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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8월 1일.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서 본격적인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던 충남 논산 육군 제2훈련소.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훈련병 대기소로 입소한 날이다. '백제의 옛 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 뼈가 지하에 혼연하니…'로 시작하는 육군 제2훈련소가를 목 터져라 외쳐대던 한 달이 넘는 고된 훈련과정의 시작이었다.

이때 입대해서 1988년 12월에 제대한 인연으로 인해 당시 한국사회의 웬만한 국가적 행사는 군대에서 모두 지켜보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게다가 한 번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1987년도로 기억되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까지. 물론 한국 민주화 발전의 또 하나의 기점이 된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나는 훈련병 당시 거의 '고문관'이었다. 작은 체구에 안경까지 쓴 나의 외모에 성격도 극히 내성적이었던 때라 이러한 나의 성향이 조교들에겐 한마디로 '잿밥'이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체구에 휘두르는 '각도가 나지 않는' M16소총은 총검술 훈련에서 단골 '얼차려'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작은 체구에 맞지 않은 군화를 '철없이' 군화 군수품 담당 조교에게 바꿔달라고 했다가 그 군화에 물씬 맞았던 적도 있고, 사격훈련장에서는 대기병으로 앉아 있는 동안 총소리 때문에 양쪽 귀를 막고 있다가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워커 발'에 맞아 나뒹군 적도 있었다.

그러나 훈련병 시절 '고문관'으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얼차려는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올랐던 연무대역 수송기차 안에서였다. 논산훈련소의 경우 매주 마다 훈련을 마친 신참 이등병들을 자대배치나 후속교육을 위해 교육부대로 보낼 때 기차를 이용해 각지에 수송한다.

훈련소 입영 당시에는 그래도 같은 입대 동기들이 있고, 훈련소가 확정되어 있어 그나마 걱정은 덜하지만, 자대배치되는 순간의 연무대역은 그야말로 신병들에게 있어선 '미지의 사선'을 넘는 듯한 착잡한 순간이다. 어디로 배치될지도 모르는 긴장감과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이 긴장감과 두려움이 엄습한 심야의 신병수송열차 안에서 얼차려 받았던 기억은 훈련소 '고문관'으로서 그 대미를 장식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각 객실마다 허리를 편 부동자세로 꿈쩍 없이 앉아 있는 신병들 사이의 객실바닥을 '낮은 포복' 자세로 몇 차례 왕복해야 했던 그 심야의 연무대역. 지금은 '재미있었던' 훈련병 시절 추억거리로 삼고 있지만, 당시엔 두려움이 가득했던 신병수송열차에서의 기억이다.

▲ 9월 중순 자대배치를 받기위해 논산 연무대역에서 수송열차를 탔다
ⓒ 유태웅
훈련소 고문관을 교육부대 조교로 인연 맺게 해 준 신병수송열차

심야의 어둠을 뚫고 달리기 시작한 신병수송열차는 몇 차례에 걸쳐 신병들을 다른 열차로 이송하기 위해 정차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별도의 특기병 교육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는 신병들이었다.

내가 훈련소에 입영한 그 해 9월 중순의 어느 날, 이른 아침의 햇살을 안고 달리던 논산 연무대역발 수송열차는 어느새 서울북부지역을 통과해 의정부역을 향하고 있었다.

당시 입영하기 전까지 살고 있던 곳은 서울의 도봉구 지역. 이른 아침 수송열차가 이곳을 지나갈 때의 기분은 참으로 착잡한 것 그 이상의 묘한 느낌이었다. 밤새 달리던 수송열차는 의정부 보충대 인근 역에 신병들을 내려놓았다.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최종적으로 배치받은 곳은 중부전선 내 한 교육부대.

다행히(?) 일반 보병부대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한 교육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말발 하나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실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행정조교도 아닌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조교로 보직을 받았다는 것이다. 훈련소 고문관이 신병을 고문(?)하는 매서운 교육부대 조교가 된 것이다.

▲ 교육조교 시절
ⓒ 유태웅
논산 연무대역을 기억하게 하는 '동네' 경춘선 화랑대역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동북부 지역. 사는 곳에서 가까운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와 바로 옆에 있는 경춘선 화랑대역은 간혹 논산 훈련병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경춘선 간이역 화랑대역은 운동 삼아 달리는 나의 조깅코스에 있다. 매주마다 한 번씩은 이곳 경춘선 철길을 건넌다. 화랑대역은 논산 연무대역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논산 연무대역. 당시 훈련소 정문에서 연무대역까지는 구보로 30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현재는 지난 1992년 8월부터 훈련소 바로 앞에 승강장(신연무대역)을 만들어 이곳에서 신병들을 수송열차에 탑승시키고 있다.

논산 훈련소를 떠나 자대배치를 받는 '신참 이등병'들을 실은 신병수송열차와 연무대역. 논산 육군 제2훈련소에 입영했던 대한의 남아들이라면 공통으로 남은 잊히지 않는 기억일 것이다.

▲ 논산 연무대역을 떠오르게 하는 경춘선 화랑대역
ⓒ 유태웅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입니다.


태그:#연무대역, #화랑대역, #논산훈련소, #고문관,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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