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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정말 배후에서 정치공작을 지휘하는 걸까?

그렇게 단정할 근거는 없다. 공작 의혹을 제기하는 이명박 캠프조차 "조짐"과 "정황"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스스로 "음모가 청와대와 결탁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지만 조짐이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심증에 불과하다. 물증을 구성하는 요소는 조짐과 정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치지는 말자. 중대한 사안이다. 돌다리 두드리는 심정으로 재삼재사 검증해서 나쁠 게 없다.

청와대 배후설, 구멍이 너무 크다

이명박 캠프가 제기하는 조짐과 정황은 이런 것들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폭로한 자료 중에는 공권력이 개입돼야 입수할 수 있는 게 상당수라는 점, 특히 잦은 주소이동을 제기한 김혁규 의원이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인사라는 점 등이다. 여기에 대운하 공약에 대한 정부 보고서가 작성됐고, 그것이 청와대에 전달된 점도 추가된다.

얼개는 짰지만 구멍이 너무 크다. 공권력이 개입돼야 입수할 수 있는 자료라 하더라도 청와대와 연결하는 건 무리다. 국회의원에게도 자료요구권이 있고 자료입수통로가 있다. 김혁규 의원이 친노 직계라고 하지만 이명박 전 시장의 BBK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박영선 의원은 친노와는 거리가 멀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의원으로, 청와대의 공작명령과는 거리가 멀다.

대운하에 대한 정부보고서의 경우 한덕수 총리가 직접 나서서 해명한 바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예전에도 후보 공약을 다 검토했다"고 했다.

판정은 불가능하다. 검증에 한계가 있다. 설령 이명박 캠프가 제기한 청와대 공작 의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규명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공작은 음지에서 이뤄진다.

다른 길로 우회하자. 동기와 시점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어제 한 말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더 쉽다"고 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약점이 너무 많아 낙마할 것 같다"고도 했다.

이 말과 이명박 캠프의 음모론을 이으면 그림이 그려진다. 대선 본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청와대가 배후에서 이명박 죽이기 공작을 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명박 캠프가 음모론으로 강공을 하는 배경은?

이명박 캠프의 좌장으로 평가되는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먼저 국민 지지를 많이 받는 후보부터 공략해 당을 분열시키고 한나라당 후보 자체를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싸한 그림이지만 엉성하다. 이 시나리오를 반박하는 논리가 얼마든지 성립될 수 있다.

<한국일보>가 진단했다. 이명박 캠프가 음모론을 펴며 강공을 펴는 배경에는 "(여권과의) 큰 전선을 치면 (박근혜 전 대표와의) 집안싸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판단도 담겨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의 진단을 좀 더 확장하자. 청와대가 배후조종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면 박근혜 전 대표의 검증공세가 희석된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가 제기하는 의혹의 출처가 검증대상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이명박 캠프 장광근 대변인의 말처럼 검증공방은 "이명박 대 집권세력의 싸움"이 된다. 이명박 전 시장으로선 보호막을 치는 셈이고, 한나라당 당심엔 공작 경계경보가 켜진다. 청와대에겐 사문, 이명박 전 시장에겐 생문이 열리는 셈이다.

청와대가 정말 정치공작을 펼 요량이라면 이이제이가 제격이다. 일단 집안싸움으로 몰아가 국민의 의혹과 염증을 증폭시키고, 본선에서 추가 비리를 폭로해 부패에 둔감한 한나라당의 부실검증을 문제 삼는 게 더 적절하다.

청와대 배후조종-열린우리당 의원 전면 공세의 또 다른 동기를 설명하는 말이 있다. 이번엔 박근혜 캠프표 분석이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이명박·박근혜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하자 박근혜 캠프의 김재원 대변인이 즉각 비난했다. "지지세력이 불안해하는 데 대한 내부 결속용 공포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약하다. 속도가 맞지 않는다.

"한나라당 자기들끼리 잘 싸우고 있는데... 왜?"

열린우리당 지지세력과 우호적인 민심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어지럽게 전개되는 범여권 통합 움직임에 헷갈려하면서 지지와 우호의 대상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를 쳐서 내부를 결속하고자 했다면 그건 패착이다. 과속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앞과 뒤가 연결되지 않고 좌와 우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명박 캠프나 박근혜 캠프가 제기하는 음모론은 아직 가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삼 눈에 띈다. 이명박 캠프의 청와대 음모론에 대해 한 친노 의원이 말했다. "청와대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면서 "당 열린정책연구원에서 여러 팀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대선을 앞두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가 전한 말이다.

이 친노 의원의 말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의 전방위적인 검증 공세는 열린우리당 자체 기획에 따른 독자 행동이다.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궁금한 건 가시지 않는다. 왜 하필 지금이며, 왜 싸잡아 공격하느냐는 의문이다. 일방적인 제기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열린우리당 고위 당직자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자기들끼리 잘 싸우고 있는데 왜 그런 얘기(중요한 자료를 갖고 있다)를 꺼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음모와 공작의 주체 이전에 그것의 동기와 시점조차 제대로 풀이되지 않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터프한' 분석도 있긴 하다. 열린우리당이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닐뿐더러 요리사도 없기 때문에 이판사판, 마구잡이식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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