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통합적 사고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

논술이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이른다. 그런데 요즘 논술이라 하지 않고 통합 논술이라고 한다. 논술에 왜 통합이라는 낱말을 더 보태어야만 할까? 그냥 논술이라고 하면 논리적 서술 능력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인상이 짙기 때문인 것 같다.

최재천 교수는 <대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멀티(multi)를 넘어 이제는 트랜스(trans)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곧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우리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 교육에서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통합 논술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 논리적 서술 능력 넘어 통합적 사고 능력까지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통합적 사고 능력은 어떻게 길러야 하나?

첫 걸음은 가볍게 내딛자. 통합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을 합하여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작업을 하며 힘에 버거워 그만 주저앉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영역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여 보는 것으로 가볍게 출발하자. 이때에도 성급함에 못 이겨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져오려 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여 보자. 그러면 고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준다.

통합적 사고 능력의 첫 걸음

인간의 지식은 우주 내의 많은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행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자라난다. 이와 같은 지식의 변화는 다윈의 진화론 이래 과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사물의 진화 현상이란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한마디로 생물 진화 과정의 발전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윈 이론의 핵심은, 각각의 개체들은 어떤 불규칙적인 변이를 가지게 되며, 이 변이는 생물체를 통하여 외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유전을 통하여 후대에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변이가 생존에 유리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그 변이를 지닌 개체 및 그 후손이 적자로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 후 유전자에 관한 개념이 명확해지고 돌연변이에 관한 수학적 이론이 형성되면서, 1930년경에 이르러서는 진화 현상을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와 필연에 의한 자연선택의 두 가지 과정이 단순 반복되면서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진화의 과정을 좀 더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종래에는 생물의 개체군이 거의 동일한 유전자들을 가진다는 생각에 얽매여 돌연변이가 우연히 일어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몇몇 실험 결과 이미 한 생물종의 개체군 속에는 무수히 많은, 그리고 조금씩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섞여 있어, 그 가운데 변화에 알맞은 변종의 유전자들이 서로 효과적으로 밀집되고 결합되어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돌연변이는 유전자를 통해서 발생하며, 자연선택은 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생물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고찰을 통해 밝혀진 중요한 사실은, 유전에 의해서 전해지는 유전형과 자연선택에 의해서 선별되는 표현형,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서로 복잡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 지식도 이러한 생물 진화 과정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발전해 나간다. 논의의 편의상 과학적 지식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것을 통틀어 '이론'이라 하자. 이 '이론'은 대를 물려 가며 후대에 전수되는 것으로서 '유전형'에 대응한다. 그런데 이 '이론' 자체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언어적인 표현을 거쳐야만 논문이나 저서 등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외형적 표현은 '표현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각종 정신 활동은 이러한 과학 지식의 자연선택을 담당하는 환경 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존의 과학 이론은 여러 경로를 거쳐 특정의 개인에게 전수된다. 그 개인은 전수받은 이론을 바탕으로 이를 심화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내용을 부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표현형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생된 이론이 처음 전수된 이론과 크게 달라지는 경우, 우리는 이를 돌연변이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전수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왜곡한 것일 수 있으며, 논문 등의 의미 있는 표현형으로 재생되지 못하거나 표현형을 취하게 되는 경우에도 곧 사장되어 그 존재 가치를 잃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전수된 이론이 창의적 과정을 거쳐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새 이론으로 재생되어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성공적인 돌연변이에 해당한다. 이때 그 환경 여건, 즉 학문 사회의 풍토 및 활동 여건이 강한 선택 압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돌연변이는 즉시 다른 경쟁 이론들을 이겨 내고 학문적 적자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 장회익의 <지식 진화와 학문 간의 상호 영향>(구자송 외, '언어영역 종합편', 192-3쪽(즐겨찾기, 2007)에서 가져옴)


위의 지문 역시 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물의 진화 과정을 지식의 발전 과정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현상은 단편적으로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저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서로 얽혀져 있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적용하여 소비를 설명하고, 문학비평에 다윈의 이론을 접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문의 깊이는 깊어지며, 대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더욱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힘이다.

위 지문의 알맹이는 성공적인 돌연변이이다. 성공적인 돌연변이란 전수된 이론이 창의적 과정을 거쳐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새 이론으로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과학의 틀에 갇혀 있는 돌연변이를 밖으로 불러내어 숨 쉬게 해보자.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성공적인 돌연변이가 많이 있을 것이다. 이를 찾아보는 것으로 통합적 사고 능력에 쉽게 다가서보자.

성공적인 돌연변이란 전수된 이론이 창의적 과정을 거쳐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새 이론으로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공적 돌연변이로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을 예로 들 수 있다. 훈민정음은 어려운 한자 때문에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했던 당시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중화사상에 젖어 있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을 오랑캐의 글이라 여김으로써 훈민정음은 당시에 사장되어야 할 돌연변이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자주 의식과 서민 의식이 성장되면서 한글 사용이 확산되었고, 그 후 한글은 우리의 글로 완전히 자리매김 되었다.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조한 세종대왕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공적 돌연변이는 우연한 발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환경 여건이 뒷받침될 때 새로운 이론은 성공적 돌연변이로 발전될 수 있듯 자주 의식의 성장이 한글이라는 성공적인 돌연변이를 이끌어내었다. - 부산국제외고 3학년 위미성


이 글을 쓴 학생은 지문에서 성공적인 돌연변이의 뜻매김을 가져와 서론으로 삼았다. 본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성공적인 돌연변이의 예로 훈민정음을 들고, 이에 대한 구체적 논증으로 훈민정음은 어려운 한자 때문에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했던 당시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논거로 들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사대부들의 압력을 받았지만 자주 의식과 서민 의식이라는 환경 여건을 밑거름으로 하여 우리글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지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환경 여건, 즉 학문 사회의 풍토 및 활동 여건이 강한 선택 압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돌연변이는 즉시 다른 경쟁 이론들을 이겨 내고 학문의 적자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고 하였다. 훈민정음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성공적인 돌연변이가 되어 오늘 우리 사회에 잘 잡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공적인 돌연변이의 구체적인 예를 늘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서 찾고, 이에 대한 뒷받침 또한 알차게 하였다. 논술의 출발은 고민이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통합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내 눈 찌른 것을 즐기다

논술 수업을 하면서 "내가 또 내 눈을 찔렀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매 수업 시간마다 진행되는 400~600자 정도의 글쓰기, 이것을 평가하려면 아무리 안 걸려도 한 반에 두 시간이 걸린다.

하루 수업이 4~5시간, 아이들이 쓴 글을 받으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삶을 읽는다. 아이들 글 가운데 나를 일깨우는 글도 그리고 생기발랄한 글에 젖어 보는 행복도 느낀다.

나는 어느새 내 눈을 내가 찌른 것을 즐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기대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논술 그거 재밌네!"라고 해 주길.

태그:#통합논술, #사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제는 '총명'해야 할 나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