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성 캐서린 수도원 안에 오직 한 그루가 있다는 떨기나무
ⓒ 이승철
시나이산에서 일출을 본 관광객들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우리들도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여름철이 아니어서 대단한 햇볕은 아니었지만 한낮의 태양빛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은 주변이 온통 불그레한 빛깔의 바위산들뿐이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함이 마음까지 메마르게 하는 느낌이다. 바위산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산길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정말 어젯밤 이 길을 걸어 올라간 것이 맞아?"

일행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묻는다. 어둠 속에서 앞사람의 불빛만 보고 따라 올라갔는데 밝은 대낮에 바라본 풍경이 일행들을 질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우와! 이 먼지, 이걸 또 우리들이 모두 마시면서 올라갔을 것 아냐?"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려오는 산길은 온통 먼지가 가득했다. 메마른 땅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바짓가랑이가 뽀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날아드는 희부연 먼지 때문에 코를 감싸 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는 어둠 때문에 그 많은 먼지를 느낄 겨를도 없이 올라간 것이다. 그래도 그 산길 곳곳에는 초라한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음료수와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또 곳곳에는 내려가는 손님을 태우려고 낙타들이 서 있거나 돌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 시나이산 등산로 협곡
ⓒ 이승철

▲ 손님을 기다리는 낙타
ⓒ 이승철
그런 아슬아슬해 보이는 산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오자 골짜기가 나타난다. 그 골짜기 길가에는 정말 더욱 초라한 기념품 몇 개씩을 늘어놓은 노점상들이 앉아 있는데 대부분 노인들과 여성들이다.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손에 작은 물건 몇 개씩을 들고 "원 달러"를 외치면서 호객을 했지만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게 골짜기를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할 때 쯤 골짜기 입구에 작은 성처럼 생긴 건축물이 나타난다. 건축물은 산 밑 뒤쪽으로 몇 그루의 커다란 나무들이 보일 뿐 역시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이다. 성 캐서린 수도원이었다.

수도원 앞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원의 문을 여는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나이 산으로 오르는 좁은 협곡 사이에 있는 수도원은 앞과 뒤에 거의 절벽에 가까운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수도원이 마치 산의 입구를 지키는 성처럼 보인다.

실제로 한때는 이 수도원에서 시나이 산 순례객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옆 뜰로 들어갈 수 있는 넓고 커다란 문이 마침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서니 수도원의 안마당 같은 곳이 나타난다. 역시 뒤쪽은 높다란 바위산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 보니 수백 년씩 자랐음직한 몇 그루의 올리브나무 고목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바로 그 앞쪽에는 공중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역시 유료다.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니 1달러에 서너 명씩을 입장시키고 있었다.

▲ 멀리서 바라보면 아슬아슬해 보이는 등산로
ⓒ 이승철

▲ 시나이 산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두 여인
ⓒ 이승철
다시 수도원 앞으로 나오니 일행들 몇 사람이 화장실을 찾는다. 그들을 안내하여 예의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그사이 산에서 내려온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한 줄에 10여 명씩 두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줄 뒤에 서 있다가 우리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돈을 지불하려고 하니 1달러에 두 명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손님들이 많아지자 요금을 올린 것이다. 그때 마침내 수중에는 1달러 지폐가 한 장 밖에 없었다. 1달러 지폐의 용도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기 때문에 여유로운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두 사람만 입장하고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소지한 1달러 지폐를 이용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1달러 지폐는 나중에 여유 있게 준비해온 다른 일행으로부터 넉넉하게 교환한 후에야 해소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수도원입구로 돌아가니 아직도 입장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가이드 이 선생의 재미있는 설명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의 수도원에 대한 안내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해박한 지식으로 인하여 다른 팀들까지 슬그머니 우리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통에 그 팀의 가이드 입장이 묘해지고 말았다.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던 입장이 시작되었다. 역시 관람료를 내야하는 유료입장이었다. 입구는 비좁은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이 작은 문만 닫아버리면 수도원이 정말 요새가 될 것 같은 구조다.

이 캐서린 수도원은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았던 곳으로 기원 후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작은 교회가 모태가 되었다.

▲ 노점을 벌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랍여인
ⓒ 이승철

▲ 캐서린 수도원과 뒷산 풍경
ⓒ 이승철
4세기 초, 이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황제는 사병출신이었던 막시미누스(재위 235~238) 황제였다. 그는 트라키아의 농민 출신이었는데 독일의 라인지방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거대한 체구를 지녔던 그는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가 암살되자 군인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황제 재위 중 특히 기독교 박해를 심하게 했는데 귀족출신의 캐서린은 용모와 학식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녀가 기독교에 입문하여 황제의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를 아끼던 황제는 몇 사람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를 회유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학자들까지 기독교도가 되고 말았다.

몹시 노한 황제는 결국 캐서린을 잡아들여 모진 고문 끝에 죽이고 말았는데 그녀의 시신이 천사들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 후 막시미누스 황제는 도나우강과 라인강 유역을 정벌하였으나 원로원을 무시하다가 폐위되었고, 결국 부하들에 의하여 자식들까지 함께 몰살당하는 비운의 황제가 되고 말았다.

그 막시미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황제의 지배지역 여러 곳에 교회를 많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수도원도 그들 교회 중의 하나로 세워진 곳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순교한 캐서린의 이름을 따 성 캐서린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수도원 안에는 모세가 보았던 타지 않는 떨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떨기나무가 딸기나무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르네."

누군가 의외라는 듯 놀라움을 표시한다.

"떨기나무, 딸기나무, 이름은 비슷하네요. 그렇지만 나무는 전혀 다른 것 같은데요."

떨기나무는 여학생의 단발머리처럼 가지런하게 정돈된 머리처럼 덩굴을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 수도원 지하묘지, 안 쪽의 함에 유골이 들어 있다
ⓒ 이승철

▲ 수도원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는 수도사
ⓒ 이승철
수도원의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지역은 아주 좁았다. 요새와 같은 구조의 이 수도원은 비잔틴 시대에 건설한 건축물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슬람과 기독교의 지배가 교차되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고, 십자군과 나폴레옹의 원정을 겪었지만 이 수도원은 무사했다고 한다.

수도원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에 들른 곳은 수도원의 공동묘지였다. 묘지는 지하에 있었다. 수도사 한 명이 지켜 서 있는 크지 않은 방에는 수많은 유골들이 부위 별로 나누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유골들은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죽은 수도사들의 유골이라고 한다.

수도원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제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 누에바 항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기다리고 있어야할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얼빵'이라는 이름 정말 잘 지어주셨네요. 이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한 시간이나 늦게 오라고 연락을 했더랍니다."

가이드 이 선생이 버스기사와 통화를 하고 난 후 하는 말이다. 얼빵은 현지인 가이드에게 우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 얼빵이 또 작은 사고를 친 것이었다.

▲ 수도원 입구 주차장 주변의 가게풍경
ⓒ 이승철
그 얼빵의 엉터리 안내 때문에 우리들의 일정에 한 시간의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운전기사가 재빨리 버스를 몰고 와서 우리들의 일정 차질을 막아준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주차장에는 관광객들을 태운 차량들의 출입이 빈번했다. 주변에는 돌로 지은 건물에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도로변의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누에바로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대부분 깊은 잠속에 빠져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