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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으로 백수가 넘쳐나고 있지만 당당한 백수와 백조는 없다. 일단 수중에 돈이 없어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에서는 부모님들의 눈치 때문에 집에 있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딱히 소속이 없으니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백수와 백조는 이 세상에 한없이 불쌍하고 가여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여기 너무나도 당당하고도 뻔뻔스러운 백수와 백조들이 있다. 그 이름도 특이하여 한 번 들으면 까먹기 어려운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 이야기 <메리대구공방전>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친구들은 (어느 정도 사회생활 경력을 자랑하고 있으니) 피자가 먹고 싶어 10개 쿠폰을 모으기 위해 온 동네를 뒤지고, 밥 먹을 500원이 없지만 20만 원짜리 뮤지컬 티켓을 당당하게 산다.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현실은 남루해도 그들은 언제나 쾌청하다.

▲ <메리대구공방전> 출연진들
ⓒ imbc
자발적 당당 백수 인생 브라보!

메리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고 지어진 메리와 대구에서 태어났다고 지어진 대구. 이름에서부터 기묘한 인연을 가진 그들. 백수다. 딱히 제 손으로 돈을 벌지도 못하고, 변변한 것 하나 살 돈도 없다.

그래도 언제나 당당하다. 현실에 비쳐볼 때 사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사람이 백수라면 주위 시선은 그렇다하더라도 스스로 위축되기가 일쑤다. 그럼에도 메리와 대구가 다른 백수보다 떳떳한 이유는? 'TV드라마라서 그렇다'? 반점짜리 정답이다.

이 드라마는 사실 만화와 무협을 뒤섞어 놓은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코 우습게 봐서도 안 된다. 그들이 진정으로 당당한 이유는 자발적인 백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남들이 보면 말도 안 되는 뜬구름이라 할지도 모르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일 뿐 지금에 누추함은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무게감이 없다. 비록 돈이 궁해져 슈퍼마켓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고 치열한 면접시험을 보기도 하고, 계란장수 CM송과 삼류가수 코러스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긴 기럭지를 이용해 모델 일도 해보고, 보디가드로 일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현실을 그럼에도 살아가야하기에 생계를 잇는 수단일뿐 그들의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떳떳한 직장 하나 없어도 당당하고 누구에게 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남에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비록 뮤지컬 오디션 7회 낙방에도 불구하고 '열정은 재능을 능가해!'라 부르짖으며 자신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 말하는 메리. 대박 작가가 아닌 쪽박 작가로 선배 회사를 말아먹게 한 장본인이지만 언제나 '풍운 도사 백팔번뇌'라는 자신이 지은 책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대구다.

즉 이들은 꿈이 있기에 백수생활을 택했고, 그 꿈을 이루기한 과정은 고달프지만 언젠가 밝은 미래가 오리라 굳게 믿는 어린 순진한 양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순수하기에 현실과 이상의 거리의 차이를 알지 못한 채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메리와 대구의 모습은 가볍지 않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언제부턴가 꿈이란 것을 잊고 살아가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흘러 보내고 있다. 결국 메리와 대구를 보면서 현실에 찌든 우리 모습을 반성해 보고, 비록 돈은 없지만, 실현될 가능성이 없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 꿈을 위해 자발적인 백수를 자청한 메리와 대구
ⓒ imbc
그들의 공방전이 주는 재미와 폭소

여기에 백수와 백조지만 할 것은 다 하는 그들이기에 사랑도 당연한 일. 청춘 남녀가 싸우다 보면 정들고,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아주 오래된 낡은 정석을 역시 메리와 대구도 모른 척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 오래되고 낡은 정공법은 역시 메리와 대구라는 인물에 의해 새로운 재미와 폭소로 바뀌었다. 즉 제목 그대로 메리와 대구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대는 공방전을 시작한다. 헌데 그들의 싸움은 티격태격 수준이 아니다. 진짜 싸움을 방불케 하고,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황당함으로 다가오고 이윽고 재미로 둔갑해 버린다.

피 말리는 고기 판은 '죽음의 고스톱판'으로 이어지고, 이후 피자 대짜 한 판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옆 방송사의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이 치열할수록 재미와 폭소가 두 배가 된다는 독특한 매력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쩐의 전쟁>은 동병상련으로 이어져 돈만 생기면 치킨의 맥주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 사이 만화같은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무협이라는 장르가 곁들어져 퓨전멜로무협 드라마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간간이 만담체와 무협체가 뒤섞어가며 메리와 대구는 피터진 싸움을 펼친다.

"저기요. 이거 우리 없던 걸로 하면 안 될까요? 리허설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 ! 연습게임 지금부터 본 게임 들어갑니다!"
"선생님! 없던 걸로 하면 안 될까요?"
"피를 부르는 승부가 될 터인데.."
"그럼 우리 둘 다 은둔형 타짜란 소린데.."

이렇듯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은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짐작할 수 있지만 오래되거나 식상한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메리와 대구가 공방전을 벌일수록 드라마는 재미가 더해진다.

일상의 힘과 판타지 세게의 힘!

하지만 드라마는 이제 겨우 10회를 넘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바로 메리의 엄마와 리키박의 첫 사랑이야기부터, 리키박을 죽이려 한 성형미인 소란의 아버지 이세도의 과거이야기까지.

더욱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이 주를 이루면서 만화적인 상상력이 극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그 안에 일상의 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돈에 언제나 바가지를 긁어대는 메리의 엄마 오성자 여사와, 그의 첫 사랑이 못내 못마땅한 아빠 황도철은 9급 공무원으로 볼펜을 훔쳐 나라의 불만을 표시하는 소심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리고 변강쇠를 꿈꾸는 변강미, 부인을 찾아 댄스를 배웠다 본인이 댄스계로 날아가 버린 황제슈퍼 주인 등.

주변부의 모습이 소소한 일상을 더해가고, 메리와 대구의 백수생활 모습도 비교적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다만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만이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판타지 세계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은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그런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 리키박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메리와 대구의 핑크빛 무드가 발휘할 때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어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홀연히 무림 절대고수가 판치는 강호를 등지고 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메리와 함께 코러스 뛰는 여자가 말한다.

"무대는 다 똑같애,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 거라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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