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몸이 좀 나아지면 틈 나는 데로 채마밭을 일구던 어머니
몸이 좀 나아지면 틈 나는 데로 채마밭을 일구던 어머니 ⓒ 김현
어머니가 보내주신 것들을 받은 다음 시골에 전화를 했습니다. 힘들게 뭐 하러 이렇게 바리바리 싸서 보냈느냐는 투입니다.

"엄마, 나.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많기는 머시 만타냐. 더 보낼려고 한 것을 니 동생이 투정을 해서 고것밖에 못 보냈다."

"엄청 많은데요. 겨울 내내 먹어도 끄떡없겠어요. 오늘은 엄마 때문에 진수성찬이네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배곯으면 안 되닝께 배고플 땐 돈 아끼지 말고 머든지 사먹으라. 알았지. 에미가 옆에서 밥 해주면 좋것지만 어디 그럴 형편이 되냐."

"걱정 마세요. 알아서 잘 해먹고 있으니까. 그럼 끊을 게요."
"그래 알았다. 참, 그 대파는 베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놓고 하나씩 캐 먹거라. 파뿌랑구는 버리지 말고 감기 걸리려고 하면 끓여서 먹거라. 하얀 파뿌랑구 끓여 먹으면 감기에 좋다고 하드라."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면서도 내내 '아프지 말거라', '배곯지 마라' 하는 등 걱정을 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으로 그날은 동생과 함께 모처럼 어머니의 그 애틋한 사랑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멸치조림, 고추조림과 김치와 내가 좋아하는 싱건지 속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다음날, 난 대파 몇 뿌린 화분에 심었고, 나머진 비료부대의 흙에 심은 채 볕이 잘 드는 베란다 한쪽에 놓았습니다. 그리곤 콩나물국을 끓여 먹을 때나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송송 썰어 넣었습니다. 그러면 파의 향기가 가득 피어 놀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베란다 화분에 심었던 대파 몇 개가 하얀 꽃 대궁의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파꽃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파꽃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고, 어머니의 숨결이 아른거렸습니다.

그 뒤로 난 화분의 파는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파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쓸쓸하거나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난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파꽃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파꽃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파꽃 ⓒ 김현
파꽃은 내 작은 공간에서 겨울에 핀 유일한 꽃이었습니다. 그리 향기는 진하지 않지만 가까이 코를 대보면 향기가 일기도 했습니다. 그 파꽃을 바라보며 난 어머니를 생각했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파꽃은 어느새 그리움의 나비가 되어 창밖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어머니, 파꽃이 피었습니다.
당신의 마음 가져다가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놓았더니
어느 새 소담한 꽃이 되었습니다.

국 끓일 때, 무쳐먹을 때
한 두 뿌리 캐어다가
송송 썰어 향긋한 냄새 즐겼는데
어머니, 저 구속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뿌리 하얗게 땅속으로 심으며
초록의 대궁이 누런 얼굴로 하직하며
찬바람 이는 내 작은 공간에
당신은 따스한 미소로 내게 왔나 봅니다.

내 입 속에서 추억의 꽈리처럼 노닐다
꽃이 된 대파 한 조각, 어릴 때 징하게 물던
당신의 젖가슴인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 '파꽃을 바라보며' -


그때 난 그 그리움에 젖어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훈훈해졌습니다. 저 멀리 고향 땅에서 못난 자식을 생각하고 있을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대파를 보거나 파꽃을 보면 그때 어머니가 보내주신 파에서 핀 화분의 파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일터로 나가시던 당시의 어머니의 모습과 병들어 지쳐있는 현재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속 숨을 쉽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난 파꽃을 바라볼 때마다 그때 어머니가 보내주신 사랑과 마음을 오래도록 떠올리며 간직할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