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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시나이 산 야간 등산으로 잠을 설친 일행들은 버스 안에서 대부분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버스는 잠에 떨어진 일행들을 태우고 사막을 질주했다. 한 시간쯤 잤을까? 한두 사람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낮잠은 오래도록 잘 수 없는 것이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삭막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가끔 도로 가까운 사막을 낙타나 조랑말을 끌고 지나가는 베두인족들이 보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한다.

"아니 저 사람들은 이 황량한 사막을 왜 저렇게 걸어가죠?"

그래도 지금은 겨울철이어서 그리 뜨겁진 않겠지만 조랑말이나 낙타를 타거나 끌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들을 보는 것은 여간 신기한 모습이 아니었다.

▲ 시나이 반도 누에바 항 근처의 한인식당에서 받은 우리 밥상
ⓒ 이승철
"저게 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양이나 염소를 먹이고 이웃마을에도 놀러 가는 것이죠. 왜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걸어서 산 너머 이웃마을에 마실 다니기도 했었잖아요."

@BRI@우리가 바라보기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메마른 사막이 바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가끔 저 멀리 산 아래 작은 움막 같은 것이 몇 개씩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들 베두인족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조금 더 달리자 사막 길 삼거리에 검문소가 나타났다. 길가의 초라한 초소와 작은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검문을 한 이집트 경찰은 운전기사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아무 말 없이 우리가 탄 버스를 통과시킨다.

그 앞에 보이는 모래산 위에는 하얀 돌멩이들을 모아 영문자로 '이집트'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았다. 마치 '여기는 아직 이집트 땅이야, 내 땅이란 말이야!'라고 강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하긴 이 땅도 한 때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패하여 점령당했던 땅이었으니 이해가 된다.

"자! 이제 그만 주무시고 창밖을 내다보십시오, 이제 곧 멋진 절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다양한 색상의 바위산들도 나타나고 미국의 그 유명한 그랜드캐니언처럼 생긴 풍경도 나타날 것입니다."

▲ 저 산밑에 보이는 것이 배두인들의 거주지
ⓒ 이승철
▲ 이집트 시나이 길 삼거리의 검문초소
ⓒ 이승철
잠시 후 정말 멋진 풍경들이 나타났다. 모래사막을 잠깐 달리자 앞쪽으로 시루떡을 잘라놓은 것 같은 산과 깊게 파인 골짜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와! 정말 작은 그랜드캐니언 같구먼."

여행을 많이 한 일행 한 명이 감탄을 한다. 그는 몇 년 전에 미국관광을 갔을 때 헬리콥터를 타고 그랜드캐니언을 돌아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일대를 시나이캐니언이라고 합니다. 작은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부르지요."

시나이캐니언은 규모나 높이는 작았지만 정말 멋지고 신비한 모습이 작은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할만했다. 그런 멋진 지역을 벗어나자 잠시 후에는 정말 바위에 색칠이라도 한 것처럼 다양한 빛을 띤 바위산들이 나타났다.

"히야! 저 바위산들 좀 봐! 정말 누군가가 페인트칠이라도 해 놓은 것 같네."

르비딤 골짜기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잠깐 보았었지만 이쪽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정말 누군가가 거대한 붓으로 물감을 칠해 놓기라도 한 것 같은 색감이었다.

도로는 이쯤에서부터 내리막길이었다. 버스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달렸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진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우리가 여행했던 지역은 고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버스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내리막길을 달렸다.

"저 앞쪽을 보십시오. 바다가 보이지요. 아카바 만입니다. 저 누에바 항에서 여러분들은 요르단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일단 여기까지만 안내해 드리고 다음에 돌아오실 때 다시 뵙게 될 것입니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앞쪽 저 멀리 바다가 잠깐씩 얼굴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도로가 구불구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 누에바 항에서 이스라엘로 가지 않고 요르단으로 먼저 들어간다고 한다. 시리아에 입국하려면 이스라엘을 경유해선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삼거리 검문소 풍경
ⓒ 이승철
▲ 여긴 이집트 땅이야! 하고 강조라도 하려는 듯 하다.
ⓒ 이승철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정이 강한 시리아 국경에서는 이스라엘 스탬프가 찍힌 여권은 입국을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럼 이스라엘에서도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것 아니냐고 물으니 이스라엘에서는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로 가지 않고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관광한 후 다시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입국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점심은 이곳 한인식당에서 우리 한식으로 하시겠습니다."
"우와! 한식이라고요? 그럼 김치와 밥을 먹는단 말에요?"


그동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던 몇 사람이 환성을 터뜨린다. 이집트에 도착한 이래 아직 한 번 밖에 우리 음식 먹을 기회가 없어서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니, 아까 시나이캐니언을 볼 때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더니만 우리 음식이 나온다니까 환성을 터뜨리는 것이 멋진 경치보다 음식이 더 좋은가 보죠?"

내가 일부러 짓궂게 시비를 걸어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우리 음식을 그리워했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경치도 좋지만 먹어야 구경도 하고 살지요. 호호호."

잠시 후 우리는 누에바 항 근처에 있는 한인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얀 쌀밥에 김치와 불고기, 그리고 쌈을 싸먹을 수 있는 상추까지 차려져 있다.

"우와! 이 쌀밥과 김치, 군침이 돈다, 돌아."

모두 맛있게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더 달라고 해서 먹는 사람도 있다. 모처럼 먹는 한국 음식이 식욕을 더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현지음식을 잘 먹어도 우리 김치와 쌀밥을 먹는 맛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 사막의 아카시아나무 풍경
ⓒ 이승철
▲ 사막을 가로지르는 송전탑
ⓒ 이승철
한국인 식당주인은 현지인 종업원들을 잘 훈련해 놓아서 모두 민첩하고 재빠르게 우리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곧 커피를 한 잔씩 대접한다. 이집트에 입국한 이래 아직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다.

"식당주인이 특별히 알아 모시는 것이랍니다. 본래 커피 한잔에 1달러씩 주셔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서비스하겠답니다."

모두 손뼉을 짝짝 친다. 대접받아서 기분 나쁜 사람 있겠는가. 그것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특별히 대접하는 것이라는데.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자 마침 버스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역시 한국인들이다. 그들도 여행 중에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이 식당을 찾은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엄마! 이제 쌀밥 먹게 되는 거야?"

아이들도 우리 음식이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모두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현지인 종업원들 몇이 나와 스피커와 앰프를 가설한다. 눈치를 보니 우리에게 아마 우리 음악을 들려주려는 것 같았다.

▲ 얼마나 그리웠던 우리 밥상이던가
ⓒ 이승철
모두 무슨 음악이 나올까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들은 몇 번인가 앰프와 스피커를 손보며 음악 테이프를 넣는 눈치였지만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음악도 무슨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비가 불량이었던가, 아니면 그들이 기술적으로 작동을 시킬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 이제 출발하시죠? 곧 이곳 누에바 항에 요르단의 아카바 행 페리호가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요르단으로 건너가는 배를 타기 위해 누에바 항으로 출발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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