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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백마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미 뉴햄프셔 주.
ⓒ 문종성
5월 25일 토요일 아침, 교육의 도시 보스턴을 떠났다. 보스턴에서 버몬트 주 벌링턴이라는 작은 소도시로 가야했기에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페달을 밟았다. 중간에 핸들 가방을 고정하기 위해 자전거숍에 들른 것을 빼곤 오후까지 별일 없이 주행했다.

시 외곽을 빠져나가다 목이 타서 길 옆 그늘에 자전거를 잠시 세워놓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멕시코 계통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나타났다. 호기심 많은 그 아이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질문을 던지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늘 내가 대답해 주던 질문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 자전거네? 누구세요?"
"응? 난 자전거로 세계일주 하는 사람이야."
"어디서 왔는데요?"
"한국에서 왔고, 출발은 뉴욕에서 했어."
"와~ 그 먼데서요? 진짜요?"

놀란 아이는 토끼눈이 되어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잠시 뒤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신기한 걸 보면 먼저 소문내고 싶어하는 본능들이 있는 것 같다.

"야, 봐. 내 말 맞지? 자전거로 세계일주 하는 사람이야."
"진짜네? 진짜 뉴욕에서 출발했어요? 우와~."
"아저씨, 아니 형인가? 이거 하시면서 뭐하는데요? 자전거 선수예요?"
"저 많은 짐들은 다 뭐예요?"

아이들은 계속해서 속사포처럼 이것저것 물어왔다.

"응, 여행하면서 글도 쓰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선교도 하게 될지 모르겠어. 저 짐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여행하면서 쓰게 될 물건들이야.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짐도 많거든."
"그렇구나. 와, 이 많은 걸. 엄청 무겁겠다. 참, 그리고 우리도 교회 다녀요. 내일 저기 저쪽에 있는 교회 가거든요."

아이는 뒤도 보지 않고 대충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정한 뒤 숨도 쉬지 않고 말한다. 그들은 나와 자전거를 이리저리 보며 신기해한다. 그러면서 자기네들끼리 자전거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품평 중이다.

"잠깐만."

아이들에게 아직 봉지도 뜯지 않은 초콜릿을 패니어에서 꺼내 주었다. 그랬더니 녀석들의 표정들이 환해지면서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맨 처음 만난 녀석에게 주었는데 그 주위로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배급받는 듯 줄을 서고, 그 아이는 큰 자선을 베푸는 양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 나누어 준다.

잠시 뒤 그들과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디지털 사진기라 셔터를 누른 후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 주니 좋아라 한다. 또 캠코더를 꺼내 영상을 찍어주니 쑥스러워 하면서도 무척이나 재밌어한다. 그중에 한 녀석이 말한다.

"근데 이거 찍으면 우리 방송에 나오는 거예요?"
"음…. 글쎄. 혹시 나가면 한국방송에 나갈지 모르겠는데?"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레이먼드(Raymond), 샬리즈(Shairaliz), 어디선가 갑자기 끼어든 소녀, 카르멘(Carmen), 로빈(Ruben). 레이먼드의 포즈에서 샬리즈를 향한 풋풋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문종성
안 나간다고 하면 혹시나 실망할까봐 1%의 가능성이라도 두는 쪽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한국방송이어도 상관없는 듯 카메라 앵글을 보며 연신 포즈를 취한다. 한 아이가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고픈지 내게 제안을 해 왔다.

"괜찮다면 오늘 우리 집 앞마당에서 잘래요?"

그러면서 자기 집 앞마당까지 가서 텐트 칠 자리를 물색한다. 하지만 난 거절했다. 아이의 엄마가 그리 좋아하지 않을 성싶어서다. 아이들과는 좀 더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부모들에게 괜한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자겠다고 수락하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왜 함부로 남을 초대했느냐고 나무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뭇 별들만큼이나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 진한 외로운 달빛과 같은 아쉬움으로 이쯤에서 인연을 끝내야 했다.

▲ 한 아이가 자신의 전용 말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 시골에서 말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 문종성
일요일 아침, 맑은 하늘 아래로 뉴햄프셔 주(州)를 질주하며 좌우를 살펴보았다. 지나가다 교회가 보이면 들어가 예배를 드릴 참이었다. 마침 작은 마을에 두 곳의 교회가 보였고, 좀 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다. 예배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교회에는 100여명 정도가 되는 성도가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귀에 익숙한 성가대의 중후한 찬양은 이곳을 찾은 나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여행자의 입장이지만 헌금에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작은 교회라 자리가 꽉 차 있기에 뒤에서 서서 예배를 드렸다. 옆에는 릭(Rick)이라는 친구가 역시 나와 같이 서 있었다. 그는 신실하게 보였고, 아마도 이번 주에 자리를 안내하는 봉사를 맡은 것 같았다.

"지금은 헌금 시간이에요…. 오, 그런데 자전거 순례라구요? 와우~ 대단한 걸요?… 음, 지금 설교 시간이구요….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 걸렸어요?… 화장실은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우편에 있을 겁니다…. 무척 힘들 거 같은데."

릭은 내가 예배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끔 순서마다 친절하게 해설을 덧붙여주었다. 동시에 자전거 여행에 대한 궁금증도 물어왔다. 예배 시간에 우린 종종 엄숙한 잡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회인 줄 알았던 곳이 자세히 보니 성당이다.

안경을 쓰지 않아 잘 안 보였는데 미간을 찌푸려 인상을 쓰고 초점을 맞추어 보니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쩐지 목사님이 화려한 의상에 각종 성물을 들어가며 예배를 진행시킨다 했다. 크게 개의친 않는다. 환경보다 내 마음이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미사 중간에 갑자기 사람들이 앞으로 줄을 서서 나갔다. 나 역시 마크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아닌 신부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가 건네주는 포도주와 떡을 말린 성체(聖體)를 먹었다. 신자들은 성호를 긋고 기도하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나는 개신교도이기 때문에 무릎 꿇은 그 자리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왔다.

'신실하신 주님, 부디 저의 자전거 여행과 이들의 삶 모두가 평안하길 소원합니다.'

시골 마을에 낯선 동양청년이 자전거 져지를 입고 미사를 드리니 신기한 듯 다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 역시 그들의 미소에 생기 있게 화답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예배 후엔 커피 타임이라고 해서 교회 뒤뜰에 음식을 차려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릭의 권유로 함께 그곳에 가서 그들과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여유로움이 참 좋다. 여러 음식이 뷔페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난 여행 중인 처지에 비타민이 부족할 것 같아 과일을 눈치 보지 않고 잔뜩 섭취했다.

특히 파인애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의 하나라 잔뜩 접시에 올려두고 한입 가득 오물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으니 사람들이 재밌어라 한다. 대신 취향에 따라 케이크와 쿠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음료도 마찬가지다. 난 커피나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차 마시는 것을 즐기고, 커피가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주스와 탄산음료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티 타임(Tea Time)을 가질 때에도 다들 머그잔에 커피를 탈 때 나만 유리잔에 시원한 주스가 들어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덕분에 젊은 나이에 적지 않은 치과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이게 다 세상이치에 흐트러짐 없는 인과응보다. 어쨌거나 나의 접시는 다른 사람의 몇 배는 됨직하니 그득 차여 있었다.

'체면은 건강의 적이다'라는 어느 어른의 조언이 여행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나의 몸에 체득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릭이 소개시켜주고 다시 소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켜 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과 개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길 나누면서 이미 내 정보를 파악한 다음에도 여행 중에 지나며 만났던 여느 다른 이들과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고 나도 그에 상응하는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지만 기분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무척 좋았다.

"여행 중에 주님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요. 많이 드세요."
"건강을 위해 기도할게요. 건강이 최우선이죠."
"당신은 아마 안전한 여행을 하게 될 겁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햇살로 구겨진 인상 속에서도 비단처럼 마음을 쭉 펼쳐 있는 진심 어린 반가움으로 낯선 동양 청년을 환영해 주고 있었으니까!

"이 봐. 갈렙. 커피타임 후에 우리 집에 잠깐 가자구."

사람들과의 긴 인사를 천년 묵은 고목나무처럼 기다려 준 릭은 미사를 드린 아들과 함께 나에게 자기 집에 갈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도착한 그의 집에는 부인과 개 두 마리가 함께 있었다.

그는 먼저 나를 창고에 데려가더니 냉장고에서 주스를 무려 9병이나 꺼내주었다. 이 지역 일대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크랜베리(cranberry) 주스는 물론, 오렌지와 토마토 주스까지 챙겨 준다.

게다가 다시 주방에 와서는 햄과 땅콩버터와 딸기잼이 들어간 각기 다른 두 개의 샌드위치를 손수 만들어 주고, 체력을 위해 초코바와 간식거리들을 챙겨준다. 거기에 가는 길에 혹시 필요한 거 있을 때 보태 쓰라며 건네준 30달러까지. 나를 깜짝 감동시킨 완벽한 섬김이었다(길에서 받은 도네이션은 나중에 극빈국 재후원을 위해 쓰지 않고 모으고 있다).

▲ 미국 교회(성당)에서 만난 릭(Rick)과 가족들.
ⓒ 문종성
풍요의 묘미는 아낌없이 베푸는 데 있다. 베풂에는 세금도, 비난도 그리고 고통과 피곤함 같은 부정적 요소들은 찾아볼 수 없다. 거기에는 사랑과 기쁨, 소망 같은 긍정적 진리들만이 담겨있다. 마땅히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데.

가르쳐서 머리에 집어넣는 지식이 아니라 보여줌으로써 가슴에 담아두는 지혜의 향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는다 해도 수많은 열매로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이 되고 싶다. 그렇게 릭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에게 큰 스승이 되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 M. 프루스트


애팔래치아 산계에 속하며 브래튼 우즈 협정(United nations Monetar and Financial Conference)으로 유명한 뉴햄프셔 주로 진입했다. 1679년 뉴햄프셔는 영국 직할식민지로 분리되었는데 미국독립전쟁 때 뉴햄프셔 주는 독립지도자들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독립전쟁이 끝난 뒤 1788년 9번째로 미국 헌법을 승인한 주가 되었다.

미국에서 대통령 예비선거가 최초로 실시되는 주가 뉴햄프셔이기 때문에 이곳은 흔히 입후보자의 성공을 가늠하는 최초의 시험장이 된다고 한다. 뉴햄프셔의 모토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데, 아마도 영국과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생기게 된 정치외교적 성격이 다분한 모토인 듯하다.

▲ 자전거를 타는 당신이 이 표지판에 적혀 있는 숫자를 봤다면 길을 잘못 들어왔음을 눈치채야 한다. 미국은 마일을 쓴다.
ⓒ 문종성
사실 뉴햄프셔는 살짝만 거치고 바로 버몬트 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별안간 어디선가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나 나에게 정지 명령을 내렸다. 국도를 달리다가 큰 도로가 나오길래 아무 생각없이 따라 나왔는데 큰길로 진입한 지 불과 5분 만에 생긴 일이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왜 여기로 들어오는 거야? 당신 눈엔 여기가 고속도로인 게 안 보여? 당신이 자전거 타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고 누군가 신고했다고! 당장 나가, 어서!"

몇 초간 어안이 벙벙했다. 길을 잘못 든 건 둘째치고라도 상당히 고압적인 경찰의 모습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으니 예의를 차려야 했다.

어쩌면 잘못한 내가 계면쩍어 애써 체면을 차리려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집 안에 돌아다니는 혐오스런 바퀴벌레를 쳐다보듯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있는 그에게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이봐요. 여기가 고속도로였던가요? 몰랐어요. 미안해요. 난 단지 국도를 따라 계속 들어왔단 말이에요. 게다가 어디로 가라는 표지판도 잘 안 보인다구요. 당신 말 알아들었으니, 그럼 이제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거죠?"
"내 말 안 들려? 자전거 길로 가란 말야!"

그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도대체 뭘 알고 이곳에 왔냐는 말투로 경찰은 거칠게 쏘아댔다. 건방진 경찰. 박명수의 호통 개그로 맞불을 놓고 싶었지만 여기가 나에겐 홈이 아닌 어웨이고, 힘의 논리도 그에게 유리한 형국이라 나는 잠자코 그의 지시에 따라야만 했다.

▲ 도로에서 헨리 데이비슨이나 YAMAHA, BMW를 몰고 무리지어 라이딩하는 오토바이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오토바이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도 소수 있다. 뉴햄프셔 주.
ⓒ 문종성
그는 웬 귀찮은 녀석이 한가한 낮에 쓸데없는 업무를 만들어놨다는 표정으로 백미터 정도 호위하면서 자전거로까지 안내해 주었다. 미국 역시 고속도로로 자전거가 진입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오토바이협회에서 압력이라도 넣은 걸까? 아니면 대륙 개척 시대의 바람을 가르는 용맹함을 말 대신 오토바이로 과시하려는 것 때문일까? 어쨌든 오토바이는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

특이하다. 우리나라는 이륜차는 고속도로 진입이 안 되지만 미국은 동력과 무동력으로 나눠 그러는지 오토바이는 유유히 고속도로를 타고 갈 수가 있다. 단, 시속 115㎞ 이하로 말이다.

▲ 고속도로 옆에 따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 사람이 복잡한 교차로에서 자전거 전용 도로 표지판을 찾아내기란 쉽지만은 않다.
ⓒ 문종성
잠시 길을 잃고 고속도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버몬트 주와 뉴햄프셔의 경계에 있는 4번 국도 상의 Junction에서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버몬트 주 벌링턴으로 가려면 북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중간에 그만 동쪽으로 잘못 들어선 것이다. 특히나 그 지역은 대도시가 아님에도 두 개의 고속도로가 교차되고 여러 국도가 거미줄처럼 엉켜있어 자전거로 쉽게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게 되어 있다.

나름대로 판단해서 북쪽으로 들어가 다시 서쪽으로 돌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길이 자꾸 동쪽으로 틀어진다. 계속 가다가 어느 순간 서쪽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면 무조건 좌회전할 요량으로 달렸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4번 국도는 끝끝내 서쪽으로 나있지 않았고 되레 동쪽을 타다 남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크!'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진다. 힘들게 경사가 진 몇 개의 언덕을 넘어왔는데 똑같은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고역 중의 고역이다. 자전거 여행에서는 이런 경우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손상도 상당히 심하다. 지형도 지형이지만 날씨도 더워 20km를 되돌아가야 한다는 건 죽어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히치바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오직 자전거로만 가겠다는 내 안에 고집으로 점철된 체면을 중시하다간 정신건강에 이로울 게 없을 성싶었다. 10분 만에 어렵지 않게 트레일러를 단 차량에게 픽업되어 다시 거의 10분 만에 다시 제자리로 올 수 있었다.

'내가 왜 아쉬운 소리 해가며 남의 차를 얻어 타?'라는 굳센 자존심을 생각했다면 그날 난 돌아오는 길에 자신에게 일년치 욕을 한꺼번에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제대로 찾아 갔다면 지금쯤이면 목적지에 20km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이미 20km를 손해본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고 오면서 내가 이 언덕 길을 넘어왔구나 하고 바라보니 체면 접고 차를 탄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공원에서 정자 같은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다. 텐트를 치자마자 잔뜩 어두웠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문종성
특별히 자전거 여행은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많다. 물건을 잃어버린다거나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때론 오랜 시간 동안 떠나 있으면서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도 한다.

또한 본의 아니게 마음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자연인으로서가 아닌 원래 생활 습관을 고집하거나 본인의 상황을 돌보지 않고 남을 의식하는 이유로 체면을 차리려다 몸과 마음 모두를 망칠 수가 있다.

'예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지만 '체면'은 자신을 위한 가식으로부터 나올 수가 있다. 앞으로는 체면을 차리고 실리를 잃는 것보다 그저 자연스레 상황에 맞게 나를 다듬어갈 수 있는 모습으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몬트 주까지 다다르면서 응고된 나의 생각과 편견들이 물에 잉크 번지듯 풀어짐을 느낀다.

내 사고방식만을 앞세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시선에 같은 높이로 마주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일들도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체면은… 건강의 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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