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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3년 전,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카사 모습.
ⓒ 박상현
빵과 자유

카사, 그 놈은 마침내 자유를 찾은 거다. 그동안 빵 문제는 해결됐지만 갇힌 채 살았으니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겠는가? 빵과 자유, 이 두 가지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기본권이다. 동물이나 사람들의 투쟁도 결국 이 두 가지 때문이 아닌가.

정말 신기하게도 카사는 새 환경에 잘 적응했다. 그동안 우리 내외가 괜히 그 놈을 묶어두느라고, 우리도 저도 고생한 것 같았다.

그 놈은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주면 뒷산으로 올라가 멧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숲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대자연의 한 일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제 놈이 밥 먹을 시간은 용케도 알고 집으로 돌아와, 먼저 아내가 있는 본채에서 보채다가 기척이 없으면, 아래채 내 글방 문 앞에서 밥을 달라고 아양을 부린다. 그리고는 우리 내외가 주는 밥을 먹은 뒤 하루 종일 쏘다니다가 저녁밥을 먹고는 제 집에 들어가 이튿날 아침까지 잔다.

날마다 똑 같은 생활이 반복된다. 그에게는 나날이 달라지는 언저리 자연생태계가 신기하기만한 모양이다. 뒷산으로, 옆집으로, 길 건너 인삼밭으로, 지붕 위로 제 가고픈 대로 마음껏 쏘다닌다.

▲ 카사가 장독대 아래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 박도
카사가 자유의 몸이 된 지 일주일 뒤 무렵이다. 카사가 뒤꼍에서 비명을 질렀다. 후딱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자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시커멓고 흰 무늬의 낯선 고양이 앞에서 카사는 쥐처럼 발발 떨면서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몽둥이를 들고서 다가가자 그제야 검은 고양이는 멀리 도망가고 카사는 겁먹은 채 컨테이너 박스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아마도 이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가 함부로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카사를 혼내주려 온 모양이었다. TV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의 영역이 있는 바, 자기 영역을 침범해 온 무리에게는 목숨을 건 일전을 치르게 마련이었다. 동물 세계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외적이 자기 땅을 침입할 때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가.

▲ 카사는 호기심이 무척 많다. 나무 등걸에서 언저리를 경계하고 있다.
ⓒ 박도
컨테이너 박스 아래 숨은 카사를 제 집에 넣고 우리 내외는 앞으로 어쩔 것인가 논의 끝에 이제 와서 다시 집안에 가둬 키울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다시 풀어주었다.

애초부터 카사가 자유를 맛보지 않았으면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지만, 그동안 실컷 자유를 맛본 그를 이제 다시 가두면 더욱 뛰쳐나가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며. 제 놈이 그 놈을 이기든, 그 놈 밑에 들어가든, 그것은 제 운명이라는 아내의 지론이었다.

이튿날 그 놈이 또 우리 집 카사에게 쳐들어왔다. 내가 다시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쫓자 그 놈은 '날 살려라' 도망쳤다.

그 고양이는 토종인데다가 야생으로 자랐기에 카사보다 재빠르며 힘도 억세고 사나워 보였다. 그날부터 우리 내외가 집에 있을 때는 카사를 풀어두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나들이 갈 때는 제 집에 가두고 나갔다.

천수를 다 누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아내는 아침마다 카사를 풀어주면서 "네가 그 놈과 친하게 지내든지, 아니면 싸워서 이겨야 살 수 있다"고 말하면, 카사는 알았다는 듯 묵묵히 듣고는 뒷산으로 오르곤 했다. 카사가 자유의 몸이 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마침 서울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카사가 제 집에 갇혀 있었다.

▲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인삼밭.
ⓒ 박도
아내에게 그 까닭을 묻자, 어제 인삼밭 주인이 집쥐나 들쥐를 잡는다고, 온 밭 언저리에다 쥐약을 듬뿍 묻힌 생선 덩어리를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쥐보다 동네 개들이 결딴났는데, 앞집 노씨네 똘똘이(강아지)가 새 생선을 먹고 거품을 내며 죽었기에, 우리 카사에게도 화가 미칠까봐 하는 수 없어 제 집에 가둬뒀다고 했다.

카사는 영문도 모른 채 온종일 밖으로 나가고자 몸부림을 쳤다고 했다. 아내는 카사에게 아무 거나 먹지 말라고 잔뜩 주의를 준 뒤 다시 문을 열어주었다.

바깥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카사의 지뢰밭이 많았다. 요즘은 시골집에도 집집마다 자동차가 한두 대 꼴이요, 하다못해 경운기라도 있기에 그 모두가 카사에게는 위험물이다.

이웃 고양이에다가, 사람들이 놓은 쥐약, 거기다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집 앞 도로로 지나다니는 차들도 카사에게는 모두 지뢰들이다. 카사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자동차 밑에 잘 들어갔고, 어떤 때는 아예 자동차 바퀴 옆에서 팔자 좋게 낮잠까지 즐긴다. 사실 국도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에 깔려죽은 야생동물들이 부지기수가 아닌가.

사람들이 저만 편리하기 위한 문명들이 동물들에게는 거의 모두가 지뢰들이다. 호랑이 늑대는 사람들 손에 이미 멸종된 지 오래고, 사슴 산양 고라니도 거의 멸종 단계요, 그밖에 짐승들도 멸종 일보 직전에 놓여 있다. 이러다가 이 지구에는 모든 생명체들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아내는 카사에게 밥을 줄 때마다 이웃 고양이 조심, 차 조심, 사람 조심을 세 살배기 어린이에게 이르듯 가르치지만, 카사가 이를 얼마나 알아듣고 조심하는지 모르겠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동물이나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사람의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더욱 자연은 파괴되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살이는 사람도 짐승도 왜 이다지도 점차 힘드는지 모르겠다.

카사, 너의 세상살이도 녹록치 않구나. 아무쪼록 네가 천수를 다 누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를 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도 기자의 안흥 산골이야기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 <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바보새출판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고양이#동물의 세계#야생동물#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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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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