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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임브리지 시청 앞에서 이구아나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 문종성
대관절 그들의 두뇌는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일까? 아직 인간들이 밝혀내지 못한 혁신적인 대뇌활동을 통해 초능력을 공급받는 건 아닐까? 혹시나 지구인을 가장한 다른 별에서 온 별종일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메커니즘에 의거한 집중력과 후천적인 노력, 그리고 선천적인 두뇌지수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어떤 연역학적 과정을 거쳐가며 남다른 문제해결능력을 만들어 낼까?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있다는 미국 보스턴의 케임브리지로 향하고 있는 나의 머리는 궁금증과 경외심, 그리고 질투의 삼각편대를 복잡하게 가동시켜 가슴으로 밀어 내리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하트포드를 벗어나니 그보다 더 따분한 도시풍경이 쉬 지치게 만든다.

일단 보스턴 하면 딱 세 가지가 떠오른다. 역사적으로는 미국 독립전쟁 전에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타 인디언으로 위장한 미국의 식민지 반군이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가 실려 있던 배를 파괴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스포츠로는 2004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지구라이벌 양키스에 극적인 역전시리즈를 펼친 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한 세인트루이스마저 꺾고 밤비노의 저주를 풀며 무려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지역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보스턴의 자부심인 '레드삭스 야구팀(Boston Redsox)'.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도시답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수의 대학들.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학교와 MIT 공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브랜드 집합소라 할 수 있다.

물론 보스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이것저것 자랑할 게 많겠지만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이 세 가지에 대한 관심만 두는 것도 적지 않은 애정이 아니고서는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고 변명하고 싶다.

보스턴이 속해 있는 매사추세츠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대표적인 주(州)이다 보니 영국식 풍경이 펼쳐진다. 추운 날씨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지역이지만 고풍스런 영국식 건축양식이 도입이 되어 창문이 유난히 많다. 멋과 문화를 지키는 대신 난방비 좀 들겠구나 싶다.

하버드대학교에는 정문이 없다!

▲ 하버드의 입구가 시작되는 하버드 스퀘어.
ⓒ 문종성
5월 23일. 지난밤 어렵게 숙박을 해결한 경찰서에서 출발한 지 약 두 시간만인 오전 11시쯤에 하버드 의과대학을 거쳐 본 캠퍼스인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교정에 도착했다. 그런데 학교 정문이 없다. 또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학교치고는 입구가 아담한 편이다. 사실 정문이라기보다는 하버드 스퀘어라고 해서 그쪽부터가 하버드 대학교의 시작이다.

▲ 하버드의 설립자로 알려진 존 하버드(Jhon Harvard)의 동상. 설명은 박스 기사에.
ⓒ 문종성
지금으로부터 약 370년 전인 1636년, 그러니까 이미 미합중국이 독립하기 이전에 세워진 이 학교의 역사는 뉴타운에 설립된 하나의 대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수업은 1638년 여름에 운동장이 딸린 목조가옥 한 채에서 9명의 학생과 단 한 사람의 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하버드'라는 이름은 책과 재산의 절반을 대학에 기증한 당시 청교도교회 목사 존 하버드의 이름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처음 수업을 진행했던 그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그 자리가 몇 세기가 흐른 후 모두의 꿈으로 기억되는 학문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예상이나 했을까? 그가 지금의 하버드를 본다면 얼마나 흡족해할지, 흡족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할지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미국에서의 성공을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한다. 기회의 균등이 보장된 미국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을 말하는데, 그 달성 과정에 청교도주의의 전통에 바탕을 둔 근면, 절약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버드에 관해서

하버드의 설립자로 알려진 존 하버드는 사실 설립자가 아닙니다. 그가 재산을 기증하기 2년 전에 이미 학교가 시작되었고,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발등을 보면 칠이 벗겨진 채로 노랗게 반짝거리는데, 그 이유가 그 발등을 문지르면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합니다. 존 하버드의 동상을 제작할 때에는 신학교였기 때문에 초상화가 없었고, 이후 이 동상은 1884년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 하버드의 사진을 구할 수 없어 실제 모습과는 다른 인물이라고 합니다 (네이버를 참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재미동포들에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1992년 LA 흑인 폭동과 2001년 전 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를 계기로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비판 이론과 더불어 아메리칸 드림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게다가 청교도주의의 축이라는 '근면, 절약' 중에 절약은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잊힌 지 오래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언감생심이거니와 넓은 대륙 탓에 자동차로 휘젓고 다니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상 펑펑 쓰게 되는 석유는 연쇄적인 효과를 일으켜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진범 아닌 진범이 되게 됨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은 많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탈북자들이나 카리브해 난민들, 그리고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멕시코의 월경자들이 미국의 골칫거리로 인식이 되는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외국인들은 미국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미 국토보안국(Homeland Security)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는 2003년에는 11만5000명이, 2년 후인 2005년에는 16만1000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 뒤로 인도, 중국, 필리핀 순으로 미국행을 성사시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 이민자 수도 2003년에 1만2500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갑절인 2만6500명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총 124만명이 넘어간 걸로 집계되고 있다. 물론 이 조사가 아메리카 드림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대부분이 미국보다 가난한 나라이고 또 이에 감춰져 있는 불법 이민자들의 숫자도 상당한 규모이다 보니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꿈을 위해 아프리카에 불법 이민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아마도 교육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하버드가 가장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브랜드인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버드와 MIT 공대는 인접해 있지만 나는 하버드를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다. 공대는 나에게 먼 별나라의 얘기일 뿐이니까 말이다(참고로 난 공대생을 제일 존경한다. 공대 수학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보고 있노라면 갑작스런 시력 저하현상을 겪게 되는 동시에 그들의 각고의 노력에 대해 눈물 어린 박수를 마음껏 쳐주고 싶을 뿐이다).

연간 220억 달러 연구비가 통용되는 하버드

▲ 하버드 다리와 주변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깅, 자전거, 카약, 카누, 인라인 스케이트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문종성
하버드 대학은 Veritas 즉 Truth(진실)을 학교 모토로 사용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진실을 위해 과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인재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사회구성원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4년에 고등학교 수석 졸업자 중 무려 80%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것은 공부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그것이 오늘날 루스벨트, 케네디 등의 역대 7명의 미 대통령을 배출하고, 41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거나 재직 중인 원동력일 것이다.

한 나라의 국가예산에 맞먹는 연간 220억 달러의 연구비가 통용되고 있으며, 총 1500만권의 책이 약 90여 개의 도서관에 비치가 되어 있는데, 이를 훑어보는데만 무려 80km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또 하버드 대학생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치열한 학문에의 전념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특히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이 지역에서는 미국에서는 낯설지 않은 비만자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버드 다리(Harvard bridge)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해거름 이후에도 자전거나 인라인, 조깅 등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조금 더 사치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강가에다가 요트를 띄우거나 카누 클럽의 일원으로 노를 젓기도 하고, 독자적인 물살을 헤치고 싶은 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카약을 즐기기도 한다.

거기에 자존심이 강한 이 대학교들 주변에 맥도날드나 KFC 등의 패스트 푸드점 입점은 금지되어 있다. 신선한 충격이다. 거대 자본도 감히 침투할 수 없는 그들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우리 아이가 하버드에 다니고 있어서요"

▲ 하버드에서는 맥도날드나 KFC와 같은 패스트 푸드 체인점을 찾을 수가 없다. 사진은 하버드생들이 즐겨찾는 하버드 스퀘어에 위치한 au bon pain 음식점.
ⓒ 문종성
언젠가 하버드 대학교와 관련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버드로 자식을 유학 보낸 부모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차 뒷면에 이렇게 붙여 놓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하버드에 다니고 있어서요."

그만큼 하버드의 학비가 비싸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치있는 풍자다. 하버드의 학비는 이제 무려 4만5000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돈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하버드 지원을 포기하는 상황은 안 봐도 좋을 것 같다. 저소득층의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연(年) 소득 4만 달러 이하의 학생들에겐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실제로 이 규정이 시행된 첫해에 사상 최대의 지원율을 보였다고 한다. 역시 최고의 대학이란 명성에 걸맞는 대인적 기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산 부풀리기에만 심혈을 쏟아내면서 막무가내로 등록금을 인상하는 국내 대학들이 이런 것이라도 제대로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면 처우개선을 통하여 비싼 만큼의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면서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이든가. 내 자식이 대학에 들어갈 때쯤을 생각하면…. 어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적지 않은 동양인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중국인과 인도인이 눈에 많이 띄었고 한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간혹 들리는 한국말이 반갑게 느껴지지만 어쩐지 아는 체를 했다간 그들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질까 애써 시선을 피한다.

'열등감'. 나는 이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심각한 의심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뒤에 다시 한 번 그들을 바라본다. 생긴 것은 지구인과 똑같은데, 하는 말이나 행동은 내 친구와 다를 바 없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의 열정과 노력만큼은 높이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보스턴의 스카이 라인. 찰스 강 위에 황금색으로 채색된 건물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 문종성
캠퍼스 내에는 여러 곳의 교회가 있다. 하버드의 대표적인 건물인 공공도서관 맞은 편에 있는 메모리얼 교회는 공사 중이어서 접근이 금지되었다. 교내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당을 개방시켜 자유롭게 드나들며 개인적인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나는 그중에 한 곳에 들어가 잠시 묵상을 한다. 오늘 이곳을 들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단순히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뛰어난 탐구능력과 탁월한 학문적 성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곳이 자기의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를 튼실하게 경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전투지라는 점에서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하버드라는 명칭을 마냥 부러워하기보다 그 이름이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깊이 어필할 수 있을 때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명실상부한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말은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하모니를 이루는 삶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은가

▲ 찰스 강이 흐르는 하버드 다리 주변으로 지는 노을을 배경 삼아 여유롭게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 문종성
'하버드에 재학 중인 그들이 그들의 전공을 살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또 자신이 성공적으로 이룬 것에 대해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교회에서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내 마음은 하버드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이 온통 뒤섞여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먼저는 내가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먼저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혼자서 독야청청하는 것보다야 여럿이서 하모니를 이루는 삶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지 않은가.

하버드 다리에 노을이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붉은 춤을 추고 있다. 그가 지칠 때를 간파한 한 떼의 모기들은 날개에 머금은 어둠을 흩뿌리며 강 주변을 자신들의 활동영역으로 선언한다. 나는 난리부르스의 향연에 빠져있는 그들을 입장을 존중하며 그 자리를 기꺼이 피해 준다.

하버드생들에 대한 X-file(엑스파일)은 여전히 나에겐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더 이상 해답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니까. 신이 모두에게 같은 재능을 주시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서도 붉은 노을을 등지고 하버드를 빠져나오면서 어쩐지 나는 홀로 외딴 섬이 된 기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 몬트리올을 출발하여 토론토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기사는 브리태니커 사전과 가이드북을 참고하였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입니다.


#하버드#보스턴#지성의 요람#케임브리지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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