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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를 기둥 삼아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는 파업중인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 밤 늦은 시간에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계산대를 기둥 삼아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는 파업중인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 밤 늦은 시간에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 조혜원
이런 곳에 처음이란 걸, 세상 너무 쉽게 살아왔다는 걸 그렇게 바로 '눈물'이라는 놈으로 티를 내고야 말았으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니 여기저기 둘러 볼 호기심이 생깁니다. 궁금했습니다. 이곳저곳이. 장면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싶어 카메라로 찍습니다. '생존'을 걸고 투쟁하는 그 분들을 옆에서 이리저리 사진이나 찍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죄송함을 무릅쓰고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기둥마다 붙어 있는 '노가바(노래가사바꿔보르기)' 대자보입니다. 조를 짜서 함께 만들었나 보더군요. 대부분 '트로트'곡에다가 노랫말을 붙이셨어요. 속으로 조용히 따라 불러봤는데 내가 들었던 어느 트로트보다 애절하기만 합니다. 제 마음에 특히 와 닿았던 노가바를 옮겨 볼게요. 김수희씨가 부른 '남행열차' 노랫말을 바꾼 것 같지요?

비정규직 열차

비내리는 월드컵 상암점에서
흔들리는 비정규직 열차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비정규직 서러움에 우네
깜빡깜빡이는 고용안정 약속
대량해고 하지마 전환배치 하지마
자꾸만 우릴 괴롭혀
대량해고 하지마 전환배치 하지마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의 기운을 돋우는, 재미있는 대자보도 눈에 띄었어요. '이랜드 일반노조 홈쇼핑'이라는 제목으로 '부분파업 3종세트' '전면파업 5종세트'라는 글씨가 텔레비전 모양 그림 안에 써 있는데, 선물은 '노조티'라네요. 정말 창의력 끝내줍니다.

이랜드 일반노조 홈쇼핑! 아주머니들이 모인 파업장이라 볼 수 있는, 재기 넘치는 대자보가 아닐까. 긴장된 가운데, 저 대자보를 보면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이랜드 일반노조 홈쇼핑! 아주머니들이 모인 파업장이라 볼 수 있는, 재기 넘치는 대자보가 아닐까. 긴장된 가운데, 저 대자보를 보면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 조혜원
'용변이나 기타 개인 사정으로 대오를 이탈할 시에는 반드시 분회장에게 보고한다'로 시작하는'농성수칙'을 보면서는 긴박감이 느껴졌습니다. 대자보 몇 장 바라보는데도 이렇게 혼자 긴장과 이완이 되풀이 되는데 그 안에서 죽 계시는 분들이야 오죽할까요.

그렇게 여기저기 둘러본 뒤에 함께 간 민주노동당 은평구위원회 동지들이랑 이 파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앞으로 있을 선전전에 쓸 피켓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가족들한테 쓴 편지를 보게 되었어요.

지금 홈에버 월드컵 상암점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분들은 평균 나이가 40대를 넘는답니다. 편지글에 온통 가족들한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들로 가득 찬 까닭이 거기에 있는 걸 테죠. 힘들다는 말도 있었지만, 꼭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친 글도 많아 보였어요. 편지글 가운데 몇 문장만 옮겨 적어 볼게요.

나의 딸 혜린아. 너의 인생살이에서 제일로 기억 남는 일이 뭐니. 엄마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 싶어. 어른이 되면 너도 엄마 입장을 알게 되겠지.

너무 답답한 맘으로 기도도 해보고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박성수 맘 좀 돌려주게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투쟁에서 승리하는 꿈도 꾸기도 합니다. 저희 자식들한테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엄마는 길어야 10년 다니면 그만둘 직장일지 모르지만 비정규직 그리고 후임들을 위해서 꼭 해야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직장 파업 투쟁으로 월드컵 점 홈에버에서 종이박스 한 장을 깔고 내 방인 양 매일 밤을 새우면서 농성을 하느라고 집에도 못 갔다. 미안하다, 며늘아, 너는 이 시애미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 글을 쓰려니까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며느리한테 남긴, 농성중인 한 시어머니가 쓴 편지.
며느리한테 남긴, 농성중인 한 시어머니가 쓴 편지. ⓒ 조혜원
'자식 사랑'이라면 세상 모든 어머니 제치고 일등 자리를 차지할 우리 어머니들이, 그 자식들을 놔두고 저기 홈에버에 그렇게 계시고 있는 건, '당당한 노동자'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예요.

일을 그만두어도 돌아갈 가정이 있다거나, 반찬값 벌이 정도의 일 그만두면 어떠냐는 말로 여성 노동자들을 낮추어 보지 말아 주세요. 여성 노동자도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당당한 노동자랍니다.

이번 주 일요일, 그러니까 7월 8일에는 전국 이랜드 매장에서 동시 파업이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들한테는 '불편'할 뿐인 그 일에 이랜드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편해도 조금만 참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이랜드 노동자들한테 힘을 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어제 홈에버에서 발견한 글 하나 옮기면서 글을 맺어 볼게요. 이랜드 노조 방학 분회에서 대자보에 남긴 글이에요. 내 언니, 내 어머니의 마음이면서 또 언젠가 내 마음, 내 아들, 딸들의 마음이 될지도 모를 이 글을 우리 천·천·히 함께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노조가 무엇인지 모르고 마냥 나쁘다고만 생각했어요.
텔레비전에서 보기만 한 것을,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생각했죠.
그런데! 내가 직접 겪으니 이렇게 큰 일을 하고 있는구나,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추위에 떨며 밤을 새울 때, 쭈그리고 앉아서 식사할 때
빗속에서 비를 맞으며 투쟁할 때 우리의 단결된 모습이 떠올려져요.
우리의 단결 투쟁은 꼭 승리할 겁니다.
박성수는 우리 투쟁에 꼭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빗속에 오래 서 있으면 결국 무지개를 본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 기사는 은평구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키우는 인터넷 신문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홈에버#이랜드#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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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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