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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살리기 위함이었소."

퇴로를 열기 위해 침입하려 했다는 긍정의 말이다. 이미 운중선은 어제 오후로 정지되어 있다. 오늘과 내일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회주인 추태감과 자신이 들어와 있다. 만약 여기서 두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면 회는 머리를 잃게 되는 것이고, 회는 한순간에 이 중원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이미 철담이 관장하던 무림 쪽의 세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회의 특성 상 내부조직은 거의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중간이 끊기면 다시 연결하기 매우 어렵다. 수뇌가 갑자기 사라지면 더욱 그렇다. 회의 영속성 뿐 아니라 조직원들의 안전을 위한 배려였지만 어쩌면 중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회의 인물들은 지금 꽤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추태감이나 상만천 자신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면 회는 붕괴되거나 사라질지 모른다. 조직원의 특성상 위험이 닥치면 회와의 관계를 끊고 일시적으로 잠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만간 회가 복원되지 않다면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신분으로 살아갈 터였다.

"우리가 운중보에 들어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말이로군."

중원 전체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뒤흔드는 추태감이라 해도 그 역시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옴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팔번 중 삼번이 사라지면서 그런 불안감은 더욱 짙어졌다.

"역시 운중보의 주인은 철담이 아니었소. 실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움직였지만 운중보의 주인은 운중이었소."

"결국 운중이란 말인가?"

"그가 아니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소."

"본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허나 본관이 알기로는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어. 그렇다면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지시한 다음에 바라보고 있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그것을 점검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완벽히 진행될 수가 없는 일이다. 헌데 운중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그것은 이미 상만천도 어느 사항보다 더 신경 썼던 부분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곳에 들어와 있는 한 인물이 동조하고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옆에서 조용히 앉아 음식을 조금씩 입에 넣던 용추가 입가의 기름기를 닦아내며 입을 열엇다. 그의 얼굴은 아직까지 생기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혈색은 본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듯 보였다.

"그렇군. 용추선생이라면 설명해 줄 수 있겠군."

추태감은 마치 용추의 존재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래… 그 한 인물이 누군가? 함곡을 말함이겠지?"

"그가 아니라면 이렇듯 치밀하고 완벽한 계책이 나올 리 없습니다."

"본관 역시 그렇게 생각했네. 하지만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함곡과 운중과는 연결고리가 없어. 운중과 함곡은 만난 적도 없었고, 관련도 없었어. 최근 이삼 년 간의 조사결과야…. 그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근거가 있나?"

추태감이 허술하게 운중보에 들어왔을 리 없다. 비록 어젯밤 낭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가 움직이려면 아주 세밀한 것까지도 조사가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

"태감어른의 수하였던 비영조의 두 조장도 운중보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런 정도의 조사로 발각이 될 것이라면 보주나 함곡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두 놈. 정말 그렇다. 지금도 그 두 놈이 운중보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 두 놈만 생각하면 머리가 찌근거린다.

"그들이 함곡 일행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태감어른께서도 설중행이란 청년이 보주와 관계가 있을 것이란 말씀은 들으셨을 겁니다."

어제 들었다. 그것도 중의의 입을 통해.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중의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중의는 주위 사람을 모두 물리고 은밀하게 그 말을 전했다. 그리고 또 한 놈의 존재도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우 성가신 존재라고.

추태감은 계속해 보라는 듯 용추를 지켜보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듯, 아니면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철기문이 어젯밤 그 두 사람을 공격하다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물론 그런 결과는 이미 태감어른께서 짐작하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완곡하게 말을 돌려서 하고 있었지만 결국 철기문이 그들을 공격했던 것은 추태감이 모종의 조치 때문이 아니었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함곡이라…?"

추태감은 용추의 이런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중얼거렸다. 말을 중간에서 자르지는 않았지만 지금 용추가 하는 말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용추는 더 이상 말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추태감도 알고 있다.

"함곡 일행에 좌등과 일부 제자들도 호의를 보이며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보주의 측근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드는 형국입니다."

"……!"

"더구나 이미 운중선은 정박해 움직이지 않고 있고… 운중보는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용추는 뻔히 알고 있는 일들을 자꾸 강조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상만천이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팔숙들이 이제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고… 오늘 잠시 후에 있을 광나한과 좌등의 숭무지례가 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보주의 측근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말씀입니다."

용추는 집요하게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 의도를 모를 추태감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숭무지례라…."

추태감은 여전히 용추의 말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 하다가 시선을 돌려 상만천을 바라보았다.

"재보… 자네 생각은 어떤가? 광나한이 조금 처지겠지?"

상만천은 갑작스런 추태감의 질문에 다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좌등이 워낙 거물이라…."

그의 말마따나 보주의 그늘 아래 있는 좌등의 존재는 그저 미미한 정도였다. 있는 듯 없는 듯 크게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허나 이런 시기에 좌등을 적으로 놓고 보자니 새삼스레 좌등의 존재가 엄청나 보였다.

누가 감히 좌등을 꺾을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창대를 이끌던 그의 위명은 동정오우로 인해 언제나 뒤에 놓여졌지만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은 중원에 없다.

"태감께서 희생을 감수하며 좌등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소이까?"

어제 진번(辰幡)과 이번(離幡)이 기습한 결과를 묻는 것이다. 진번이 죽고, 이번이 겨우 목숨을 구걸 받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 다만 얼마나 좌등에게 타격을 입혔느냐는 것이 궁금할 뿐이다.

"구명지초(救命之招)로 겨우 손가락 하나를 좌등의 어께에 박아 놓았다고 하더군."

추태감은 숨기지 않았다. 이런 일은 숨겨보았자 빤히 속이 들어다 보이는 짓거리일 뿐이다. 추태감 역시 걱정은 된다.

"용추선생 말대로 광나한이 패한다면 이 안의 분위기는 더욱 위험해질 게야. 그때부터 운중의 측근들이 운중보 전체를 관장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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