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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적인 불평등은 포틀랜드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모든 도시를 괴롭힌다 ..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 이후, 2008) 214쪽

 

‘불평등(不平等)’ 같은 낱말은 이대로 쓸 때가 한결 나은지 모릅니다만, ‘푸대접’이나 ‘따돌림’으로 다듬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도시”는 “우리 나라 모든 도시”로 손질합니다.

 

 ┌ 영구적(永久的) : 오래도록 변하지 아니하는

 │   - 영구적 보존책 / 영구적 정착 / 영구적인 대책 / 영구적으로 보존하다

 ├ 영구(永久) : 어떤 상태가 시간상으로 무한히 이어짐

 │   - 영구 거주 / 영구 보존 / 영구 귀국 / 영구 발전 / 영구 불멸

 │

 ├ 영구적인 불평등

 │→ 오래도록 이어진 불평등

 │→ 끊이지 않는 불평등

 │→ 한결같은 불평등

 │→ 깊이 뿌리박은 불평등

 └ …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주무르는 부자가 꽤 된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찢어지게 못 사는 가난뱅이도 무척 많다고 합니다. 돈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이 골고루 누리도록 되어 있지 못하고, 사회 틀거리는 제대로 여미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이 거의 무너진 미국에서는 기업주들이 노동자들한테 ‘의료보험비를 안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고 합니다.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조차 따로 가게를 차리면, 자기가 부리는 일꾼한테 나쁜 짓을 똑같이 되풀이한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교육과 문화가 이처럼 흘러왔기 때문에, 사람들도 이런 흐름에 길들게 될까요. 부자가 된 다음에 ‘나눔’을 하면서 살 수 없고, 가난할 때부터 콩알 하나를 나누면서 살아야 비로소 부자가 되어도 나눔을 할 텐데, 처음부터 아이들한테 나눔을 가르치지 않은 탓일까요. 서로 앞만 보며 달리도록 하고, 자기 동무나 이웃은 보지 않도록 채찍질만 해 와서 그럴까요.

 

함께 나누는 기쁨을 기쁨으로 여기지 못하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삶이 오래 이어지게 되면, 저절로 이 삶이 굳어집니다. 뿌리를 내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평등이 뿌리를 내릴 수 있지만, 푸대접, 이른바 불평등이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푸대접이 이어가노라면, 우리 마음과 매무새도 어느 결에 내 동무와 이웃한테 푸대접을 하게 됩니다. 돈에 따라서, 얼굴에 따라서, 이름에 따라서, 힘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살가우며 올바르고 알맞춤한 말이 자리잡을 수 있으나, 얄궂고 뒤틀리고 엉터리인 말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함부로 쓴다면, 우리 삶을 이루는 말은 엉망이 됩니다. 말 한 마디 고이 붙잡고 잘 어루만지면서 보듬는다면, 우리 삶을 이루는 말은 아름답게 빛납니다.

 

 ┌ 영구 거주 → 죽을 때까지 삶

 ├ 영구 보존 → 언제까지나 간직함

 ├ 영구 귀국 → 아주 돌아옴

 ├ 영구 발전 → 끝없이 발돋움

 └ 영구 불멸 → 사라지지 않음

 

한글로 ‘영구’를 적거나 한자로 ‘영구(永久)’를 적어도, 뜻이나 느낌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제법 널리 쓰이는 한자말 ‘영구’와 ‘영구적’이기는 하지만, 자꾸 입 바깥에서 겉돕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살피면, ‘영구 + (다른 한자말)’이 꼭 넉 자씩 어울립니다. ‘사자성어’를 이루고 있습니다. 관공서에서 푯말로 내걸기 좋겠군요.

 

 ┌ 영구적 보존책 → 오래도록 간수하는 법

 ├ 영구적 정착 → 아주 뿌리내리기

 ├ 영구적인 대책 → 오래 이어지는 대책

 └ 영구적으로 보존하다 → 언제까지나 간직하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우리가 ‘영구’라는 말을 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래 안 되었다고 해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 낱말이 실리고, 어린이책에 이 말이 쓰이며,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이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가운데,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이 낱말이 숱하게 떠돈다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영구’나 ‘영구적’은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익숙한 낱말이 되고 맙니다. 한 번 자리잡거나 굳어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말투가 됩니다. 옳은지 그른지 가리지 않고 그냥저냥 쓰게 되는 말씨가 됩니다.

 

우리 모두 꾸려 나가는 삶이 좀더 알차기를 바란다면, 또는 우리가 맞이할 앞날이 좀더 밝고 환하기를 바란다면, 또는 우리 모두 서로를 좀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을 가꾸어 나가고 싶다면, 우리들은 우리가 날마다 쓰는 낱말 하나를 찬찬히 돌아보고 다독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 한 마디부터. 조그맣게 보이는 자리부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적, #우리말, #우리 말, #적的, #영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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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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