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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영락없다. 두더지 게임이다. 한 대학을 치면 다른 대학이 삐져나온다. 한 사안을 누르면 다른 사안을 들고 나온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교육부와 일부 대학의 공방은 이처럼 무한궤도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방 주체의 힘이 엇비슷하다면 게임의 승패는 다른 곳에서 갈린다. 여론이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고무망치가 쇠망치가 되거나 두더지 구멍에 햇볕이 든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여론도 공방을 벌인다. 교육계가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다면 여론시장은 시소 게임을 한다. 단적인 예가 있다.

똑같이 '조폭'을 언급한다. 하지만 지목대상은 정반대다. <한겨레>는 '주요' 사립대를 "마피아"라고 하고, <조선일보>는 교육부를 "폭력 교육부"라고 한다.

'마피아 사립대' 혹은 '폭력 교육부'

▲ 14일자 <한겨레> 사설.
ⓒ 한겨레PDF
길게 설명할 것 없다. 두 신문의 사설 한 구절을 대비하면 차이가 확연해진다.

"노점상들이 자기들을 괴롭히는 불량배에게 대들어보려 했다가 주먹질에 눌려 꼬리를 내리고 마는 뒷골목 풍경을 보는 것만 같다.…더 나은 인재를 뽑겠다는 대학들한테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둘러대는 '폭력 교육부'를 이대로 둬선 대한민국 대학경쟁력, 교육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조선일보>

"이 대학들은 몇 해 전부터 입학처장 모임을 운영해 왔다. 그 결과인지 몰라도 이제 정부에 맞서고 교육정책을 흔들 만큼 결속력이 강해지고 힘도 세졌나 보다…교육계에 마피아가 등장한 느낌이다. 그 앞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엄포나 놓는 교육부가 작아만 보인다." <한겨레>


상극이다. 고교 내신비중 축소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교육부와 일부 대학의 줄다리기를 두고 한쪽은 '숯'이라 하고 한쪽은 '얼음'이라고 한다. 이러니 겉돌 수밖에 없다. 여론이 한 데 모여 교육부나 일부 대학을 압박하는 상황은 기대할 수 없다.

무덤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시각이 다른 데에도 이유가 있다. 이것이다.

<조선일보>는 "더 나은 인재를 뽑겠다는 대학들"의 노력을 평가한다. <한겨레>는 반대다. "대학의 목표는 양질의 대학 교육을 통해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지 "우수한 신입생을 독점하는 게 목표일 수는 없다"고 한다.

이분법으로 볼 일은 아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더 나은 인재를 뽑아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게 최상일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고교 내신비중 축소가 더 나은 인재를 뽑는 방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가?

못 믿을 거라면, 내신을 왜 할까

▲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 PDF
일부 대학들이 그랬다. 더 나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신 갖고는 안 되니까 수능 성적을 반영해야 하고, 그것 같고도 안 되니까 논술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일부 대학의 주장을 그대로 좇으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전형 요소를 다양화해야 변별력이 강화된다. 그런데 일부 대학은 희한하게도 거꾸로 간다. 내신비중을 줄이려 한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이 한 말이 있다. "작년에 지원한 학생들의 성적을 보면 수능성적과 내신 등급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조선일보>)"고 했다.

내신 신뢰도가 낮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신비중을 높이면 더 나은 인재를 뽑는데 오차를 발생시킨다는 논리다.

그럴까? 그럼 이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요' 대학의 내신 실질반영률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오차율에 미치는 영향이 수능이나 논술에 비해 낮다.

논술 채점이 허술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황승연 경희대 교수가 21개 4년제 대학 교수 2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다.

반문할 게 하나 더 있다. '주요' 대학이 시행하는 전형방법 중에 오로지 내신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뽑히는 학생 수가 최대 17%, 보통 5~9%다.

내신의 신뢰도가 낮다면, 실질반영률 10%조차 께름칙할 정도로 불량스러운 게 내신이라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신전형을 감행하는 걸까? 이러면 양질의 대학교육은 공염불이 된다. 최대 17%의 '불량 학생'이 강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대학교육은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한다.

할 말은 많다. 교육부의 돈줄죄기에 눌려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는 '주요' 대학을 보면서 양질의 대학교육을 실시할 물적 토대가 마련됐는지 의문이 들지만 접자. 등록금 인상이나 기여입학제를 또 꺼내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사실이다. 주장과 입장과 시각은 사실에 터 잡는 것이고, 사실을 통해서 정당성을 강화한다. 주장에 주장을 맞세워 봤자 키재기밖에 안 된다.

사실을 검증해야 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 골라잡는 풍토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마구 뒤엉켜 서로를 배척하는 이질적인 사실들을 종합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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