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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궁에 있는 누각이다.
▲ 봉황루 심양궁에 있는 누각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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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께서 알현을 윤허하시었소"

동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장문의 장계를 올렸다.

"시장이 개설되어 조선인이 매매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속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값을 치르게 하고 있는데 사족(士族)의 부모와 처자는 청나라에서 수십만 냥을 요구하고 있어 속환하여 보내기가 어렵습니다. 친척이 없는 사람들은 동관에 몰려와 나라에서 속환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참혹해서 차마 보기 힘듭니다."-<심양장계>

소현세자는 볼모다. 잡혀 와 있는 몸. 힘이 없었다. 그러나 잡혀오고 끌려온 동포들은 임금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현은 그러할 힘과 능력이 있어도 단독으로 결정할 처지가 아니다. 위로는 임금이 있고 조정 중론이 있는 세자다. 소현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전관 구오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황제께서 알현을 윤허하시었소."

동관을 찾아온 용골대가 통보했다. 소현은 심양 도착 직후부터 황제 배알을 청했다. 비록 조선에서 볼모로 잡혀온 왕세자지만 황제를 만나고 싶었다. 황제를 만나면 청나라가 조선을 보는 시각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청나라는 역병(천연두)이 돌고 있다는 이유로 미루어 왔다.

 심양궁의 정전이다.
▲ 숭정전. 심양궁의 정전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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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보는 만주 문자

한자와 만주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 심양궁 숭정전. 한자와 만주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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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은 대빈객 박황, 부빈객 박노와 함께 용골대의 안내를 받으며 심양궁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붉은 성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황성이다.

붉은 황성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왔다. '대소인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라'는 비석이 눈에 띄었다. 말에서 내려 걸었다.

경복궁의 광화문 격인 대청문은 작고 협소했다. 삼지창을 꼬나 쥔 청나라 군사들이 숙위하고 있는 대청문을 통과 했다. 처음 들어가 보는 황궁이다. 모든 길과 계단은 옥으로 깔려 있었다. 눈부셨다.

전면에 야트막한 전각이 있고 좌우로 붉은 색 전각이 줄지어 있었다. 황제가 공식 행사를 주재하는 정전이다. 한껏 멋을 부린 조선의 정전보다 소박하고 아담했다. 머리를 들어 편액을 쳐다봤다. 파란 바탕에 금색 글씨가 세로로 걸려 있었다. 편액에는 난생 처음 보는 글씨가 있었다.

만주 문자였다. 편액은 한자와 만주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편액을 바라보던 소현은 청나라가 만주에 대한 뿌리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만주벌판에 얼마 만큼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희궁은 옛 경덕궁이며 소현세자가 강빈과 혼례를 올렸던 곳이다.
▲ 경희궁 숭정전. 경희궁은 옛 경덕궁이며 소현세자가 강빈과 혼례를 올렸던 곳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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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청나라 황제의 정전이 숭정전이라는 것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현실이었다.

숭정전은 조선에도 있다. 임금의 정전이고 자신이 강빈과 혼례를 올렸던 곳이 아닌가.

조선은 명나라와 통호했고 청나라와는 교류가 없었다. 어떠한 색깔의 교류이건 조선과 통하기 위하여 청나라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동원했고 조선은 교류라는 틀 속으로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있는 황제의 정전이 우리와 같은 숭정전이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소현, 정곡을 찌르다


숭정전 옆길을 통하여 봉황루로 안내 되었다. 누각에는 조촐한 잔칫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도르곤을 비롯한 여러 왕들도 있었다. 황제에게 예를 올린 소현이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십왕 다음 자리였다.

"이국에 와서 고생이 많소."
"황공하옵니다."
삼전도에서 부왕이 항복할 때 배종한 이후 처음이다.

"불편한 것은 없소?"
"넓으신 배려에 편안합니다만 강화 이후에 잡혀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관소에 찾아와 억울하다며 울고 있어 보기가 민망합니다."

정곡을 찔렀다. 강화조약 이후에 잡혀온 사람들은 청나라의 약속 위반이라는 것이다. 소현의 생각은 분명했다. 조선에서 잡혀온 사람들은 교전 중에 잡힌 전쟁포로가 아니며 더욱이 강화 이후에 잡혀온 사람들은 전쟁과 상관없는 약탈이라는 것이다. 황제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심양궁은 통로와 계단이 옥으로 되어 있다.
▲ 옥계단. 심양궁은 통로와 계단이 옥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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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철저히 무시한 황제

"그래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홍타이지가 입을 열었다.

"이봐라 용골대! 사실을 조사하여 억울한 자들은 돌려보내도록 하라."
"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세자의 처소는 어떻게 되가느냐?"
"마무리 공사 중입니다."

"세자가 입주하거든 고려관이라 부르도록 하라."

청나라는 조선을 철저히 무시했다. 황제가 조선왕에게 고려왕인을 내려 주었으니 조선은 소멸한 나라라는 뜻이다. 황제 배알을 마치고 동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절반의 쟁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후, 용골대가 몇 명의 포로를 데리고 찾아왔다.

"이 자들은 강화 후에 잡혀온 것이 밝혀졌소. 인수받도록 하시오."
"고맙소."

사지에서 풀려난 동포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돌아갈 고향은 이역만리 머나먼 길이지만  세자가 있는 동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오늘날 탈북 동포들이 해당국 우리 외교관사에 들어가면 이러한 심정이리라. 소현은 청나라로부터 인계받은 포로를 동관에 머물러 두게 하였다. 돌아가는 내관 편에 고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태그:#소현세자, #황제, #숭정전, #심양, #홍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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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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