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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호숫가 언덕위에 서 있는 아름다운 팔복교회 전경
ⓒ 이승철
우리가 뱃놀이를 하며 건넌 갈릴리 호수는 바람이 세찼지만 이상하게도 물결은 잔잔했다. 덕분에 뱃멀미로 고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만큼 우리가 상륙할 작은 도시가 점점 가까워졌다. 호숫가의 마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선착장에서 내려 우리를 태우고 이동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길가에 제법 커다란 건물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 작은 가게 몇 개와 커다란 식료품점이 덩그렇게 썰렁한 모습이다. 한쪽에 깨끗한 화장실이 있어서 모두 이용했지만 이용요금을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거참, 모처럼 화장실 이용요금 안 내고 깨끗한 시설 이용했네 그려!"

모처럼 공짜 화장실을 이용하여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텔 이외의 장소에서는 거의 대부분 화장실 이용요금을 지불했었던 기억들이 새로운 모양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작은 공원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와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공원 곳곳에는 돌과 나무를 조각한 작품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적당히 만들어 세워놓은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고급 예술작품들이었다.

"어! 저기 좀 봐요? 이곳에도 장승이 서 있네."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우리나라의 장승 같은 것이 서 있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엔 비슷한 것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장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장승은 통나무의 윗부분만 사람의 얼굴을 새겨놓는 형태인데 이쪽 것은 그렇지 않았다.

▲ 아름다운 꽃과 조형물
ⓒ 이승철
▲ 교회 언덕 위에서 바라본 갈릴리호수 풍경
ⓒ 이승철
맨 위에서 아래쪽까지 다양한 모양의 정교한 조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승들은 정교하다기보다 투박한 솜씨인데 비하여 이 공원에 서 있는 것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 있고 칠까지 되어 있었다.

"우와! 저 꽃 좀 봐요? 무슨 꽃이 저렇게 화려할 수가 있지?"

이번에는 꽃이었다. 공원 가까운 건물의 담벼락에 늘어진 덩굴식물이 한쪽은 진분홍 꽃을, 또 다른 쪽엔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저 꽃 이름이 뭐에요?"

누군가가 가이드 서 선생에게 묻는다. 이국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꽃이었지만 너무나 화려한 모습에 갑자기 꽃 이름이 궁금해진 것이다.

"꽃 이름은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무나 꽃 이름은 묻지 마세요. 사실 저도 아는 나무나 꽃이 별로 없거든요."

그는 여행객들이 나무나 꽃 이름을 물을 때면 상당히 괴롭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다양한 꽃들 가운데 우리가 아는 꽃 이름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모국의 꽃도 이름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게 현실인데 하물며 이국의 꽃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이후로는 가이드에게 꽃이나 나무이름을 묻는 일은 없었다. 그냥 궁금한 데로. 참 예쁜 꽃, 참 멋있는 나무, 그냥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 교회 내부 모습
ⓒ 이승철
▲ 공원 안에 전시된 조각 작품들
ⓒ 이승철
"모두 승차하셨습니까? 그럼 출발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가는 곳은 팔복교회입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갈릴리 호수를 끼고 높지 않은 언덕을 돌고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풍경은 역시 풀밭과 밀밭, 그리고 대추야자나무들이 가지런하게 자란 풍요로운 모습의 농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달려 도착한 곳은 역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주차장에 버스가 정차하자 우르르 내린 일행들이 가이드의 뒤를 따랐다. 정갈하게 정리된 길 양편으로는 키 큰 야자나무와 함께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교회는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자리가 바로 예수가 여덟 가지 복에 대하여 산상설교를 한 곳이라고 한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비잔틴시대의 교회유적지에 1938년에 이탈리아의 건축가 바루치의 설계로 세워진 것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장식이 장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붕은 돔 형식으로 천정에 있는 팔복을 상징하는 8개의 아치형 창문을 통하여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또 그 창문에는 창문마다 라틴어로 8복에 대한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팔복이 무엇 무엇인지 다들 알고 계시죠? 그럼 제가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성경 마태복음 5:3∼10) 저 위의 천장 창문에도 이 말씀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장승을 연상케 하는 목재 조각작품
ⓒ 이승철
▲ 교회내부의 자연 채광을 겸한 라틴어로 팔복이 기록된 창문
ⓒ 이승철
일행들은 모두 기독교도들이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다. 그러나 이 자리가 바로 그 8복이 최초로 선포된 자리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더욱 숙연한 표정으로 천정의 창문을 올려다본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어떻습니까? 실감이 납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천국이 그의 것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가 욕심 때문이지요. 욕심을 버리면 그는 천국을 대신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8복이라는 성경구절은 수없이 들어서 잘 알고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매우 단순한 문장 속에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전통의 5복과는 어떻게 다르죠, 5복에 복 3개를 더한 것이 8복인가요?"

5복과 8복, 매우 비슷한 말이다. 5복에 3개의 복을 더하면 8복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복의 개념과 복을 추구하는 기본 바탕이 다른 것이다.

우리 전통의 5복은 수(壽) 오래 사는 것이요, 부(富)넉넉한 재물을 소유하고,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유호덕(攸好德) 남을 돕고 덕을 쌓는 삶, 고종명(考終命) 편안한 죽음을 말한다.

즉 5복은 우리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현실적으로 추구하고,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을 그대로 망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복은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상이 담긴 것으로 천국이라는 이상향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 교회 입구 풍경
ⓒ 이승철
▲ 호수변의 그림 같은 마을 풍경
ⓒ 이승철
한 가지만 비교해 보자. 5복 중의 두 번째 복인 부(富)는 넉넉한 제물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8복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마음을 비워 욕심이 적으면 그것이 행복이고 천국까지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를 둘러보고 마당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회가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서 전망이 끝내준다. 마침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굽이굽이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호수의 풍경이 아름답기 짝이 없다.

아득히 호수 건너 하얗게 솟아 있는 사막의 산 풍경도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하얗게 빛나는 산과 호수의 푸른 물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호수주변의 풀밭과 그림 같은 마을, 그리고 가까운 곳의 밀밭과 푸른 산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이 8복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떻습니까?"

일행들이 머리를 끄덕인다. 어디 이 8복의 말씀뿐이랴.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요구되던 때가 있었을까?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은 꼭 어느 특정종교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자식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의사나 법관이 되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의 거의 전부이다 싶을 정도로 종교의 기본 속성이 왜곡된, 기복신앙에 빠진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 노란 덩굴식물이 꽃피운 화려한 모습
ⓒ 이승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에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서 누군가가 8복의 구절을 읊조린다, 화단에는 아름다운 장미꽃과 함께 가시 돋친 선인장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이 푸른 풀밭과 함께 대추야자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모습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룩소르, #다마스커스, #팔복교회,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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