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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국 문학을 인터뷰하다>
책 <한국 문학을 인터뷰하다> ⓒ 당그래
나는 가끔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책들을 읽는다. < CEO, 책에서 길을 찾다 >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나 지승호의 인터뷰를 엮은 책들은 참 재미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한 권의 책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문학을 인터뷰 하다>도 그런 점에서 내 구미에 맞는 책이다. 27명이나 되는 다양한 작가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사생활과 문학 세계를 낱낱이 파헤쳤으니 한꺼번에 많은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단, 사전에 그들의 작품 한 편 정도는 읽어보던가 아니면 요새 문학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 두어야 한다.

최근 정치적 색깔을 띠면서 작품의 전환기를 맞이한 황석영의 인터뷰는 그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긴 망명과 수감 생활 이후 더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이지만 글의 색채가 달라진 황석영. 그는 감옥 생활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사회봉사를 한다', '내공을 기른다'는 농담으로 괴로움을 견뎠다고 한다. 인터뷰어인 홍성식 기자가 마지막으로 젊은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인터넷은 위력이 있지만 호미나 삽처럼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도구를 올바로 쓰려면 언제나 그렇듯이 인성이 올바르게 서야 한다. 책도 많이 읽어서 내용을 충실히 갖추기를 바란다. 우리는 옛적부터 '젊음'의 나라였고 '백성이 하늘'인 나라였다. 지금 시대 정신이 있다면 사회와 역사를 바꾸겠다는 '젊은 여론'의 형성이다. 원칙과 대중 노선이 잘 배합되어야 하며 개인과 전체가 물이 스며들듯이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도 그들과 언제나 함께 하고자 노력하겠다." – 38쪽

문학 많이 접해본 이들이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 '가득'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황석영, 김별아처럼 유명한 작가들도 있지만 시인 강태열처럼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제 시집 한 권 갖지 못하다가 고희를 목전에 두고 두 권의 시집을 내는 이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무명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시는 우주와 세계를 노래하고 꿈을 꾸듯 흘러가는 세월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BRI@이 책에는 홍세화씨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서 호되게 비판한 신경림 시인의 인터뷰도 있다. 신경림 시인은 <조선일보>와 같은 매체에 글을 쓰는 것은 왜곡된 세상에 동조하는 행동이라는 홍세화씨의 비판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시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아름다운 세상의 건설'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이어서 이 세상의 더러운 구석을 제대로 못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순이 삼촌>과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유명한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씨는 젊은 작가들에게 냉정한 시각으로 비판을 던진다. 신경숙에 대해서는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감수성에 지혜가 더해지길 바란다', 윤대녕은 '심미주의자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미지의 연결에 집착하여 작위적으로 보인다', 성석제는 '능수능란한 해학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의미 추구가 약하다' 등 이들의 문학을 많이 접해본 이라면 공감할 내용이 많다.

해학과 풍자의 문체로 이름을 날리는 소설가 성석제의 인터뷰도 재미있다. 그는 자신 특유의 재치 있는 말투로 시종일관 인터뷰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뭐냐는 질문에 "심심해서. 날 덥고 심심해서"라는 대답을 던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재미는 있으나, 재미밖에 없다'고 평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하는 작가. 역시 성석제다운 인터뷰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으로 저자의 문학세계에 다가가는 '독자'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대학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쇳물처럼> <철강 지대> 등과 같은 노동운동 이야기를 쓴 정화진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4년에도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 책을 돌려가며 읽도록 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이 책의 영향력이야말로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들을 쓴 정화진은 현재 절필 중이고 인천에서 500원짜리 액세서리를 파는 장사꾼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는 독특하게도 잘 나가는 소설가였다가 직장인을 거쳐 액세서리 장사꾼이 된 그를 주목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멀쩡하던 직장 생활을 접고 다시 소설을 쓰기 위해 장사꾼이 되었기 때문.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노동운동을 위해 주물 공장의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직접 체험한 일들을 소재로 쓴 소설 <쇳물처럼>. 이 소설이 나오게 된 데에는 박종철의 고문치사 소식이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노동자의 처절한 삶을 그리게 되었다는 그. 정화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토대로 하여 밑바닥 인생을 그린 소설이 제대로 한번 나왔으면 싶다.

책을 읽다 보니 이 많은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저자가 참 부럽다. 평소 쉽게 작가들을 만날 수 없는 독자들은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의 문학 세계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무리 작가와 작품이 별개라고 하지만 작품은 곧 작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들의 생활과 생각을 보다 더 알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홍성식 지음, 당그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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