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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대선진맥②-유시민>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평소 정치기사 클릭수를 훌쩍 넘겼고, 댓글로도 진지한 의견을 경청할 수 있었다. 해서 유시민 메뉴로 요리를 하나 더 만들어 보았다. 예고해 드린대로 '환상의 복식조'편인데, 선수를 어찌 묶어 볼까 고민하다가 유시민을 매개로 할 수 있는 두 가지 조합을 생각해 봤다.

손학규 vs 유시민
이해찬 vs 유시민

잠시 돌아가자. 나는 지금 국회도서관에서 이 기사를 쓰고 있다. 오전 취재를 마치고 어디에 진을 칠까 하다가 국회도서관이 떠올랐다. 시원하고 쾌적하다. 노트북을 들고 들어와 조용한 서가에서 우아한 자세로 기사를 쓸 참이다.

점심식사는 도서관 식당에서 해결했다. 3천원짜리 식권으로 차려진 밥상은 콩나물이 대부분인 해물찜과 가지조림, 청포묵, 김치, 김, 된장국이었다. 맛이 별로다. 온통 풀밭인데다 싱겁다. '웰빙식'이긴 한데 확 당기는 맛이 없다. 차라리 이 모든 반찬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면? 부러 대접을 달라하기 귀찮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현재의 범여권이 이런 처지가 아닐까. 열명이 넘는 대선 후보들을 대통합신당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 싹싹 비벼? 어떤 맛일지 장담할 순 없다. 볼품은 없지만 맛있는 '한 그릇' 요리가 탄생할지,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는. 유시민은 그 '소스'역이 아닐까 싶다. 간장 혹은 고추장. 비호감 층에서조차 "흥행을 위해 유시민이 나오는 게 좋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유시민은 어떤 톡 쏘는 맛을 내는 메뉴임에 분명해 보인다.

지난 기사의 네티즌 댓글 중에도 "지루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상큼한 논리" "논리정연하고 맥이 뛰는 생동감" 있는 연설과 토론을 보고 싶다며 "유시민을 상장하라"는 주문이 꽤 있었다.

[손학규-유시민] 호감 주는 경계인 vs 마니아들의 열광

▲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김두관 전 장관의 자서전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유시민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단 손학규와 유시민 조합을 따져 보자. 둘은 참 다르다. 아직은 가시화 되지 않았지만 범여권 주자들의 경쟁 구도를 점칠 때 손학규와 유시민이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이른바 비노와 친노의 대표주자다. 또한 손학규가 애매모호한 경계인으로 너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면 유시민은 스타일과 노선의 선명성으로 인해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손학규는 "유시민부터 박상천까지"로 요약되는 '짬뽕신당'(대통합신당)에서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 마다하는 세력이 없다. 시민사회그룹도 '오케이' 했고, 민주당 강경파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그런 기반을 활용해 최근 박상천 대표를 만나 "크게 결단해 달라"고 신당 참여를 촉구했고 이해찬, 김혁규 등 친노 대선주자들과의 회동도 추진 중이다.

한발 더 나아가 유시민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손학규 캠프 내에선 한때 "유시민도 만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대통합 신당의 골칫거리인 '친노 배제론'을 통 크게 넘어서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반한나라당 후보'로서의 입지를 돈독히 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캠프 내에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뭣 하러 유시민을 키워주냐"는 지적에 더해 유시민 자체에 대한 알레르기가 컸다. 정서적 거부감이다.

손학규 캠프에는 청와대, 열린우리당 출신의 '386'들이 많다. 내달 초에는 386 중심의 30여명 의원들이 집단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지 선언 시점을 보고 있는 한 386 의원은 "유시민에게 상처받은 영혼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화근은 유시민의 까칠한 언행이었다.

유시민과 386 사이, 감정의 골은 깊다. 2005년 당권 경쟁에 나선 송영길 후보는 "완장 찬 골목대장" "분열적 개혁주의"라고 공격했고,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냐"는 말을 던졌던 김영춘 의원은 작년 초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입각을 앞장서 반대했었다.

유시민은 이번에도 에둘러 가지 않았다. 대통합신당으로 가는 길목에 선 그는 통합세력인 손학규에 대해 다음처럼 일침을 놨다.

"옛날에 딴 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김대중 대통령 보고 '정신병자'라고 하고, 노무현 대통령 보고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편집자주)'라 그랬던 험한 말들도 다 잊어드리겠습니다. 보따리 싸서 어느 날 우리 집 앞에 와 계시기 때문에 다 포용하겠습니다(웃음)."(지난 14일 '참평포럼' 축사에서)

선동적인 '레토릭'(수사) 때문에 미움을 두 배로 받는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빼다 박았다. 외교적, 의전적 언사로 에둘러 가는 법이 이들에겐 없다. 유시민이 비호감을 자처하는 주된 이유다.

▲ 손학규 전 경기지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손학규는 '호감' 넘버원이다. 비한나라당 후보를 대상으로 조사한 '인지호감도'에서 손학규는 정동영과 이해찬을 앞서며 유일하게 50%를 넘겼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강원택 교수(숭실대 정치학)는 손학규의 호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개혁이미지가 있으면서도 극단적이지 않다. 아주 강한 보수여서 구닥다리란 느낌도 안주고 아주 강한 진보여서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보수정당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왔고 경기도지사 경험이 있으니 합리적인 수준에서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리하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때문인 측면이 크다."

손학규에겐 언론도 호의적이다. 정치부 기자의 40% 정도가 여야를 막론하고 손학규를 바람직한 대통령으로 꼽았다(<미디어오늘>조사). 작년 6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돌입한 민심대장정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는 손학규가 마의 5% 벽을 깨는데 발판이 되었다.

또한 지지율 면에서 이명박과 박근혜와 견줄 수 없지만 언론은 항상 그를 '빅3'로 묶었다. "내 지지율이 과거 손학규 지지율까지 올랐는데 나는 왜 '스몰3'라고 쓰냐"는 홍준표 의원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반면 유시민의 언론에 대한 불만은 거의 체념 수준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한 유시민"이라는 언론의 표현에 대해 "나는 자처한 적이 없다"고 항변을 해도 소용없다. 논란이 되었던 "청년실업 각자가 해결하라"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주체적인 노력과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여즉 그를 따라 다닌다. 한마디로 자신은 '님'이라 하는데도 언론은 점하나를 찍어 '남'이라고 보도한다는 억울함이다.

손학규-유시민조, 이들의 승부는 어디로 수렴될까?

[이해찬-유시민] '환상의 복식조' 언제까지 유지될까

한 네티즌은 이해찬-유시민에 대해 손학규에 맞설 "환상의 복식조"라고 평가했다. 같은 편이라는 얘기다.

이해찬과 유시민은 3년만에 의석수 반토막이 난 열린우리당의 당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대통합신당의 전제조건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선과 가치를 공히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열린우리당 해체 주장에 맞서 '당 대 당 통합'이라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찬 캠프에서 홍보 일을 맡고 있는 유시춘(유시민의 누나)씨는 "둘이 적대적 경쟁 관계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로 아예 못을 박았다. 유시민의 대선 후보 출마를 두고 '친노 세력의 외연확대를 위한 전략적 경쟁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부인하지 않겠다"고 털어놨다.

이해찬-유시민의 경쟁은 시너지를 높이는 게임이다. 유시춘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은 63% 지지를 얻었지만 분열로 패배했다. 그 때 양김을 지지했던 민주개혁세력의 권위를 정확히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 이해찬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민주 대 반민주를 얘기할 순 없다. 유효기간을 다한 상품이다.

87년 때 태어난 친구들이 올해 처음으로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디지털 군단이고 가난과 독재를 모르고 태어난 세대다. 이들에겐 세상을 보는 새로운 잣대와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이 두 세대가 만났을 때 20년 전 구도는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해찬은 후자가 취약하다. 한 달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뒤늦게 홈페이지(www.chans4u.net)를 가동했다. 넷심을 얻기 위한 시도 자체가 없었다. 또 국회의원 5선에, 장관, 총리까지 안 해본 건 대통령뿐이니 '국가원로'급으로 느껴진다. 이해찬(52년생)과 손석희(방송진행자·56년생)가 같은 50대라는 건 믿겨지지 않는다.

유시민은 이해찬의 취약점을 정확히 반대측면에서 대변하고 있다. 일찍이 인터넷상에서 소통을 해왔고 90%는 네티즌 지지자들이다. 대선 후보들 중 민주당의 추미애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후보와 동갑내기로 최연소 40대 그룹(59년생)에 속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청년층을 공략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

지역적으로도 둘은 상호보완재다. 이해찬의 고향은 충남 청양이지만 이미지는 '호남 사람'으로 형성되어 있다. 친DJ 이미지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래 민주화 운동을 해왔고 또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 이해찬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시민은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한, 아직까지도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영남 사람이다.

"1985년 10월경이었다. 시민이가 출소하던 날, 나와 당시 민평련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가 함께 마산에 내려갔다. 그런데 총리가 또 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며 누군가를 기다리더라. 그 사람이 바로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였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유시춘의 회상이다. 그 뒤 이해찬은 1988년 총선에서 국회 첫 입성한 초선의원이 되었고, 유시민은 그의 보좌관으로 2년 남짓 돕다가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이해찬, 내 맞수는 손학규... 휴가 떠난 유시민

▲ 지난 19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둘의 경쟁을 단지 '짜고 치는 고스톱'만으론 볼 수 없다. 이해찬은 유시민과 자신을 한 묶음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색깔과 개성, 성격, 출신지, 얼굴색 많은 게 나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해찬과 유시민은 "같은 친노"가 아니다. 노무현-이해찬-유시민 모두 '원칙'에 죽고 사는 꼿꼿함이 있지만 정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해찬이 총리로 있으면서 노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대표적인 경우가 유시민 입각 파동 때였다. 총리가 밀고 대통령이 당겨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이 총리는 "당의 반발을 고려하시라"며 독대의 자리에서 직언을 했다고 한다.

당시 당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이었다. 장관 임명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해도 당이 저렇게까지 반대를 하는데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당시 이해찬의 판단이었다.

또 이해찬은 지난 18일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출마선언 한 달을 기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시 관악구 당원들을 상대로 강연이 잡힌 날이었다. 강연장이었던 관악문화관(700석)은 1, 2층이 빽빽하게 찼다. 이해찬은 "강연을 많이 다녔지만 내 강연에 보조의자까지 등장한 적은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청중을 향해 큰절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날 동행한 유기홍 의원은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며 "자기를 낮추려는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이해찬이 '의리'를 중시한다면 유시민은 철저한 자유주의자다. 문화적 도발을 감행하고 위선에 직격탄을 날려 왔다. 국회 첫 입성식 때 그 유명한 '빽(흰)바지'를 입고 나와 소동의 주인공이 되었고 제식구라고 감싸는 법이 없어 같은 당 의원들 중에도 편이 없다.

이해찬은 유시민의 대선 출마에 대해 "저보다 더 뛰어난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덕담과 함께 "출마는 본인의 자유의사"라고 원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유시민 역시 "운동권 선배, 정치 선배, 인생의 스승"이라고까지 생각하지만 "나 역시 대통령 출마 자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원칙 하에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이해찬은 결국 최종적인 승부는 손학규와 벌이게 될 것을 염두에 두며 마음을 벼리고 있다. 참모들의 고민은 "손학규에 비해 확실한 변별력을 지닐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기획본부장을 맡았던 이해찬. 이제 자신의 선거를 치를 차례가 된 것이다.

이해찬 캠프의 정태호 기획팀장은 "선거는 프레임인데 손학규는 한나라당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며 "본선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후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손학규 캠프에선 "언제까지 과거에 대한 평가가 먹힐 것 같냐"며 "손학규는 21세기가 선택한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시민은 내주 공식 일정이 없다. 일주일 동안 여름휴가를 떠난다. 마지막 장고의 결과가 어떤 것일까? 그의 말처럼 국민에게 '작은 즐거움'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대선진맥에선 민주노동당을 다뤄볼까 합니다. '지역당' 한나라당, '잡탕' 범여권에 비하자면 노선과 정체성으로 뭉친 유일한 진보정당이 별 재미를 주고 있지 못합니다.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기호순) 연쇄 인터뷰를 마친 뒤,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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