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라는 말이 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체제 전환을 이룬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오현제 시대까지 로마가 향유하였던 '평화'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지닌 로마가 동쪽에는 파르티아와, 북쪽에는 게르만 족과 대치하며 평화를 일구어냈다고 한다.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로마가 이루어 내었다는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과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로마에 의한 평화'는 라틴 민족, 그리스 민족, 게르만 민족, 갈리아 민족 등이 동등한 위치에서 합의한 후 이룩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현대의 '국제 연합'이나 비정부 기구와 같은 것들을 만들어 평화를 호소한 적도 없다. 그들은 단지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우며 주변 민족을 억압하고 그들의 헤게모니를 강요하며 이룩한 평화이다.

'로마의 칼'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전역을 겨냥했다. 로마 군단은 페니키아 인들을 굴복시키고 다음으로 그리스, 소아시아, 오리엔트 지역을 차례대로 그들의 발 아래 엎드리게 만들었다. 로마 군단의 행진은 이어 갈리아, 게르마니아, 다키아로 이어졌다.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이름 아래 스러져 간 국가와 민족은 수없이 많다.

로마의 무자비한 칼날은, 그들이 생각하는 일정 선에 이르러서야 멈추었다. 그 선이라는 것은 인류애이니 박애이니 같은 거창한 구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국익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선에서 그들의 칼을 거두었다. 카이사르가 라인 강에서 진격을 멈춘 것은, 게르만 족과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가 아닌, 로마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바깥을 향하여 자신의 칼날을 겨눌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로마의 제국주의는 19세기 열강들의 제국주의와는 태생적으로 완전히 달랐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 3권에 소개되었던,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폰투스의 미트라다테스 왕을 패퇴시킨 후 킬리키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했던 키케로가 그의 동생에게 보냈던 서한의 일부를 인용한다.

"아시아(로마인에게 아시아라면 소아시아와 오리엔트를 의미했다)는 우리 로마 덕분에 끝없는 전쟁과 내분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가진 부의 일부가 로마의 패권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바쳐진다 해도 그것을 불평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희생은 이 지방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15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평화를 쟁취하였는가? 특정 국가의 패권으로 유지되는 평화가 아닌, 인류 세계의 모든 구성원이 자기 자신의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는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였는가? 이러한 물음은 우리의 현실을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은 또한 인간의 이성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무한정의 소유욕은 전쟁과 정복이라는 극단적인 경로로 폭발하고, 이는 '세계 평화를 위한 강단'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된다. 글라디우스는 전열함으로, 전열함은 강철 전함으로, 강철 전함은 핵무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로마 군단이 글라디우스와 사각 방패를 들고 쳐들어오든, 둥그런 방탄헬멧과 방탄조끼를 갖추어 입고 M-16 소총이나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들고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든, 강대국들의, 세계 평화를 위하여 '할 수 없이' 나선다는 궤변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그 폭언을 입 밖으로 꺼내는 장소가 포룸 로마눔이든, 백악관이든, 크레믈린 궁전이든 준비된 레퍼토리는 언제나 동일하다. '팍스 로마나'든 '팍스 브리태니커'든 '팍스 아메리카나'든 본질은 같다. 그저 제국주의 국가에게 우리의 권리를 힘없이 내놓고 얻은 국물을 '평화'랍시고 넙죽넙죽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모든 국가와 모든 민족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평화를 영위한다는 발상을 우리는 유토피아적 발상으로만 치부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으며 실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많은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 중요한 진리인가를 무의식 중에 인식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단순한 것을 너무나 쉽게 무시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영국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국에 아편을 팔았고 아편 판매를 금지하는 중국에 항의하고 전쟁을 일으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였다. 세계 평화를 협의한다던 만국 평화 회의는 기실 강대국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선을 합의하기 위한 회의에 불과하였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발의로 시작된 국제 연맹은 시작부터 미국 의회의 반대, 승전국의 복수욕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또한 자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권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으로 국제 연맹마저 풍비박산이 났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또다른 세계 대전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평화를 갈구한 소박한 희망 덕분이 아닌, 강대국들의 이념을 둘러싼 군비 경쟁 덕분이었다. 왜 우리는 우리 안에 이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성의 소리를 끊임없이 자각하였음에도 이성에 반하는 행동을 했던 것일까? 이러한 비이성적 행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갈구한 인과응보는 뚜렷하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손쉽게 지배하고자 야기한 두 민족 간 갈등은 유럽인들이 마수를 거둔 이후 내전으로 비화되어 수 만 명이 죽거나 난민이 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평화를 위해서는 자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군비 경쟁은 급기야는 지구를 몇 번이고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핵무기 수천 기를 지구상에 배치시켜 놓았다.

비이성적인 평화의 추구가 지속되는 것은, 고위층들이 이성의 외침이 아닌, 탐욕의 속삭임을 그대로 실천하며, 그것을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포장하여 민중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청나라의 아편 몰수를 빌미로 중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느냐를 놓고 의회에서 논쟁을 벌일 때, 영국 자유당의 영수였던 W.E. 글래드스턴은 이러한 발언을 하며 내각의 제국주의적 전횡을 비판하였다.

"이 전쟁의 승리와 그 이득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무리 이득이 크더라도 그로 인해 국왕폐하의 정부와 국가가 입을 명예와 위신, 존엄의 손상에는 비길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지키자는 이러한 외침이 있었음에도 영국은 결국 중국을 침공하였고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을 체결하여 그들의 무한한 탐욕을 채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영국에 의한 평화(팍스 브리태니커)'는 달성되었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 아래에서 인류애의 구현은 망상에 불과하다. 강대국이 주도하는 평화 체제는 세계 구성원이 대등하게 위치하는 것이 아닌, 강대국의 이익을 위하여 힘을 이용하여 약소국을 억누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위층의 전횡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이성의 소리를 따를 것을 촉구해야 할 민중들이 오히려 고위층의 선동에 부화뇌동하고 맹신한 잘못 또한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흐를수록 민중의 인식 능력과 정치 참여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시민 혁명 이후 민중의 정치 참여의 길은 열리게 되고 그들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우매한 존재였다.

소수의 민중만이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에 주목할 것을 호소할 뿐 대다수의 민중은 언제나 고위층의 사탕발림에 열광하며 이성의 목소리를 미친 자들의 헛소리로만 치부하였다. 9·11 테러로 전 미국이 충격에 휩싸였을 때, 미국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왜 미국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와 같은 자성의 목소리가 아닌, 오직 미국인들을 공격한 아랍인들에게 복수하자는 것뿐이었다.

인민의 의지대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고위층들은 민중들의 우매함을 악용하여 그들의 탐욕을 관철시켜왔다. 민주주의든 아니든 민중은 이용만 당해왔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전쟁과 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마당에 강대국에 의한 평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일견 타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를 일구어 낸다는 것은 환상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갈라져 있으면 싸울 것인데 패권 국가 아래에서 좀 주권이 제한받는 일이 있더라도 평화를 누리는 게 나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라는, 이런 절름발이 평화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가 깨어졌을 때의 그 후유증은 인류 전체로 보았을 때 전혀 이익이 되지 않으면서 크나큰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강대국에 의한 평화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혼란을 빠른 시일 내에 타개하고자 다른 강대국이 등장하길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몇몇 힘 있는 국가들이 패권을 잡기 위하여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

'영국에 의한 평화'의 종언,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패권을 놓고 1945년부터 1989년까지 지속된 미국, 소련 간 군비 경쟁은 지구상에 엄청난 양의 병기를 올려다 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군비 경쟁으로 소비된 막대한 양의 자원 소모, 그리고 그 경쟁 과정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분쟁에서 죽어간 인적 자원의 가치는, 인류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는 평화 체제가 강대국의 헤게모니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평화 체제가 유지될 뿐 그 외의 지역은 평화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로마에 의한 평화' 시기에 평화 유지는 단지 로마의 세력권 안에서만 유지되었을 뿐, 세계 전체로 보았을 때는 평화 체제가 전혀 성립되어 있지 않았던 점을 상기시키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강대국에 의한 평화는 피지배 국가 또는 민족의 반발을 초래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패권을 장악한 강대국이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직접 사용하거나 무력을 배경으로 놓고 정치적으로 자국의 헤게모니 안에 병합시키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두 민족 또는 국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심지어 전쟁으로 비화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과 소련의 세력 다툼 속에서 호치민이 조직한 베트민의 활동으로 베트남이 공산화될 상황에 놓이자 미국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주의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괴뢰 정부를 세우고 자국의 헤게모니 아래에 있는 국가들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남은 것이라고는 고엽제에 말라죽은 열대우림, 전화(戰火)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미망인, 당사자 사이에 깊게 패인 감정의 골뿐이었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는 또한 인간 세계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문제점이 있다. '로마에 의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로마 군단이 전진한 곳 중 하나인 갈리아는 많은 면에서 갈리아적인 것을 잃어버렸다. 갈리아식 이름은 로마식으로 바뀌었다. 갈리아의 종교였던 드루이드 교 또한 로마의 탄압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 시기에는 강대국의 헤게모니 아래에 있는 국가가 가진 자산의 가치를 강대국의 국익에 따라 재단하게 된다. 그 결과, 헤게모니 아래에 있는 국가의 문화는 훼손되거나 아예 사라질 위협에 직면한다. 자연 생태계 안에서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에너지 순환이 원활해져서 생태계의 영속성이 보장되듯이, 인간 세계에서도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인간 세계의 영속성이 보장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강대국에 의지하여 평화를 일구어 내지 말고 인간 세계의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며 평화를 달성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 체제를 계속 인정하게 되면,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을 용인하여야 하고, 이는 경쟁 과정에서 가공할 정도로 많은 양의 자원 소모를 강요하여 결과적으로 국가 간의 빈부격차로 야기되는 갈등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울러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비효율적인 경쟁으로 인간의 자멸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강대국에 의한 평화 체제의 대안은 무엇일까? 물론 모든 세계 구성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평화를 이루어 내는 것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의 구성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국제 연합이 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확장이라는 개념은 국제 연합 조직의 확장이 아니다. 가입 국가의 확장과 구성 국가들이 가진 권한의 확장을 의미한다. 타이완같이 정치적 문제 등의 이유로 국제 연합 가입이 거부되거나 탈퇴한 국가들을 모두 국제 연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아울러 국제 연합에서 상임 이사국 제도를 장기적으로 철폐해야 한다. 강대국이 국제 연합 안에서도 무소불위의 발언권 및 거부권을 발휘하게 되면 강대국의 이익에 국제 연합이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다음으로 비정부 기구의 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부 기구가 개입되면 국익이 개입되면서 국가 사이에 쓸데없는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비정부 기구는 국가 간의 의견 마찰 등에 있어서 국제 연합과 함께 제3자의 입장에서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특정 국가의 세계 평화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 또는 환경의 파괴를 가져올 행동 등을 고발하고 시정할 것을 요청하거나 국제 연합에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 국가들의 군비를 축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군비 축소 노력은 대량 살상 무기 감축부터 시작하여 장기적으로는 대량 살상 무기 폐기 및 재래식 무기의 분량의 감축을 실시하여야 한다. 냉전 시대 SALT, START 협정 등 미국과 소련 간의 합의로 많은 양의 핵무기를 폐기하였지만 그 정도로는 불충분하다. 군비 축소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전쟁의 위험을 줄여나가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영토를 가지고도 군대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2차에 걸친 세계 대전으로 더 이상의 전쟁은 불가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우리 모두 더 이상 전쟁을 허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 군축 등을 통한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건설하여야 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번의 큰 전쟁과, 50여 년간의, 인류를 완전히 말살할 수도 있었던 전쟁 위협을 경험했다.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 전쟁 덕분에 인간이 가진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등속의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이룬 기술 발전은 또 다른 군비에 대한 투자로 이어져 제2의, 제3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쟁을 위한 기술 발전'이라는 논제가 역사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류사에서 과학의 전쟁 범죄, 전쟁 영웅, 무공 훈장과 같은 단어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야 한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바다에서 우리나라 해군의 고속정 한 척이 가라앉았다. 앞길이 창창하던 사람들이 무력 앞에 유명을 달리 하는 등 인생이 갈기리 찢기워 졌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미군의 시체를 발굴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제단에 바쳐야 전쟁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흘린 피는 이정도로 충분하다. 우리는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 전장에 나갔던 군인들 중에 자신의 자식이 전화에 휩싸이길 바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장은 힘들지도 모른다. 패권 국가들이 자신들의 패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를 성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좇아왔고 그 꿈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과대망상이라 놀림 받아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존재하였기에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당장은 평화에 대한 염원이 과대망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손에 손잡고 노력한다면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 평화라는 푸른 들판이 보일 것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사용할 국어 사전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고어(古語)로 등재될 날을 기다려 본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 이야기, #헤게모니, #평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