 덕지 덕지 붙은 집도 보이고 망창이 벗겨진 곳도 많아 고달픈 화교들의 생활의 단면이 보였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의 영향으로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졌고 중국어 배우기 열풍도 불고 있다. 비록 생업을 위해 이곳에 중국집을 세우고 상가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30년째 과자점 ‘ 福來春(복래춘)’ 에서 중국 과자를 만들고 있는 유서지씨는 “우리 가족이 4대째 한국에서 중국과자를 만들어요. 이곳에서 장사한 지는 52년 되었구요. 그런데 옛날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굶기도 많이 하구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이곳에 관광객도 많이 찾아와서 좋기는 하지만 잠깐만 왔다가는 게 아니라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대해 주면 좋겠어요” 라고 하였다.
이곳 차이나타운이 자장면과 중국음식으로 유명해졌지만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교들은 무척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따뜻한 터전을 가꿔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작은 관심 하나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인천역에서 돌아가는 국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