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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작가는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다. 그런 기풍이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홍성식 작가는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다. 그런 기풍이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홍성식 기자가 작가 인터뷰를 하면 매번 시끄러웠다. 동갑내기 소설가 김종광과 낮술 인터뷰를 했을 땐 "칼럼인지 수필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았고, 반미소설의 효시 <분지>의 작가 남정현을 인터뷰했을 땐 "시의적절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당시 딸린 댓글이 대략 200여개.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을 만났을 땐 '아름다운 기사'라는 평가를, <축구전쟁>을 출간한 소설가 김별아와 만남에선 '<선데이서울>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때는 6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소설가 공선옥을 만났을 때는 '술 이야기만 했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거의 대부분 취중 인터뷰인데다,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글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은 열광 아니면 비난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그렇게 냉탕과 열탕을 오가면서 황석영, 조정래, 신경림, 성석제, 김연수, 정화진 등 27명 작가를 만났다. 최근 발간된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는 바로 그 27명 작가 인터뷰 모음집이다. 여기에 소개된 글들은 모두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오마이뉴스>에 게재됐다.

해서 홍성식 기자(아래 홍 작가)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참 난감하다. 직장에서 마주보고 일하는 사람과 인터뷰라니. 익숙한 사람과 정색하고 질문과 답을 하는 일은 서로 겸연쩍은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인터뷰하기로 한 날 홍성식 기자와 실컷 술만 마셨다. 작가 인터뷰를 거의 대부분 취중으로 했으니 그 분위기에 고스란히 넘어간 것일 게다. 차이가 있다면 홍 작가는 술 마시면서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고, 나는 다음날 멀쩡한(?) 상태로 인터뷰를 했다는 것. 해장국을 먹으며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도덕적이어야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남성 작가의 경우 작가의식을 지닌 사람을 골랐다. 작가의식을 지닌 이는 도덕적인 사람이다. 도덕적이란 시대적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강태열, 남정현, 현기영, 조정래, 송기숙 등 모두 그런 분들이다. 여성 작가? 그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웃음)

이런, 그가 '욕'먹을 말을 했다. 남성 작가에 대해선 엄청난 도덕성을 요구한다고 하고선, 여성 작가에 대해선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재차 물었더니 '작품을 읽었을 때 좋은 느낌이 오는 여성 작가'라고 덧붙이긴 한다.

홍 작가는 21세기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아주 '고루한'(?) 기풍을 지니고 있다. 남편이 집에서 설거지를 해선 안 되고, 아버지와 스승은 여전히 하늘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을 때 벌떡 일어나서 지나치게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남성 작가에 대해서만 '시대적 사명' 운운하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이번 인터뷰집에서 그가 다루지 않은 작가군은 두 부류다. 하나는 이문열, 김훈 같은 보수 작가들, 또 하나는 박노해, 백무산, 방현석 같은 노동문학 작가들이다. 보수 작가들을 다루지 않은 이유는 자신과 너무 닮아서, 노동문학 작가들을 다루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완곡히 거절해서란다.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인터뷰'에 대해서 물었다.

"내가 먼저 열고 들어가서 그 사람도 여는 인터뷰가 좋은 인터뷰지. 그래서 그 사람의 삶까지 보이는…."

기자 홍성식이 욕먹는 이유는 이런 인터뷰관 때문이다. 그는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를 줄이는 게 목표이며, 제대로 인터뷰에 성공했을 때는 기자는 온데간데없이 상대방과 동화돼 버린다.

음주 인터뷰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바로 그가 '동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작품의 함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대신 "아버지는 뭘 하시던 분입니까"로 말문을 여는 것도 그래서다.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체질적으로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내 글도 재미가 없고"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삶을 넘어서는 글은 없어. 중요한 건 삶이지. 결국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문학을 만든 것 아니겠어?"

"낭만이 넘친 30년대, 60년대가 그리워"

ⓒ 오마이뉴스 조경국
홍 작가의 글을 보면 낭만에 대한 그리움이 '철철' 묻어난다. '친구 집에 몰려가 부부의 방 한가운데서 잠들곤 했던 그 거친 낭만의 시대'라는 문구는 곧 홍성식의 마음이다.

매번 초판을 못 넘기는 책을 써내면서도 술값, 여행비 벌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산 모으는 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그는 이번에 낸 책값 인세를 어머니에게 쓸 계획이다. 평생 가족 수발만 해온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수발 받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그는 1930년대와 1960년대를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기억한다. 그건 무엇보다 그 시절이 작가가 작가로서 존경받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작가들 또한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당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작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4·19 이후 당대 최고의 거물 정치인이던 장면과 붙은 사람이 바로 김관식이었어. 아주 호방한 인물이었는데, 그 어른이 장면과 붙고 나니까 동사무소에서도 건드리질 못하는 거야. 그래서 무허가로 집을 크게 지었지. 그러고선 가난한 문인들 10명을 데려다 살게 했어."

"현기영 선생이 아주 대단한 어른이야. 500명의 주민을 군인이 학살한 북촌리 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1970년대에 발표해서 호되게 고문을 받은 적이 있어. 그래도 나오니까 또 글을 쓰기 시작했어. 그렇게 독한 어른이 동료 문인들 사이에선 꼼짝 못했어. 당시 문인들 사이엔 등단기수라는 게 있었는데, 그는 36세에 등단했거든. 그런데 똑같은 1941년생인 김지하, 이문구, 염무웅(평론), 이성부(시인) 등은 모두 10대, 20대에 등단했단 말이야. 술을 마시다 언성이 높아지면 '야, 너 등단 몇 기야?'라는 소리가 나온데. 그러면 그 현기영 선생도 꼼짝 못하는 거야."


수많은 원로작가들의 삶을 드나들었다면 깜짝 놀랄 만한 비화도 많았을 터. 살짝 들려달라고 하자 홍 작가는 "그런 이야기는 쓰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어 "작가와 연예인은 달라야 한다"면서 "내가 그런 비화를 털어놓으면 연예인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정색했다. 이어 홍 작가 스스로 작가들이 그렇게 관심 받는 게 싫다고 털어놓았다.

책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홍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거침없고, 숨길 줄 모르는 성정답게 털어놓는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 유학파 출신. 당시 엄청난 엘리트였다. 하지만 집안일엔 소홀했다.

자유분방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무척 엄격하고 완고했다.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한자와 예절을 가르쳤으며, 종손이 지녀야 할 덕목을 일깨웠다. 겸상조차 하지 않던 아버지가 홍 작가에겐 무척 어려운 존재였다.

감정 내색을 거의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셨을 때가 중·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을 때. 홍 작가는 "백일장 당선을 아마 옛날 과거 급제와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렇다면 시를 쓰고 글을 쓰는 데는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홍 작가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홍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 품고 있는 경외심에 비춰볼 때 책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단한 명문은 아니지만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준 아버지. 오늘 내가 겪는 모든 영욕은 그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조정래를 존경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조경국
홍 작가가 인터뷰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요즘 문학과 작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면 대답은 거의 정해져있다. "싫다. 너무 가볍다." 원래 질문엔 기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법이다.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맞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 동의를 구하고 싶은 거지. 너무 가벼워. 내가 조정래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가 그래서야. 누구나 알고 있다면서 지나치는 이야기를 그 선생은 아주 정색하고 이야기해. 요즘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단어를 누가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겠어."

홍 작가가 요즘 문학 풍토를 못마땅해 하는 이유는 스승으로 모신 고 조태일이 남긴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시인은 추락하는 것들의 절망과 슬픔만을 노래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란 전망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우리나라 작가 27명을 인터뷰했다. 수많은 작가군에 비춰보면 무척 적은 숫자다. 그도 만나고 싶은 작가가 여럿이라고 말했다. 그 중 가장 만나고 싶은 한 명을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통역을 붙여준다는 조건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인터뷰하고 싶어. 하루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작가거든. 그 열광의 이유를 알고 싶어."

이 질문 이후 "작가로서 지닌 포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매번 시원시원하게 답을 꺼내던 그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책 많이 팔고 싶은 욕심은 없고…"라고 운을 떼는가 싶더니, "모르겠다, 에이, 쪽팔리니까 작가라는 명칭 붙이지 마라, 부끄러워"라고 말하면서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난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못 다한 이야기 몇 가지

인터뷰 준비 : 그는 인터뷰 준비를 꽤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그 작가가 낸 책을 거의 다 읽고 인터뷰에 들어간다. 김지우 작가를 만날 땐 이틀 동안 그녀의 단편 모두를 읽었고, 권지예 작가를 만날 때는 따로 이메일로 원고를 받아 5편의 신작을 몰아서 읽었다.

가장 호응이 좋았던 인터뷰 : 인터뷰 중에서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은 김성동편이다. 이 인터뷰를 보고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문화출판계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 그는 '뛰어난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와 같은 명예엔 관심이 없다. 대신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배우고 싶은 문학기자 : 그는 딱 한 사람을 지목했다. <세계일보>의 조용호 기자라고.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사람의 '물기 어린' 문장이 좋단다. / 김대홍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홍성식 지음, 당그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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