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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익어가는 쇠고기에 달님도 침을 꼴깍 삼키며 몰래 훔쳐본다. 고기의 향을 깊게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아보니 과연 그 냄새가 생전 기름진 자극을 받지 못한 양 후각세포들을 정신없이 깨워댄다. '아!' 탄성 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떠 알맞게 암살진 쇠고기를 보자니 절로 흐뭇해지는 이 만족감. 그리고 타코 만들기를 위한 마지막 고기를 익혀내느라 피어오르는 연기에 눈도 마음도 그리고 뱃속마저 아슴아슴해진다.

 

 

멕시칼리. 번잡한 국경 도시. 국명과 비슷해서 그런지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지역이다. 티후아나에서 예까지 오는 동안 고생했기에 며칠 쉬어 가기로 했다. 특별한 여행지도 아닌 만큼 그냥 휴식만 취할까 생각하다 좀 더 의미 있는 계획을 짜고 싶었다.

 

"고아원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인청년인 형덕씨와 태곤씨가 고아원 자원봉사를 간다는 말에 마음의 귀를 쫑긋 세웠다. 가끔 한인교회에서 고아원으로 봉사를 나가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가슴에 품은 지도 오래되었구나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어머니이고, 가장 행복한 건 그 어머니가 조건 없이 사랑하는 아이라는 걸. 잔즐거리는 갓난아이 때부터 한 해 두 해 자라가며 좌충우돌 껍질을 깨가는 아이를 바라본다는 것. 아무리 험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당신의 품이라면 의심없는 아늑한 고요가 약속되었던 곳.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지 않는 늘 푸른 상록수라 믿었던 부모님의 품은 이제 늙고 처진 고목이 되어 앙상한 그루터기만을 남겨주지만 그 위에 걸터앉는 쉼이 인생에 다시 올 수 없을 평온한 천국임을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자신의 또다른 인생을 지켜주고 애만지는 평생에 걸친 그 고결한 사랑에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존재에 감사, 감격할 수밖에….

 

그런데 오늘은 애석하게도 부모가 먼저 하늘 약속을 해 버린 채 이별을 고했거나 혹은 그들이 감옥이나 미국행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남겨진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을 가게 된 것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위로해야 할까 생각에 잠긴 채 차를 타고 고아원으로 출발했다. 도시 곳곳에는 익숙한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낯익으면서도 타국에서는 어쩐지 반가운 한문간판의 중국 음식점들이었다.

 

"여긴 중국인들이 참 많아요. 초창기 중국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거든요. 사막 위에 세운 멕시칼리 역사가 100여년 정도 되는데 그 시초가 중국인들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중국인들도 멕시코 이민 역사에서 우리 나라 못지않은 모진 핍박을 당했다고 한다. 때로는 아예 입구조차 봉쇄되어 버린 기차에 태워져 멕시칼리 지역에 강제 추방되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목숨을 건 채 터전을 일구기 시작했다고.

 

원래 대다수가 노동자로 태평양을 건너왔지만 그들의 질긴 생존력은 현지인들에게 경제적인 경계심을 일으키게 했고, 또 현지인 강간 등 난폭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중국인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반감은 드셌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기차를 태워보낸 거란다. 하지만 거리에는 온통 멕시칸들뿐 여기저기 고개를 둘러보아도 동양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거의 보이지가 않네요."

"그렇죠? 하지만 이 도시에 중국인들이 꽤 많이 거주해요.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일단 중국인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그들이 뭉칠 만한 일이 생기면 바퀴벌레처럼 여기저기서 나와 단결하거든요. 중국인들의 단결력은 멕시칸들도 함부로 못 건들 정도죠. 여기 상권과 각종 기득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데."

 

그랬다.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일터, 특히 식당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순식간에 수백명이 모여 그들의 강력한 의견을 여기저기에 어필한다고 하니 수많은 나라가 이합집산으로 세워지고 멸망한 굴곡진 역사를 거친 중국이라지만 의협심 하나는 수호지마냥 끝내준다는 인상이다.

 

또하나 재미난 사실은 국경 근방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생활력이 강해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며 토착화에 성공해 자신들의 영역을 굳건히 구축하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틈만 나면 미국 영주권 취득을 노리기에 임시로 기거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인회 모임을 하게 되면 규정에 부합하지 않은 거주자들을 제외하면 되레 고국의 흔적이 거의 퇴색되어버린 2세들만 참여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된다고.

 

 

저뭇해질 무렵 외곽에 위치한 베데스다 고아원에 도착했다. 이 고아원은 다른 고아원에서 자란 한 고아원생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한 곳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도착한 장면을 보자 바삐 다른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는 마치 금방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달려들 듯 가슴팍으로 뛰어든다. 어떤 녀석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면서 시선을 마주한 채 인사를 건넸다. 인사할 때마다 새살거리는 그 눈망울을 마주하자니 영혼의 거울로 때묻은 자아를 보는 것 같아 살난스럽기만 하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보는 현덕씨와 태곤씨는 그야말로 인기만점이다. 녀석들은 현덕씨와 태곤씨가 산타 할아버지라도 되는 양 팔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가슴으로 여기저기 매달리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면서 살짝 데면데면할 때 쯤 아이들은 다행히도 내게도 다가와 섭섭잖게 친절을 과시한다.

 

 

'이 자식들, 이제 오는 거냐? 이 순간을 기다렸다.'

 

숨이 막힐 만큼 힘껏 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신음소리를 내지만 싫은 기색이 아니다. 서로의 체온과 체온이 맞섞이며 심장의 소리가 하나로 통일될 때 우린 형제와 진배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녀석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깔깔대며 웃는다.

 

마치 내게 계량화된 물질문명의 추구에 대한 만족에 가리워진 진정한 행복에 대해 가르치는 변장된 신선들 같았다. 묘한 감정이다. 어쩌면 자신의 부끄러운 환경을 드러내기 부담스러워 문을 걸어 잠그고 어둔 구석으로 몸을 숨긴 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우리가 어서 돌아가기를 전전긍긍하며 시선을 피할 수도 있을텐데….

 

남자녀석들은 청년들과 좁은 마당에서 축구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단순한 놀이를 하며 성대한 저녁 만찬을 기다리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보이는 곳에서 요란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서로가 어울리고 부대끼는 가운데 옆에서는 즉석에서 아주 맛나게 만들어진 타코가 슬슬 탁자에 놓여지기 시작한다.

 

 

"타코 먹자, 얘들아!"

 

이 한 마디는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부엌에 마련된 테이블로 아이들이 질서있게 몰려들었다. 녀석들은 재잘거리며 타코를 먹고 또 우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다. 토티아 반죽피에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얹고 다시 그 위에 살사소스를 뿌려 먹는 환상적인 타코의 맛.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죽음마저 인지 못한 채 게걸스럽게 먹을 만한 혀에서 녹아드는 그 달달새콤한 맛. 그 맛이 정말이지 타코의 냄새까지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은 타코보다 우리와 함께한 정에 더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보니 테이블 위에 적지 않은 음식이 남아 있었다.

 

 

'녀석들, 많이 좀 먹지….'

 

아쉬움이 들어 옆에 아이들에게 빵과 음료 등을 권유했지만 녀석들은 괜찮다며 인형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걸요. 마음이 부요해지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잖아요.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구요. 다음에 또 와 줄꺼죠?'

 

그 눈이 말하는 얘기에 더 이상 물질적인 그 무엇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잠시 마음이 맹맹해져 왔다. 식사 후 자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워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보여주면 자신의 낯선 모습에 쑥쓰러워 하면서도 즐거워한다.

 

가진 게 없어도 맘껏 뛰어놀며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녀석들. 녀석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 때도 지금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자신의 어린 날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부디 이들의 행복이 어른이 되어서도 깨어지지 않기를. 너의 인생 아름답기를….

 

 

아픔을 아는 사람만이 그 아픔을 다시 보듬어 줄 수 있다. 난 아직 절절한 그들의 고통을 나눠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지금껏 나 하나 행복찾기도 버거워 고민하고 투정부리던 다 큰 애가 아니었던가. 헤어지는 길에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또 보듬어 안았다. 아마도 언젠가는 그 조그만 몸짓을 통해 내가 아닌 우리의 행복추구를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릴 철들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짙은 어둠을 뚫고 하나하나 마지막 눈인사를 건네며 아쉬움 속에 그렇게 우린 서로의 거리를 넓혀 나갔다. 괜시리 서운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려는지 무수한 별들이 환하게 불을 켜고 있다. 뒤돌아서는 걸음이 뭐가 그리 못내 허전한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여전히 손을 흔들며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그러고 보니 검은 하늘에 큐빅처럼 촘촘하게 박힌 별들이 어느 새 녀석들의 눈으로 들어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세계일주, #문종성, #멕시코, #자전거,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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