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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은 조선인들을 발견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몸속에 흐르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머나먼 타국 땅에 끌려와 소 돼지처럼 팔려야 한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와락 달려들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는 청나라의 시장바닥이다. 조선 왕세자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 시장 거리를 걸었다.

 

“몇 냥이오?”

 

“아흔 냥 주슈.”

 

“옆에 것은 스무 닷 냥이라면서요?”

 

“그것은 한인이구 이건 조선인이우.”

 

새끼줄에 발목이 묶여 장터에 나와 있는 토종닭들의 모습과 비슷한 포로를 두고 청나라 사람들끼리 흥정이 붙었다. 청나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인 포로는 눈만 껌뻑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였다. 키가 장대 같은 청나라 사람이 대여섯 명의 포로를 끌고 지나갔다. 조금 늦게 장터에 나온 것이다.

 

“어무이.”

 

외마디 소리와 함께 쭈그려 앉아 있던 조선인 포로가 튀어나갔다. 발목이 같이 묶여있던 다른 포로들도 덩달아 일어났다. 깜짝 놀란 포로 주인도 벌떡 일어나 눈이 휘둥그레졌다. 끌려가던 포로가 발길을 멈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뒤돌아 봤다. 눈이 마주쳤다. 분명 거기에는 눈에 익은 얼굴이 있었다.

 

“대식아.”

 

맹수에게 물려간 새끼를 다시 찾은 어미 사슴이 하늘을 쳐다보며 울부짖는 소리와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그러나 발목을 묶은 새끼줄과 손목을 묵은 새끼줄이 공간을 좁혀주지 않았다. 팽팽한 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이것들이 시방 뭐하고 있어 해?”

 

끌고 가던 포로 주인의 채찍이 날아왔다. 묵이지 않은 손을 내밀던 어미의 팔뚝이 선홍색으로 붉어졌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대식이의 눈에 핏발이 섰다. 또 다시 채찍이 날아와 어미의 팔뚝을 할퀴었다. 모세혈관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어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잡혀온 주제에 놀고 있네. 따로 놀아 해”

 

포로 주인이 손에 쥐고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가던 두 손은 닿지 않았다. 줄을 당길수록 점점 멀어져 갔다. 끌려가는 어미가 자꾸만 뒤돌아 봤다. 멀어져 가는 어미의 모습을 바라보는 칠복이의 두 눈은 화살 맞은 호랑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장동 집에서 붙잡힌 민씨 부인은 북으로 끌려가면서도 전쟁에 나간 아들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대식이는 집안의 대들보였다. 아들 못 낳는다고 대감으로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다. 지아비가 시앗을 봤을 때는 피눈물도 흘렸다. 줄줄이 7공주를 낳고 화계사에 불공드려 낳은  아들 대식이는 민부인의 희망이었다.

 

대식이가 무과에 급제하여 어사화를 쓰고 순화방 골목길에 나타났을 때, 민부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푸른 종이를 감은 참대(竹)를 명주실로 잡아매어 머리위로 휘어 넘겨 입에 물고 있는 대식이의 어사화를 어루만지며 “이만한 아들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대식이가 경갑사(京甲士)에 차출되어 대궐에 들어간다 했을 때, 출세는 보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탄탄대로에 문이 활짝 열린 것으로 믿었다. 원하는 말도 한 필 사주었다. 이러한 대식이가 나라를 구하고 임금님을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설 때, 어미는 그저 무운을 빌었다. 이렇게 헤어진 아들 대식이를 포로시장에서 만나다니 민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산성에 들어간 대식이는 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보다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 얇은 옷 하나로 동장군과 맞서야 했으며 가마니 거적으로 칼바람을 피해야 했다. 얼어 죽은 동료가 쓰러지고 배고픔에 창자가 뒤틀려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청나라와 친해야 한다.”

 

“청나라는 멀리해야 한다.”

 

대신들의 공론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왔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걸려있는데 입씨름만 하고 있는 대신들이 한심스러웠다. “결전하라”는 임금의 명에 꽁무니를 빼는 김류가 과연 이 나라의 군사를 총지휘하는 도체찰사인가 의심스러웠다.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무사로서 적과 한 번 겨뤄보고 싶었다. 내가 세면 적을 베고 적이 강하면 내가 베어지는 것이 무인의 길이지 않은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성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사를 습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별장과 함께 북문을 나온 대식이는 청나라 군사의 매복에 걸렸다. 허둥지둥 퇴각하던 부대는 신성립과 8명의 희생자를 내고 대식이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산성에서 붙잡힌 대식이는 포로수용소에서 임금의 항복소식을 들었을 때 땅을 치며 통곡했다. 임금이 항복한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포로가 된 자신의 안위보다도 나라의 장래가 염려스러웠다.

 

심양으로 끌려가는 대식이는 전쟁 통이라 어머니 소식을 알 길이 없었으나 무사할 것이라 믿었다. 북으로 끌려가는 아들의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실까? 오히려 걱정이었다. 살아있다는 소식만이라도 전하면 좋겠는데 포로로 끌려가는 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헤어진 이산가족이 포로시장에서 만난 것이다. 기구한 운명의 이산가족상봉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위정자의 판단 착오가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고 백성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날에도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있다. 그 옛날 심양처럼 사고 팔리지는 않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버스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한다. 체온이 오가지는 않지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버스는 떠난다. 눈물겨운 별리다. 강대국의 전쟁 놀음에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소국의 백성들이다.


태그:#소현세자, #포로, #이산가족, #남한산성, #화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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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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