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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 IVP출판사
'청부론', 풀어쓰면 '깨끗한 부자'다. 요즘 한국 교회 안에서 논쟁 중인 말이다. 청부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부자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돈'과 '부자'라는 개념에 부담을 가졌던 성도들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주장이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돈'과 '부자'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적이요, 가치체계이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국교회 성도들도 예외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교회가 이미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청부론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김영봉의<바늘귀를 통과한 부>가 청부론 비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기독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 읽을 만한 책이다. 돈은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 교환가치로 기능하며 어찌 보면 중립적이다.

이에 대해 김영봉은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스 거니스는 좀처럼 사물을 신격화거나 인격화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이 맘몬에게 인격적 힘을 부여하셨음을 주목하라고 요청한다. 이유는 돈은 결적인 영적 능력을 지닌 능동적인 매체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책 26쪽-

이 말은 돈 그 자체는 무생물로 가치중립적이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순간부터 이미 인격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이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이다. 이미 돈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있다.

목사와 성도들은 말한다.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어느 정도 구제와 선을 행한 후에 남은 모든 것을 나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삶이라고 한다. 참 좋은 의미로 들린다. 가난한 사람보다 좋은 부자, 깨끗한 부자를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언 23:4-5).

"진정으로 거듭나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물질을 혼자서만 누리지 않고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용한다. 돈을 벌고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욕심 없이 자신의 물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신앙의 사람은 부자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44쪽 인용

부자되기에 목마른 한국교회가 새겨야 할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돈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이미 상실해버린 현대 사회이다.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라 말을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고 있다. 그럼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김영봉은 그렇다고 말한다. 가난이 주는 유익이다.

"부가 영적 생활의 목을 조른다면 가난은 영적 생활을 자유하게 한다. 부를 많이 소유하게 되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보장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지만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사람은 하나님께 믿음을 둔다. 부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지만 가난은 눈을 뜨게 해준다. 부는 우리 자신을 지배자로 만들지만 가난은 겸손하게 만든다. 부를 잘못 다루면 심판에 처하게 되는 반면, 스스로 택한 가난은 그런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한다. 지나친 가난은 악이지만 스스로 택한 가난은 선이다." 56-58쪽 인용

가난 그 자체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청빈한 삶, 가난한 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고귀하며, 존귀하다는 말이다. "나는 가난을 자랑하리라"는 말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승리주의적 고백이다.

대형교회와 부자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공한 교회로 추앙받고, 가난한 교회와 작은 교회가 믿음 없는 교회로 질타를 받고 있는 현 한국교회는 사실 자본주의 똑 같다. 아니 더 강하게 성도들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돈과 부자 논리가 이제 교회에서 일반사회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교회가 비판받는 이유는 성경과 교리 때문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교리의 가르침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보다 더 지독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국교회가 생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청부론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란 가난한 삶, 자족의 삶, 노동의 삶,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가 요구하는 삶이기도 하다. 돈이 지배하는 한국사회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읽을 만한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IVP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지음, IVP(2003)


#부자#바늘귀#예수#가난#청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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