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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800원이 어디 없을 까요?"
"그건 왜?"
"그냥요."

 

한참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등 뒤에 대고 막내아들 녀석이 뜬금없는 제안을 해온다.

빨래 걷기 지금은 막내둥이가 빨래를 걷고 있다. 시골 흙집 마당에서 빨래를 걷으니 주변 가을 경관이 멋떨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일상이다.
빨래 걷기지금은 막내둥이가 빨래를 걷고 있다. 시골 흙집 마당에서 빨래를 걷으니 주변 가을 경관이 멋떨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일상이다. ⓒ 송상호

"아빠, 그럼 200원 드릴 테니 천원 주시면 안 돼요?"
"아니 왜 그러는지 말해보라니까."
"내가 원하는 장난감 사려면 800원이 모자라서요."
"그럼 좀 더 기다려서 돈 모으면 되겠네."
"아이 아빠, 내일 사고 싶어요."

 

사실 그동안 누나로부터 용돈 받은 것과 동전 통(우리 부부는 막내아들에게 따로 용돈을 주지 않고 동전 통에다가 남은 동전을 넣어두면 막내아들이 모아서 쓰고 싶을 때 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에다 쓰든 무엇에 쓰든 전적으로 아들의 마음이다. 다만 어디에 썼는지를 물어볼 때만 대답해주면 된다)에 채워진 동전을 합해서 4700원이 된 게다. 그러니까 사고자 하는 장난감은 5500원인 것이다. '유희왕'이라는 카드 한 세트의 값이란다.  

 

이렇게 나에게 거절당한 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아내가 집에 돌아오니까 아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나 몰래 비밀 이야기를 모자지간에 한다. 안 들어도 불을 본 듯 뻔한 이야기를 굳이 나 없는 데서 하려고 한다.  그러더니 아들이 내게 다시 온다.

 

"아빠, 지금 이 돈은 학용품 등 더 소중한 걸 살 때 쓸 테니까 아빠가 장난감 사주셔요."
"야. 이거 너의 생각이니?"
"히히히히. 아뇨. 엄마의 생각인데요."
"바다야. 너에게 소중한 건 장난감이니 학용품이니?"
"그야 물론 장난감이죠."
"그럼 그 돈으로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난감을 사거라."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네"라며 얼굴에 미소를 하나 가득 뿜어낸다. 이 정도면 나의 주머니에서 800원이 나갈 법도 하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이 어떻게 처리하나 두고 볼 심사다. 자기 스스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걸 잘 안다는 나의 소신 때문이다. 

 

이런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아내는 역시 엄마의 모정을 발휘한다. 아들 녀석과 협상안을 놓고 협상한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 그 대가로 800원을 주겠다는 협상을 아내가 제시하고 아들 녀석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설거지나 방청소의 대가를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마술 중 지금은 아빠에게 보여주겠다며 비좁은 장롱에 들어가는 '장롱 쇼'를 벌이고 있다. 관려기사 - 와! 저 좁은 데를 들어가다니.
마술 중지금은 아빠에게 보여주겠다며 비좁은 장롱에 들어가는 '장롱 쇼'를 벌이고 있다. 관려기사 - 와! 저 좁은 데를 들어가다니. ⓒ 송상호

하여튼 그제야 800원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길이 생긴 아들 녀석은 신났다. 평소 심부름을 시키면 잘하던 아이지만, 이번에는 그 질이 다르다. 자신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기쁨에 손놀림이 사뭇 가벼운 것이다. 초등 1학년 머슴애가 10년 살림꾼처럼 의젓하게 일을 잘해낸다.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 자신의 것을 쟁취하고 싶을 때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보다 주위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능력, 타인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협상하는 능력, 자신의 정당한 노동과 노력으로 대가를 얻어내는 능력 등을 기르는 시험에서 막내아들 녀석이 통과한 셈이다.

 

오늘 따라 막내둥이가 참 커 보이는 것은 자신의 '새끼'이기 때문일까. 그동안 아들 녀석이 워낙 소심하여 종전까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좀체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했다는 걸 잘 아는 우리 부부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아들 녀석의 생애 최초 협상과 타결이라는 열매를 앞에 둔 부모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설거지에 한참인 막내둥이의 등 뒤에서 이런 행복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송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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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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