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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77a2>2000년의 감격...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정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2000년의 감격...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정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어가 낚였다. 대선을 지켜보는 독자들에게 안줏거리를 마련해 드리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낚싯대를 드리웠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라는 뉴스가 타전됐다.

이날(8일) 오전 소설가 모씨는 아침상을 앞에 두고 TV로 청와대 특별회견을 접하고는 이내 냉장고로 달려갔다고 한다. "남북이 만나면 무조건 좋은 것 아니냐"며 소주 한잔을 따라 콩닥거리는 가슴을 달랬다. 오늘 밤에도 삼삼오오, 기분 좋게 호프 한잔을 들이키는 분들 계시리라.

나는 '동교동'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청와대 회견에 맞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공식 반응은 나왔지만 분위기가 궁금했다.

동교동에서의 '뻗치기', 수확이 있었다

사실 <오마이뉴스> 네티즌들이 제공한 아이디어가 한몫 했다.

"DJ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 더 멋지겠네요"
"정상회담 뉴스를 접한 후에 동일한 생각을 해보았다.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김정일씨가 함께 하는 그 날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보기 좋은가. 공식적으로는 노무현과 김정일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비공식적으로는 DJ가 김정일을 만나서 공식적으로 안 풀리는 것 중재도 서면서."


독자들의 안테나는 청와대나 여의도 외에도 동교동으로 향해 있었다. 오전 8시 박지원 비서실장의 전화보고로 시작돼 오후 6시 대면 보고를 끝으로 마무리되는 '동교동의 긴박했던 하루'를 전해드리겠다.

운을 먼저 떼면,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7년 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막후 협상 창구였던 박지원 비서실장이 이날은 하루 종일 동교동에 머물면서 상황을 체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박 실장은 "오늘 내가 기록을 갱신했어, 5년만에 이렇게 사무실에 있어 본 게 처음이야"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날 언론의 빗발치는 인터뷰 요청을 일체 사양했지만 '뻗치기'한 덕에 몇 가지를 귀동냥할 수 있었다. 또, "DJ도 손잡고 가라"라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바람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반응도 잡아냈다.

안부·덕담 주고받은 청와대와 동교동

오전 8시. 박지원 실장은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28~30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됐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박 실장은 즉각 전화로 보고했다. DJ의 첫 반응이 궁금했다.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교류 협력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는 공식 논평 외에 말이다. 박 실장은 말을 아꼈다. 재구성하면 이렇다.

"8월 28~3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됐다는 문재인 실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와대에서 곧 발표를 한답니다." (박 실장)
"언제 합의되었나." (DJ)
"김만복 국정원장이 방북해서 5일 최종 서명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사전에 보고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합니다." (박 실장)
"당연히 보안이 필요한 사항 아닌가. 이렇게 연락해줘서 고맙고, 참 잘된 일이다."(DJ)


이후 박 실장은 동교동으로 출근해 오전 9시께 사저로 가 직접 대면보고를 했다. 그리고 최경환 비서관을 비롯해 동교동 비서진들이 총출동, 논평 준비와 실시간 언론을 체크하며 여론 추이를 살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14일 저녁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기념 만찬 행사에 참석한 범여권 대선주자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14일 저녁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기념 만찬 행사에 참석한 범여권 대선주자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DJ는 이날 오전 예정된 투석치료도 오후로 미룬 채 윤병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예방을 받았다. DJ는 자택에서 매주 두 번꼴로 신장 투석을 받는다. 20분 동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안부와 덕담이 오고갔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김 전 대통령께서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밑거름과 토대를 만들어준 덕분입니다." (청와대)
"크게 환영합니다. 노 대통령께서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길 바랍니다. 큰 성과 있길 바랍니다." (DJ)
"노 대통령이 감기몸살로 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까?" (DJ)
"차도가 있어서 어제는 외국인 내빈도 만나셨습니다." (청와대)
"이희호 여사님께서 이번 휴일 금강산에 가신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각별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이희호씨는 오는 12일부터 2박3일 예정으로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다. 1938년 이화여고 3학년 재학 시절, 수학여행으로 내금강 비로봉을 올랐던 이후 69년만의 일이다. 3남 홍걸씨를 비롯해 박지원 실장과 김옥두 전 의원 내외 등 30여명의 가족·지인들이 동행한다.

DJ는 빠진다. "아무리 관광이라 해도 '방북'인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동교동 측의 설명이다. 정치적 상황과 함께 의전이나 예우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마중나올 북측 인사가 누구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지만, 현재 시점과 묘하게 맞물려 관심이 쏠린다. 최 비서관은 "열흘 전에 확정된 일정"이라고 말했다.

DJ는 미국으로, 이희호씨는 금강산으로

오전 상황이 종료된 뒤, 동교동은 조금 한산해졌다. 대신 팩스로 전화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최 비서관의 전화기도 계속 울려댔다. 외신 반응도 뜨거웠다.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기자클럽의 회견 요청 외에도 일본·유럽 현지 언론사의 주문도 빗발쳤다.

CNN에서는 김대중 도서관의 도서관장이라도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DJ 쪽에선 "정부의 발표를 지켜볼 때"라며 개별 인터뷰를 거절했다.

궁금했다. DJ는 청와대를 통해 정상회담 소식을 처음 접했을까? 미리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DJ의 워딩은 최근 들어 농도가 짙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달 <대구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연내에 남북정상회담이 반드시 이뤄지고 내년에 양측의 왕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는 50% 이상 확실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작년 초부터 본격화된 DJ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은 "해야 한다" "필요하다"는 당위를 역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8·15까지는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데드라인'을 상정하더니 "할 것이다" "확실하다"는 단정투로 바뀌었다.

박지원 실장은 "어제(7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시면서도 정상회담 개최를 강조하셨다"며 "전반적인 흐름을 보고 판단하신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 실장의 핸드폰도 계속 울려댔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7년 전, 가장 가까이서 정상회담을 지켜본 당사자였다. "좋죠. 기분이 짱!" 경쾌하게 답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노 대통령이 잘 준비하시지 않겠나. 2000년 당시에는 (남북정상간 만남이) 처음이니까 더 흥분되었지만, 지금은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된 걸 보니 '아 역시 우리 민족이 저력이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서실장.
박지원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서실장. ⓒ 오마이뉴스 강성관
- 한나라당에선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고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이 시대 가장 우선하는 목표다. 그런 판단 하에 이뤄진 일이고 잘 해결되고 있는 과정이다. 그런데 정치적 목적 운운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정치적 목적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정략적 생각을 한다는 건 죄악이다. 국민이 다 보고 있다. 의도가 있다면 국민이 먼저 안다."

- DJ 역할도 컸다.
"작년 핵실험 정국 이후 노구를 이끌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시 세계 여론이 어땠나. 결국 부시와 미국을 움직였다. (DJ의) 민족에 대한 열정과 평화에 대한 소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한반도 평화다."

- 하지만 정치 문제와 관련해선 '훈수 정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국가 원로로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문을 구하면 마다하지 않고 응했다. 박근혜, 이명박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반도 평화문제를 말씀하시고 또 그들의 얘기를 들으셨다. 그런 차원에서 범여권 인사들도 자문을 구해 오면 만나신거다. 국가 원로로서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현직 정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의무다. 기술은 전수되어야 하지 않나. 금도는 있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잦은 강연과 언론 회견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도 많았다.
"칭찬받기 위해 나라 어려움을 방기할 수 있나. 지도자는 국민의 손을 잡고 반보 앞으로 가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 비판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이 더 무서운 것 아닌가. 민족의 운명이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건강은 어떠신가.
"대북송금특검의 후유증과 도청 문제에 대한 충격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고 입원까지 했지만 지금은 비교적 좋은 편이시다."

- 범여권에겐 호재 아닌가.
"우리 민족 전체의 호재다. 무지개 빛이 펼쳐지는 상상의 길로 가야 되지 않겠나."

'기분 짱' 박지원 "시대정신은 한반도 평화"

박 실장은 이번에 이희호씨와 함께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다. 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과 방북한 이래 7년만이다. 버스를 이용해 일반 관광객과 뒤섞여 해금강·삼일포·이산가족면회소 공사현장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오는 18일께 예정된 DJ의 여름휴가에도 동행한다. "동해 바다를 보고 싶어 하신다"며 구체적인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경환 비서관은 TV로, 인터넷으로 언론 보도를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주가 상승 등의 뉴스가 흘러나오자 "꼭 7년 전 뉴스를 보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동교동의 한 관계자는 현대아산 측과의 전화통화인지 "숨통이 좀 트이는 것 아닙니까"라며 남북경협 사업을 낙관했다.

오후 5시 55분. 박 실장과 최 비서관은 DJ 사저로 내려갔다. 일일 보고다. DJ 비서진은 보통 하루 한두 차례 일정 등을 보고하고 조율한다.

<오마이뉴스> 네티즌들의 제언으로 만들어진 기사("DJ 손 잡고, 민초 100명 뽑아서 함께 평양으로"-한반도 평화 제언)에 대한 반응도 꼭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황당한 가정이지만 유쾌한 상상이었다. 30분 뒤, 최 비서관이 보고를 끝내고 올라왔다.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무슨 소리냐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웃으셨다."

오전에 미뤄둔 투석 치료를 받고 쉬고 있던 DJ의 궁금증은 무엇보다 바깥 여론이었다. 비서진은 "국민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DJ는 내달 보름여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9월 18일께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연설하고, 26일부터 3일 동안 뉴욕에서 열리는 CGI(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연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빌 클린턴 재단이 주최하는 CGI 연례회의는 전세계 전·현직 국가지도자들이 참석해 환경, 보건, 빈곤 등 전지구적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DJ가 이번 방미를 통해 어느 수준의 인사들을 접촉하게 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와 맞물려 미국의 행보가 주목되는 즈음이라, 또 어떤 '숨은 역할'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DJ 잘했다, 노무현 잘했다, 문제는 너희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선 진맥>의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은 침묵 속에 보조를 맞춰왔다. 범여권의 대통합에 대해서도 김 전 대통령은 "무조건 통합"을, 노 대통령은 "대세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합작품인 듯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김헌태 소장의 말로 대신한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대선의 상수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사람이 내놓은 의제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보수진영의 '잃어버린 10년' '민주화세력 무능론'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의 결정적 변수가 되긴 어렵다. 문제는 차기 주자들의 지지도는 여전히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선은 인물과 리더십이 키워드다. 대선에서 환경 요인은 '회고 투표'를 막는 역할 정도다. 지지층에 일정한 자극은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번 정상회담으로 손학규·정동영·이해찬의 지지율이 올라갈까? 오히려 주자들의 목소리가 실종되고 가려질 수 있다. 노무현과 김대중의 의제일 뿐이다. 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

"DJ 잘했다. 노무현 잘했다. 문제는 너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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