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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했다가는 거란놈들이 눈치를 채고 말 것이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은밀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하지 그렇게 소문을 내고 더디게 했다가는 곽주성을 점령할 수 없는 일이네. 게다가 내가 언제 칠백 명만으로 곽주성을 친다고 했는가?”

유도거와 김달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무릎을 딱 쳤다.

“그렇구나! 통주에 아직 우리 병사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바로 그걸세. 이곳에서는 그 보다 많은 병력을 뺄 수 없네 그러니 내일 아침 흥화진을 빠져 나가면 우선 통주로 가서 이랑이 이끄는 병력과 합세한 후 곽주성을 급습할 생각이네.

“과연 장군님.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유도거와 김달치는 아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소리로 양규를 치켜세웠다. 그렇다고 양규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우쭐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양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계획을 유도거와 김달치에게 알려준 것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양규와 유도거, 김달치가 이끄는 700명의 병사들은 간소하게 부장들의 전송을 받으며 은밀히 흥화진을 빠져 나갔다.

“거 이랑이라는 자는 천 여 명이나 되는 병력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왜 꼼짝도 않고 있는 겁니까?”

유도거의 질문에 양규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이랑은 조정에서 임명한 장수가 아니네. 병사들 중에 추대된 자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걸세.”

“예? 그런데 그 전령놈은 감히 장군이라고 추켜세웠단 말입니까?”

김달치가 저도 모르게 말소리를 높였다. 김달치는 평생의 소원이 병사들로부터 장군이라는 칭호를 듣는 것이었다.

“그만큼 대단한 자가 아니겠느냐? 병사들을 잘 다독여 둔 공이 있으니 내 그 자를 부장으로 두고 쓸 작정이네.”

“허. 그 놈 참 벼락출세하네.”

김달치가 입맛을 쩝쩝 다시자 유도거가 그를 툭 쳤다.

“에끼 이 사람아. 우리야말로 어제까지는 병졸이 아니었나!”

“참 그렇지. 금방 병졸 신분 벗어났다고 개경에 있을 때만 생각했네 그려. 헛헛”

앞서 가던 양규는 유도거와 김달치의 말에 슬쩍 웃음을 지었다.

이틀 동안 강행군을 하여 통주에 도착한 양규의 부대는 통주인근의 처참한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 통주에는 도처에 고려군의 기치와 무기가 버려져 있었고 드문드문 고려군의 시체가 처참하게 뒹굴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 고려군이 목숨을 바쳐 거란군과 싸웠던 곳이다.”

양규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에게 제단을 차릴 것을 지시했다. 황폐한 통주의 한가운데 간소하지만 정성껏 차린 제단이 마련되었다. 제단의 첫줄에는 과일이 차려졌고 둘째 줄에는 익힌 나물, 셋째 줄에는 채소, 넷째 줄에는 밥과 국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양옆에는 들꽃을 정성스럽게 꽂아놓은 후 녹차로 잔을 올리며 향을 태웠다.

“원컨대 큰 자비로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나라를 지키다 정토한 이들이여. 부처님의 은덕으로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비나이다.”

병사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제를 올렸고 제사를 마친 후에는 땔감을 모아 쌓은 후 그 위에 시체를 올리고 불을 질렀다. 타오르는 시체를 보며 고려군은 거란군에 대해 무서운 적의를 불태웠다.

“저쪽에서 우리 군의 기치가 보입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의 보고에 양규는 행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거란군의 기만전술에 대비해 유도거와 김달치에게 즉시 응전태세를 갖출 것을 명했다. 깃발 신호 몇 번에 순식간에 궁병과 노병이 길게 늘어섰고 그 뒤에는 창과 극을 든 병사들이 정렬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연재소설, #결전, #최항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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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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