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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아 노동조합과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700여 명이 25일 오후 2시 뉴코아 아울렛·킴스클럽 야탑점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코아 노동조합과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700여 명이 25일 오후 2시 뉴코아 아울렛·킴스클럽 야탑점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지난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뉴코아 킴스클럽 야탑점 앞. 김미진(가명·24)씨는 계산대가 아닌 거리로 나왔다. 지난 22일, 회사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그의 표정엔 침울함이 가득했다. 김씨는 "오늘이 월급날"이라면서 "퇴직금까지 같이 나왔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김씨는 1년 1개월 동안 일주일에 여섯 번 매장에 나가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일했다. 그래서 김씨가 쥔 돈은 100만 원 정도. 오후 2시에 점심을 먹고 끝날 때까지 쉬지도 못했다. 상여금이나 다른 혜택은 꿈도 못 꿨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건 계약해지였다. 김씨는 지난 22일이 1년 1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계약만료 전 날인 21일에서야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너무나도 황당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뉴코아 아울렛과 킴스클럽에서는 전국 17개 지점의 비정규직 계산원 380여 명 중 100여 명이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는 비정규직 법이 시행되는 7월 1일 전까지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모두 용역으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키던 계산대는 용역 직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휴지조각처럼 버릴 수 있느냐"

박양수 뉴코아 노동조합 위원장이 뉴코아 킴스클럽 앞에서 노동조합 노동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박양수 뉴코아 노동조합 위원장이 뉴코아 킴스클럽 앞에서 노동조합 노동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뉴코아 노동조합과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700여 명이 이날 오후 2시 뉴코아 아울렛·킴스클럽 야탑점에 모였다. 파업 3일 째를 맞는 이들 노동자들은 계산대를 되찾기 위해 매장 입구 여러 곳을 통해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어떤 곳은 아예 내려져 노동자들도 손님도 들어가지 못했다.

박양수 뉴코아 노조 위원장은 매장을 가리키며 "우리 직원들의 건물인데 왜 못 들어가느냐"고 말했다. 이어 "뉴코아가 돈을 벌어서 도대체 어디에 쓰고 있느냐"면서 "일자리를 뺏는데 돈을 쓰고 있다"고 외쳤다.

오후 3시, 결국 뉴코아 노동자들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매장에 진입했다.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문을 열어줘 순식간에 계산대를 점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돌려 달라"며 계산대에서 회사를 향해 억울함을 쏟아냈다.

홍순미 뉴코아 노조 조직2부장은 "1997년에 입사해 계산대에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매일같이 야근하며 이 악다물고 일했다"고 말했다. 또한 "10년 동안 회사 발전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데 어떻게 휴지조각처럼 버릴 수 있느냐"며 외쳤다.

비정규직 계산원뿐 아니라 정규직인 사무직 노동자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김은주(30)씨는 "사무실 정규직들을 협의도 없이 영업부, 문화센터 등으로 내보내고 있다"며 "다들 비정규직 다음엔 정규직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급날, 뉴코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매장에 숨어 들어가 자신들의 일터였던 계산대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일자리를 돌려 달라"고 외치는 것밖에 없었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계약 해지"

오후 3시 뉴코아 노동자들이 뉴코아 킴스클럽 야탑점 지하 2층 계산대를 점거하고 있다.
오후 3시 뉴코아 노동자들이 뉴코아 킴스클럽 야탑점 지하 2층 계산대를 점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같은 시각 "비정규직 철폐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구호가 뉴코아 아울렛 인근 홈에버에서도 들렸다. 뉴코아, 홈에버 노동자 200여 명이 홈에버 야탑점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경찰을 넘어서지 못했다. 매장은 이내 계산대 앞에서 노동자, 경찰, 손님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같은 이랜드 계열사인 홈에버 사정 역시 뉴코아 아울렛·킴스클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경욱 이랜드 일반 노조 위원장은 "올해 노조 조합원 15명을 비롯해 비정규직 400여 명이 해고 됐다"고 밝혔다.

그 400여 명 중 한 사람인 박경자(가명·45)씨는 "2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계약해지였다"며 "그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5월, 12개월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사에서 쫓겨났다.

과일·채소 코너에서 주 5일 하루 8시간씩 일해 번 돈 80만원이 박씨 가족의 한달 수입 전부였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다니는 딸과 아들의 학원비는 꿈도 못 꿨다. 박씨는 "퇴직금 130만원으로 버티고 있는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단체 협약에 18개월 이상 된 직원들은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해고된 노동자들을 전원복직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무급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한 뉴코아 노동자가 "비정규직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 뉴코아 노동자가 "비정규직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이곳에서는 2년 이상 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회사의 방침 역시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홈에버는 지난 15일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노동자 1000여 명을 직무급제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직무급제란 직무별로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원자 중 선별해서 무기계약으로 신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무평가 때 결과가 안 좋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2년이 안 된 비정규직 노동자 2000여 명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 이미 해고된 400여 명처럼 계약해지 한다는 소리다."

오후 5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사전 예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계산대 앞에서 노동자들을 향해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이렇게 자를 수 있느냐"면서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쳤다. 이어 "남들처럼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위원장은 "오늘 산별대표자회의에서 16개 산별노조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오후 6시가 돼서야 농성을 풀고 다시 뉴코아 아울렛 앞으로 모였다. 어둠이 깔리자 이들은 촛불을 들었다. 다시 외쳤다. "비정규직 계약해지 아웃소싱 반대한다"고.

한편 이랜드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계약해지, 용역전환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집회로 인한 영업방해,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양수 뉴코아 노조 위원장은 "뉴코아에서는 계약기간이 없는 무기계약이나 하루, 열흘 등 초단기 계약 문제가 심각하고 심지어는 계약기간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을 시정하는 데 용역, 해고 밖에 없는 게 아니"라며 "대화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으로 거리로 내쫓겨"

이날 신문과 방송에서는 비정규직법과 한미FTA 반대를 위해 26일부터 시작되는 민주노총의 '총력투쟁'과 22일 자살을 기도한 ㅅ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쫓겼다"며 탄식했다.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 돌아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 마지막 월급날을 맞았다. 비정규직법 시행 일주일 전, 비정규직법은 이미 그 거대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비정규직#뉴코아#홈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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