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살짝 선잠이 들었다

 

.. 성완이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곧 살짝 선잠이 들었다 ..  《박채란-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2007) 52쪽

 

 보기글을 보면 ‘작은 방’처럼 띄어서 안 쓰고 ‘작은방’처럼 붙였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니 ‘작은방’과 ‘큰방’이 한 낱말로 올라 있네요. 그렇구나. 한 낱말이었군요. 그런데 ‘작은-’은 국어사전에 앞가지로 실려 있지 않아요. ‘작은집’이나 ‘작은사람’이나 ‘작은일’은 모두 띄어서 써야 올바른 우리 말법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작은-’을 앞가지 삼아서 ‘작은나라-작은마음-작은꿈-작은별-작은고기-작은나무-작은꽃’ 같은 낱말도 넉넉히 쓸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면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싣지는 않더라도, 붙여서 쓸 수 있게 하면 될 테고요.

 

 ┌ 선잠 : 깊이 들지 못하거나 넉넉하게 이루지 못한 잠

 │   - 선잠을 깨다 / 선잠이 들다

 │

 ├ 살짝 선잠이 들었다 (x)

 ├ 살짝 잠이 들었다 (o)

 └ 선잠이 들었다 (o)

 

 깊이 들지 못한 잠이 ‘선잠’이니, 선잠은 “얼핏 든 잠”이나 “살짝 든 잠”인 셈입니다. “살짝 선잠이 들었다”처럼 적으면 “살짝 살짝 잠이 들었다” 꼴이 되니, 겹말입니다. “살짝 잠이 들었다”나 “선잠이 들었다”로 고쳐야 올바릅니다.

 

 

ㄴ. 표정과 얼굴빛

 

.. “이때 김의 표정은 아주 할 수 없이 따라나서는 얼굴빛이었다”고 한다 ..  《이상현-사회부 기자》(문리사,1977) 356쪽

 

 성만 따서 “김의 말”, “윤의 이야기”, “석의 말씀”처럼 쓰기도 하던 우리 말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해 보는데, 아리송합니다. 저로서는 들어 보지 못했고, 이처럼 쓰는 말투는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참 낯섭니다.

 

 보기글에서는 북녘 우두머리인 김일성을 말하는 대목. “이때 김일성 얼굴은”쯤으로 고쳐 줍니다.

 

 ┌ 표정(表情) :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   - 밝은 표정 / 표정을 살피다 / 표정을 고치다 / 슬픈 표정을 짓다

 │

 ├ 김의 표정은 할 수 없이 따라나서는 얼굴빛

 │→ 김일성 얼굴은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는 투

 │→ 김일성은 할 수 없이 따라나서는 얼굴빛

 └ …

 

 ‘표정’과 ‘얼굴빛’은 다른 말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얼굴빛’으로 적어도 되고, ‘얼굴’이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앞쪽에서 ‘표정’을 ‘얼굴’로 손질했다면, 뒤쪽은 ‘투’나 ‘모양’이나 ‘모습’을 넣어 봅니다. 앞쪽에서 ‘표정’을 아예 덜어냈다면, 뒤쪽은 그대로 살려서 “김일성은 할 수 없이 따라나서는 얼굴빛”으로 적어 봅니다.

 

 

ㄷ. 이제 막 씻기 시작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제 막 씻기 시작했는데 ..  《이시키 마코토/박선영 옮김-피아노의 숲 (14)》(삼양출판사,2007) 197쪽

 

 ‘이제’와 ‘막’과 ‘시작(始作)’이 어울린 보기글을 생각합니다. 이 보기글을 읽으며 뜻은 알아차렸지만, 입에서 헛도는 말느낌을 지울 길 없습니다.

 

 ┌ 이제 막 씻기 시작했는데

 │

 │→ 이제 막 씻고 있는데

 │→ 이제 막 씻는데

 │→ 막 씻는데

 │→ 이제 씻는데

 │→ 이제서야 씻는데

 └ …

 

 “무슨 소리야? 이제 씻는데?”처럼 적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씻지도 않았다구?”처럼 적으면 어떨는지요. “무슨 소리야? 막 씻으려고 하는데?”처럼 적으면 어떻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겹말, #우리말, #우리 말, #중복표현, #겹치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