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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가 장독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사가 장독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카사가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그새 만 3년이 조금 지났다. 3년 전, 그동안 30여 년 살았던 서울 집에 남매를 남긴 채 불쑥 안흥으로 떠나온 뒤, 아들은 갑자기 닥친 적적함 탓인지 카사를 데려와 길렀다. 집안에 동물 기르는 걸 무척 꺼려했던 아내가 몇 차례나 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하였고 아들은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더니, 곧 아내가 포기해 버렸다. 아내가 애완동물 기르기를 꺼려하는 까닭은 그들의 털 공해와 배설물 처리 때문이요, 더 큰 이유는 유정물을 키우다가 인연이 다할 때의 애틋한 정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집에서 개를 기르다가 마음 아프게 연(緣)을 다한 일이 있었다.

아들은 애초 약속대로 자기 방에서만 몇 달 기르더니, 그해 연말 안흥으로 내려올 때 데려와 슬그머니 떨어트려 두고 갔다. 말인즉, 아침에 출근한 뒤 늦은 밤에 귀가하니까 낮 시간 동안 카사를 혼자 두는 게 여간 미안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녀석은 없을 테지만, 그 녀석도 무척 좋아했다.

카사가 뒷산 숲에서 멧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카사가 뒷산 숲에서 멧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 박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얼마 뒤 학교 앞 노점에서 병아리를 사 와 자기 방에다 라면박스로 둥지를 만들어 길렀다. 그 뒤 어느 날 아침, 녀석의 서러운 울음소리에 놀라 우리 내외가 방문을 열자 일주일여 정성 들여 키우던 병아리가 소리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 놈을 내려다 보면서 눈자위가 붓도록 울고 있는 그 녀석을 두고 애는 애다고, 나중에 제 부모 죽으면 그리 섧게 울겠느냐고, 우리 내외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 녀석은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삽을 들고 가서 집 뒷산인 북한산 기슭에다 아주 정성껏 죽은 병아리를 묻어주었다.

아들이 데려온 고양이는 '러시아 블루'라는 혈통으로, 여간 정갈하고 성격이 고약한 놈이 아니다. 여간해서 제 마음은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먹이는 제 먹던 사료만 먹고, 용변도 꼭 제 화장실에서만 보고,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제 몸단장을 하는 아주 깨끔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놈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이었다. 어쩌다 방심한 사이 이 놈을 놓치고는 다시 잡아들인다고 여간 속을 썩이지 않았다.

아무튼 이 놈 때문에 한여름에도 문도 열지 못하고 지냈고, 이 놈이 수시로 창문이나 나들문 곁 벽지를 찢어놓은 바람에 아내는 창호지, 풀비, 풀그릇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카사가 뒤꼍에서 잣나무 위의 멧새를 바라보고 있다.
카사가 뒤꼍에서 잣나무 위의 멧새를 바라보고 있다. ⓒ 박도
누군가 환생으로 우리 집에 왔을지도

함께 사는 세월이 길어지자 놈은 차츰 눈길도 주고, 어느 때는 슬그머니 다가와서 무릎 위에 앉기도 한다. 서로가 몇 마디씩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면 이 놈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제 밥값은 한다고 기특히 여겼다.

그런데 가장 큰 고역은 털 공해였다. 무시로 이 놈 몸에서 빠지는 털은 진공청소기로 아무리 빨아들여도 실내 공기를 흐리게 하였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병인 비염이 있는지라 겨울철이면 이 놈이 떨어트린 털 때문에 더욱 고통이 심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에게 분양하려다가 아들 녀석에게 사정을 말하자 아들이 내려와서 데려갔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분양하거나 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제가 키우고 있었다.

그런 내 처사를 아내가 몰인정하다고 몹시 나무랐다. 카사는 이미 사람들에게 한번 배신당했는데 우리가 또 배신할 수 없다면서 그가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 우리가 거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사는 누군가 환생으로 우리 집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카사가 뒤뜰 나무 등걸 위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다.
카사가 뒤뜰 나무 등걸 위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다. ⓒ 박도
나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가 내 어머니의 환생인지도, 아버지의 환생인지도, 한국전쟁 직후에 어린 나이로 불쌍하게 이승을 떠난 누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그 놈을 쫓을 궁리만 했던 내가 몹시 죄스러웠다. 이 세상에 숱한 사람, 집 가운데 왜 하필 우리 집에 왔을까? 그것도 반려동물을 기르기 꺼려하는 하필 우리 집에 말이다.

그 놈은 분명 우리 식구와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한 어머니의 환생인지도, 네 살에 세상을 떠난 누이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짓눌렀다. 그래서 서울 가는 길에 카사를 슬그머니 안흥으로 다시 데려왔다.

지난해 여름 이곳 횡성지방에 장마비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렸다고 했다. 산골 내 집에도 거실까지 물이 찼다. 그러자 냉장고 밑의 오래된 먼지가 나온 바, 대부분 고양이 털이었다. 그때부터 고양이 털 공해에서 벗어나며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난 겨울 아내는 이제와는 달리 올 봄부터 밖에다가 기르자고 결론 내렸다.

이제까지 가둬 키웠는데 과연 그 방법이 성공할지 불안했지만 설사 실패하면 그것은 그 녀석의 운명이라고 아내는 단정했다.

카사는 때때로 땅바닥에 누워 애무해 주기를 기다린다.
카사는 때때로 땅바닥에 누워 애무해 주기를 기다린다. ⓒ 박도
너 이제 밖에서 살아!

올 4월 초순, 아내가 나들이 간 사이 나의 실수로 나들문을 잠그지 않았더니 그 순간을 노려 카사란 놈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먹이로 유혹하며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았다. 해거름 때에 들어온 아내는 그만 이 참에 아예 밖에서 키우자고 그의 밥그릇, 물 그릇, 침대, 의자. 화장실까지 밖으로 옮겼다. 그날 저녁 이 놈이 집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문을 긁으며 밤새 울부짖었다.

"언제는 나가겠다고 발버둥이더니 이제는 들어오겠다고... 너 이제 밖에서 살아!"

보일러 실의 벽에 창틀을 새로 만들고 식탁도 마련해 주었다.
보일러 실의 벽에 창틀을 새로 만들고 식탁도 마련해 주었다. ⓒ 박도
아내는 매정하게 자르고는 방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 뒤, 이삼일 동안 집안으로 들어오겠다고 울부짖고, 용케 집안에 들어온 놈을 다시 밖으로 쫓자 그제야 제 놈도 이제는 밖에서 살아야 되는 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살 제 집을 마련해 주는 일이 급했다. 개 집 같은 곳은 강원 산골의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없을 게다. 마침 지난 가을에 새로 만든 심야전기보일러실이 안성맞춤 같았다. 사방을 패널로 막았기에 보온도 잘 되고, 겨울철에도 온수통 열기로 춥지 않을 게다.

다만 사방을 막았기에 실내가 어둡고, 여름철에는 덥고 환기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창틀 집에 부탁하여 방충망도 곁들인 창문을 내주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탁자도 내가 직접 만들어 주었다.

카사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이른 아침 문을 열어달라고 보채면 문을 열어주고, 8시에 아침밥을, 정오 무렵 참으로 우유를 한 차례 마시고, 저녁 7시면 저녁밥을 먹은 다음 제 집에 들어가도록 일과표를 정해, 제 놈도 거기에 맞추게 했더니, 아주 신기하게도 그렇게 잘 따랐다.

3년 전, 카사가 안흥으로 내려와서 실내에서 지낼 때 모습.
3년 전, 카사가 안흥으로 내려와서 실내에서 지낼 때 모습.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도 기자의 안흥 산골이야기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 <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바보새출판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고양이#반려동물#러시아 블루#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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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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