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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도해보는 논술

논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 서술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 대학에서 출제된 논술 문제나 참고서 문제를 풀이하거나 아이들에게 잡다한 지식을 심어주는 수업으로는 논술의 궁극적인 목적에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이들에게 단편적인 지식을 심어 주거나 단순한 기교를 가르쳐 주는 것이 논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술과 독서를 결합하여 논술 수업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논술 수업 교재로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쓴 <대담>을 선택하였다. 이 책은 생명공학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 우리 사회에서 해결하거나 짚고 넘어가야 할 여러 문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다른 분야의 두 학자가 나눈 이야기이기에 통합교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수업은 먼저 한 부분을 읽은 뒤 요약하고 토론을 거쳐 평가하였다. 통합교과 논술이 되면서 요약 문제가 자주 출제되고 있다. 이 책은 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분이 대담으로 되어 있기에 하나의 이론이나 현상을 보충 설명하기에 위해 잠시 옆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글을 읽어 나가야 하기에 요약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논술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논제를 놓치지 않는 것인데, 이 책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글을 읽어야 함으로 논술 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토론을 통해 논술 거리를 찾고 그것을 논제로 하여 글을 쓰게 하였다. 논제를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 맞는 글을 써보는 것은 알찬 글 읽기와 생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 서술능력이 길러진다고 믿는다.

이런 수업을 처음 시도해보지만 그래도 논술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다가서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 자신도 뚜렷한 답안을 제시할 수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고민하면서 배움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용기를 내었다.

<즐거운 몽상과 끔직한 현실> 요약하기

아니나 다를까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요약할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틀어놓는다. 아이들에게 슬쩍 귀띔을 한다. 첫 장의 제목이 무엇이지? 첫 장의 제목은 <즐거움 몽상과 끔찍한 현실>이다. 그러면 즐거운 몽상은 무엇이고, 끔찍한 현실은 무엇인가가 이 글의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즐거움이 몽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기 위해 또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가도 다루어야 할 것 같지 않나?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이 글을 요약한 김하나 학생은 주제를 놓치지 않고 요약을 잘 하였다. 즐거운 몽상을 할 수 있도록 발달한 생명공학,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현실, 이 현실을 극복하고 즐거운 몽상이 유토피아로 실현되기 위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야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불치병의 치료, 인간 수명의 획기적인 연장, 우성 유전자로만 갖추어진 아기의 생산 등등으로 고도로 발달한 생명과학은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를 제시해 주고 있다. 생명과학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생명과학을 신봉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명과학기술이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현대 약물 산업에서는 3불 - 불쾌, 불만, 불안 - 을 제거하는 '행복약'을 개발하였다. 이 약을 통해 인간이 슬픔, 분노, 우울과 같은 감정을 제거할 수 있게 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로 공포에 적응하고, 나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본성이 제거되면 인간은 슬퍼해야 할 상황에도 웃고, 무슨 일이든지 겁을 내지 않고 무작정 하게 되어 응급실은 넘쳐나는 끔찍한 현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행복약' 때문에 불행해지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행복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 행복 이데올로기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함정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고통과 쾌락은 하나의 머리를 가진 두 몸뚱어리라 말했다. 그러므로 행복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 필요하다. 성찰의 행위인 인문학과 창조의 행위인 자연과학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본적인 활동 영역이다. 이 두 학문의 통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우리의 즐거운 몽상이 끔찍한 현실이 아닌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부산국제외고 3학년 김하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첫 장을 읽고 아이들이 찾아낸 논술 거리는 세 가지이다.

① 이 글을 바탕으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② 이공 계열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비롯된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제시하시오.
③ 이 글을 읽고 생명 공학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 방안에 대해 서술하시오.

이 세 가지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기존 논술에서 많이 다루었기에 식상하다며 아이들은 첫 번째 것을 택하였다. 그리고 사람이면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기에 스스로 행복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것도 자신의 삶의 지표를 위해서도 가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글을 통해 조예나 학생이 찾아낸 행복은 다음과 같다.

벤담은 행복이란 다름 아닌 쾌락이고,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 가운데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에서 비롯하여 2000년이 더 지난 오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멸의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 과학의 발달은 이러한 불멸의 꿈에 다가설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발판을 제공했다. 의학의 발달은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것을 완치 가능하게 하고, 영생에 대한 희망의 불을 켜주었다. 그리고 우울증 치료제, 진통제 등과 같은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는 이른바 '행복약'이라는 것도 개발하여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제거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의 사라짐 그리고 불멸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고 해서 인간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행복을 향한 맹목적 추구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켜 버린다. 실제로 인간에게서 우울함이 사라진다면 조심성과 두려움을 상실한 사람들의 행위로 병원의 응급실은 넘쳐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불멸성 또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소멸 없이 생산만 존재하는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수 없다. 생명체는 그것의 죽음이 있기에 그 맥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고통과 쾌락은 하나의 머리를 가진 두 개의 몸뚱어리'라고 했다. 이 말은 고통과 행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옳고 그름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자주 놓인다. 편안한 길을 선택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기에 마음 한 구석이 늘 편하질 않다. 그런데 편안한 것을 포기하고 고통이 따르는 선택을 하게 되면 오히려 떳떳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행복은 바른 선택의 고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해서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 과학이 제시한 고통을 억제하는 기술로 행복에 다가설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바른 삶을 살아감으로 행복을 추구해나가야 할 것이다. (부산국제외고 3학년 조예나)


밴담의 행복론과 진시황의 불로장생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켜 서론의 참신성이 돋보인다. 현대 생명 공학의 발달로 '이러한 꿈이 우리 앞에 다가왔지만 과연 이러한 것이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며 문제제기를 정확히 하였다.

본론에서는 고통의 제거와 불멸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말하고, 진정한 행복은 고통 속에서 싹틈을 이야기하였다. 결론에서는 고통을 억제하는 기술에 의존하여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현실의 고통을 이겨나가는 바른 삶으로 행복을 추구해나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 글은 토론에서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행복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뚜렷하게 드러낸 좋은 글로 평가받았다.

덧붙이는 글 | 『대담』을 가지고 논술 수업 한 과정을 13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수업 과정입니다.


태그:#논술, #대담, #행복,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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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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