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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니 벌써 시작인가?”

백도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흑백쌍용을 향해 냉소를 날렸다. 흑백쌍용이 저곳에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미 비밀통로가 저들에게 파악되었다는 말이다. 순간적으로 홍교와 당화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허나 더 이상 그녀들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이미 흑백쌍용의 권(拳)과 각(脚)은 한방만 맞으면 뼈가 부러질 정도의 살기를 품고 맹렬하게 몰아쳐 왔던 것이다.

츄츠--스스슥---

백도는 몸을 빙그르 돌면서 좌측으로 미끄러졌다. 아주 자연스런 동작이어서 상대의 공격권을 벗어나면서 왼쪽으로 다가든 백룡에게 반격을 가하기 위함이었지만 그것은 백도만의 위험한 생각이었다.

백룡의 발은 방향을 튼 백도의 옆구리를 여전히 노리며 파고들었고, 그와 동시에 흑룡의 주먹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흑백쌍용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본능적으로 같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까지도 같은 판단을 하는 것 같았다.

“음…!”

백도는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백룡의 발길질을 막고, 양 팔을 교차시키며 팔뚝으로 흑룡의 주먹을 비껴나가게 만들었다. 그 순간 백도는 섬뜩한 느낌에 일단 몸을 뒤로 서너 발자국 물러섰다.

‘완전 정반대의 무공을 익혔군…!’

백룡과 부닥치자 매우 강렬한 양강(陽剛)의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에 흑룡과 부닥치자 음유하게 기혈을 파고드는 음기(陰氣)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동시에 대응하기 매우 곤란하다. 정반대의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은 기의 운용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는 바위를 가루로 만들 정도로 강하고 쾌속하다. 또 하나는 유연하고 음습하게 파고든다. 본래 사람은 타고난 체질이 있기 때문에 동시에 정반대되는 음양의 두 공력을 동시에 연마할 수 없고 한 몸에 모두 갈무리하고 운용하기 어렵다.

무당의 무공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태극(太極)의 원리다. 음양의 원리를 깨닫고 궁극에 이르면 한 몸에 음양이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허나 그런 경지에 이른 인물은 무당의 조사(祖師)가 유일하다. 그만큼 한 몸에 음양의 두 기운을 동시에 담기 불가능하다는 반증.

그러나 음양의 한쪽만 익힌 두 몸이라도 완벽하게 한 몸처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하나 스스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할지라도 두 사람의 합공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큰 파괴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흑백쌍용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키워진 자들이었다. 또한 흑룡이나 백룡 한 인물도 쉽게 이길 인물들은 중원에 그리 많지 않다. 허나 백도의 능력으로 보아 흑백쌍용 중 하나만을 상대하라면 적어도 이백초 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흑백쌍용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두 몸이었지만 서로를 쳐다보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정도로 훈련된 인물이었다. 감각과 느낌을 서로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들이었고, 그러기에 오히려 음양의 두 기운을 한 몸에 지닌 인물보다 더 위험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한 몸이 아니라 두 몸을 가지고 있었고, 두 주먹이 아니라 네 주먹을 가진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위력적이었고, 일수의 교환으로 그것을 느낀 백도는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는데 그것은 다른 때와 사뭇 달랐다. 본능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백도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

그것은 흑백쌍용도 마찬가지였다. 백도와 일수를 교환한 후 받은 느낌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병기를 뽑아들었다.

백룡의 병기는 특이하게도 폭이 넓지도 않았는데 끝이 한 치쯤 갈라져 있는 쌍첨검(雙尖劍)이었다. 그에 반해 흑룡은 양 손에 두 자루의 도(刀)를 들고 있었는데, 짧거나 길지 않은 한 자 반 정도 길이의 도였다.

츠츠츠… 사삭---!

백룡의 검에서 푸른 기류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그 벽광(碧光)은 두 줄기에서 네 줄기로, 네 줄기에서 여덟 줄기로 분리되며 백도의 상체를 덮어갔다. 동시에 흑룡 역시 좌측으로 돌면서 상체를 아래로 낮춘 채 백도의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듯 하체를 공격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쌍도가 마치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추는 듯 했다.

백룡의 검에는 진력이 실려 있어 막으려면 백도 역시 진력을 끌어올려 쳐내야 하지만 흑룡의 쌍도는 아주 유연하고 부드러운 호선을 그으며 다가들고 있어 피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타닥---!

백도는 자신의 옆에 있던 의자 하나를 발로 차올려 하체를 공격하는 흑룡을 향해 날림과 동시에 도를 뽑아들어 백룡의 검을 마주쳐갔다. 피할 수 있음에도 백룡의 검을 마주쳐 간 것에는 백룡의 진신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와자작--- 차창---

흑룡에게 날렸던 의자가 허공에서 완전히 박살나며 나무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흑룡은 의자를 박살내며 다가드는 속도를 늦춤이 없이 백도의 차체를 이리저리 쓸어왔다. 그 순간 백룡의 검과 마주쳤던 백도는 손아귀에 느껴지는 약간의 충격을 느낄 사이도 없이 급하게 몸을 허공에 띄워 한바퀴 돌면서 옆의 탁자 위로 올라섰다.

정말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자칫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다가 치명상을 입을 뻔 했다. 허나 이미 공격권을 쥔 흑백쌍룡은 백도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백도가 탁자에 올라서자마자 흑룡의 쌍도가 탁자를 가르며 아래서 치켜 올려졌다.

빠직----!

반자 두께의 탁자가 흑룡의 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귀퉁이가 무 베어나가듯이 잘려 나갔다. 백도의 신형이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고, 그것을 놓칠 리 만무한 백룡이 순식간에 삼검(三劍)을 날렸다. 검영(劍影)이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져 허공을 빽빽하게 수놓았다. 백룡은 절정에 이른 검수였다.

“흡…!”

백도는 숨을 들이키며 재차 몸을 틀었다. 허공에 떠 있던 백도로서는 불안정한 자세로 인하여 신형을 민첩하게 놀릴 수 없었다. 잠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다. 흑백쌍용에게 제대로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며 피하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허나 백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상체와 하체가 허공에서 겹쳐지는 듯 하더니 상체를 뒤집어 내리꽂히며 백룡과 흑룡을 향해 동시에 도기를 뿜었다.

츠츠츠----

그의 도에서 며칠 전 설중행에게 보여주었던 하얀 섬광이 뿜어지면서 용의 비늘(龍鱗)과도 같이 도광(刀光)이 그물 펴지듯 사방으로 비산하며 내리꽂혔다. 선제공격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던 흑백쌍용은 백도의 예상치 못한 반격이 펼쳐지자 황급히 좌우로 퍼지며 백도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빠직---- 파파팍---

원형탁자에 백도의 도광이 박혀들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것도 없이 그 자리에 나무토막으로 잘게 부서지며 폭삭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바닥 역시 군데군데 도기에 그어져 패인 곳도 보였다. 백도의 도에 어떠한 위력이 있는지 일순간에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흑백쌍용 역시 그 모습을 보며 간담이 서늘했다. 역시 백도는 가공할 무위를 가진 자였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멈출 그들이 아니었다. 흑백쌍용은 좌우로 퍼졌다가는 재차 바닥에 신형을 세우는 백도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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