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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허 고성 입구. 과거나 현재나 이곳만이 뭍과 성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때문에 자오허 고성 방어 병력과 시설의 8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자오허 고성 입구. 과거나 현재나 이곳만이 뭍과 성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때문에 자오허 고성 방어 병력과 시설의 8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 오창학
시내를 나섰나 싶은데 벌써 자오허 고성(交河故城)이다. 글자 그대로 하천이 마주치는 곳에 세워진 성인데, 동·서·남쪽은 약 30m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그 밑에는 하천이 흐르는 구조이니 성이라기 보단 섬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동물과 다른 부족의 습격을 피해 살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이지만 한 대(漢代), 차사국(車師國)의 도읍지가 되며 성이 축조되었을 것이다.

가오창 고성과 비교해 독특한 건 건축물 조성방식이다. 가오창 고성처럼 흙벽돌을 쌓아 이룬 것이 아니라 흙을 파내려가 만든 것이다. 한 마디로 도장을 새기 듯 거주구를 양각으로 새기고 불필요 부분을 음각으로 파내 형성한 곳이 여기 자오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주택가, 시장, 절, 관청, 감옥 등의 터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이런 파내려가기식 건축법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가오창 고성과는 달리 사람이 쉬 접근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를 갖고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버들잎 모양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척의 항공모함을 떠올리게 하는 자오허 고성의 자태. 박물관에 전시된 항공사진을 다시 찍었다
버들잎 모양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척의 항공모함을 떠올리게 하는 자오허 고성의 자태. 박물관에 전시된 항공사진을 다시 찍었다 ⓒ 오창학
두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섬처럼 우뚝 선 성의 형세를 대개 버들잎 모양에 빗대나 내 눈엔 노아의 방주나 거대한 군함인양 느껴진다. 박재동 화백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은연 중 항공모함을 떠올리게 되는 건 그 기능과 외형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길이 340m, 배수량 10만 톤, 승무원 5700명의 항모와 남북의 길이 1600m, 동서 폭 330m. 거주인구 6000명이라는 자오허 고성의 제원이 갖는 유사성까지.

입구는 단 한 곳. 배로 치면 우현 닻 내리는 구멍쯤에 해당하는 곳이 당시의 출입구로(물론 지금도 이곳이 출입구지만) 병력과 수비 시설의 80%가 몰려 있는 곳이었다. 동문, 서문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양 편의 강에 물 뜨러 내려가는 공간이지 뭍과 연결된 통로는 아니었으니까.

한 무제 때 48년간 혈전을 벌이며 버틴 난공불낙의 천혜지라는 게 믿겨진다. 비록 13세기 원나라의 공격으로 처절한 파괴를 겪었지만 그 당시는 이미 이주화가 시작되어 성 내엔 사람이 얼마 살지 않았다. 그러니 구석기 이래로의 불침전함을 가라앉힌 건 원나라의 무력이라 해야 하나, 세월의 힘이었다 해야 하나?

지금도 그 흔적이 역력한 자오허 고성의 지하 건축물들. 관청이나 금고, 숙직실, 비밀통로 등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수많은 구조물들이 남아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역력한 자오허 고성의 지하 건축물들. 관청이나 금고, 숙직실, 비밀통로 등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수많은 구조물들이 남아있다 ⓒ 오창학
복원의 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에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비교적 완성된 형태로 남아있다. 독특한 공간에 세 겹의 문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아 혹 금고나 귀중품을 두는 창고 역할을 하는 곳도 있고 관공서의 숙직실과 채광창, 서신을 주고받던 창문까지도 남아 있다.

너무도 놀라운 건 벽 사이에 뚫린 굴이 고창고성으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라는데 과연 믿어도 될까 싶다. 설마 그 시대에… 여기서 거기가 어디라고….

자오허 고성에는 아이들의 떼무덤 유적이 있다. 마치 제주 북촌의 아기 무덤처럼......
자오허 고성에는 아이들의 떼무덤 유적이 있다. 마치 제주 북촌의 아기 무덤처럼...... ⓒ 오창학
자오허 고성과 제주의 아이 떼무덤

200여명의 아이가 묻혀있는 떼무덤이 있다. 연유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이 있을 뿐인데,

1.당나라와 전쟁 때 후손들이 노예의 삶을 사는 걸 막기 위해 모두 묻었다.
2.전염병이 돌았다.
3.북쪽 대사원을 향해 누워있음으로 볼 때 통치자의 제례의식을 위한 희생양이었다.
4.뒤의 무덤이 어른들의 무덤인 것으로 보아 여긴 아이들의 공동묘지였다.

등이 자오허 고성 안내원이 제시한 설이다. 이 중 4번의 추측이 개연성 있고 가장 평안하지만 한 구덩이 안에 20여 명의 아이가 함께 묻힌 사실은 설명하지 못한다.

이 떼무덤 앞에서 제주도 대정 근처의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와 북제주 북촌 마을의 옴팡밭 옆 아기무덤을 떠올리고 만다. 여긴 머나먼 서역의 땅이라고, 지금으로부터도 아마득한 먼 과거의 영역이라고 도리질 해보지만 어느 곳에 있든 언제를 살든 한국인은 한반도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모양인가 보다.

자오허 고성
자오허 고성 ⓒ 오창학
1991년, 막 스무 살이 되던 해 배낭을 메고 물어물어 찾았던 그 곳. 4·3의 얼룩과 분단의 비극이 만들어 놓은 백 몇 십 개 봉분으로 아롱져 있었던 백조일손지지와 4·3의 문제를 정면으로 그려내 한국문학사에 획을 그었던 현기영 <순이삼촌>의 배경지인 북촌.

북촌의 400여 명이 넘는 마을 희생자들 중 어린 아이는 따로 학교 동편 언덕에 묻혔다. 아기의 혼백은 저승으로 가지 않고 까마귀가 가져간다하여 따로 무덤을 만들지 않는 제주의 풍습 때문이었다.

자오허 고성의 아기 떼무덤은 어쩜 그리도 그곳과 닮아 있을까. 그냥 이곳은 공동묘지였기를, 단지 천수를 누리지 못한 어린 영혼이 묻히는 안식처였기를…. 우리처럼 아픈 기억을 가진 슬픔의 장소가 아니기를.

폐허가 주는 무궁한 상상력이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저 바삭한 흙으로 건조시키려는 태양을 핑계로 아기 떼무덤의 상념을 접고 허위허위 자오허 고성을 나선다.

투루판의 여인들
투루판의 여인들 ⓒ 오창학
투루판이 더위로 악명을 떨치는 연유는 이곳이 중국에서 표고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투루판 면적의 대다수가 해수면보다 낮기 때문. 그 낮은 부위 중에서도 바닥에 해당하는 아이딩호(艾丁湖)는 해수면보다 154m가 낮은데 이스라엘 사해의 -392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다. 투루판에 왔으니 이 역사적인 지점이나 한 번 밟아보고 싶다.

자오하 고성에서 20Km를 이동해 아이딩호 인근의 마을에서 철봉씨가 길을 묻는다. '아이딩호'라는 말에 질문의 의도는 알아 답변해 주는데 위구르어다. 내용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그의 손가락을 통해 진행 방향만 눈치챌 뿐이다.

"이젠 철봉씨가 유명무실이네. 각자 갈 길 가죠."

아내가 농담을 던진다. 조선족 안내원 철봉씨의 통역이 전혀 먹히지 않는 지대에 들어선 것임을 실감한다. 이곳이 중국령 동투루키스탄이다.

-154m를 찾아서, 아이딩호 가는 길

아이딩호로 들어가는 끝없는 외길
아이딩호로 들어가는 끝없는 외길 ⓒ 오창학
이렇게 손가락질 답변을 따라 움직이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아이딩호를 향한 외길 비포장 도로를 발견했다. 먼지가 눈처럼 쌓인 길을 가르며 들어가니 GPS의 고도계가 조금씩 낮아진다.

-136m. 더 가면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도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길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여기가 -154m의 정점은 아닐까? GPS의 오차 범위 내에서 이 정도 차이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 만치 산맥이 보이는 지점에서 진입을 멈췄다. 굳이 끝을 봐야겠다는 욕심 같은 것은 없다. 이제 말라버린 물이 주는 환상만 있으면 된다. '아이딩'은 위구르어로 '달빛'이란 소리니 내가 찾는 호수는 실은 '달빛 호수'가 되겠다만 이제 달빛 같은, 혹은 달빛을 튕겨낼 물을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저 이 푸석푸석하고 단단한 지표를 호수의 꿈이라 이를 수밖에.

-136m지점에 멈춰 선 백구. -154m 지점이 있기는 한 것일까? ‘달빛 호수’라는 아이딩호 대신 푸석하고 단단해진 모래의 바다만 감상하다 나왔다
-136m지점에 멈춰 선 백구. -154m 지점이 있기는 한 것일까? ‘달빛 호수’라는 아이딩호 대신 푸석하고 단단해진 모래의 바다만 감상하다 나왔다 ⓒ 오창학
나오면서 길 옆의 버려진 마을지대에 들어가 보았다. 글이나 물품으로 볼 때 불과 십 년 안쪽에 마을이 빈 것 같은데 언뜻 보기에 수백 년 유적지 같은 인상이다. 이곳의 흙을 말려 만든 벽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빛을 띤다.

다시 2호차의 수난

이제 막 투루판을 향해 들어오려는 찰라 2호차의 에릭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리된 2호차를 몰고 오다 하미 출발 110Km 지점에서 차가 퍼졌는데 이젠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다 한다. 철봉씨에게 우루무치에 쌍용차나 벤츠 엔진을 수리할 수 있는 업체가 있는지 알아보라 했지만 전혀 정보를 얻을 수 없다.

투루판 동북쪽 골짜기에 수로를 따라 200종의 포도가 심겨졌다는 포도구(葡萄溝)로 가려는 계획을 접었다. 이 상황에 포도 뜯으며 춤추는 무희나 구경할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은 남는데 10년 전에 다녀오신 바 있는 교수님께서 위무의 말을 남기신다.

"포도구 가봐야 악사나 몇 있고 맨 포도나 팔려 하지 별 거 없더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아마 그럴거야"라며 머리를 주억거린다. 그야말로 '여우의 신포도'다. 일단 숙소로 긴급히 돌아와 대책을 세운다. 쌍용차 해외지사 현황과 정비 지점망을 확보한 후 떠났어야 했는데 내 불찰이다. 동부 중심지가 아니라 주로 서부 오지 쪽으로 움직이는 지라 정비망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 했다.

한국의 쌍용 본사에 연락을 하니 이번 주가 전체 휴가 기간이어서 해외 담당자와 통화할 수가 없다. 재수 없는 과부는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 곁에 눕는다더니….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어 당직자의 성의 있는 응대로 쌍용 상하이 지사의 김기용 부장님 번호를 알아냈다.

이 분 역시 자기 일처럼 신경을 써 주신다. 무쏘가 중국에 흔한 차종이 아니어서 부품공급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하미'에 있는 지정 정비업체에 미리 통보를 해 조치하겠다 한다.

2호차에 그대로 말을 전했다. 그렇지만 지정 정비업체로 들어가기 전 원래 수리를 담당했던 하미의 정비소에서 이 문제를 책임진다니 그곳으로 차를 보내고 2호차 팀원들은 다른 방편으로 투루판을 향해 떠나겠다 한다.

위구르족 전통 춤. 감동보다는 어째 박제의 냄새가......
위구르족 전통 춤. 감동보다는 어째 박제의 냄새가...... ⓒ 오창학
일이 일단락되니 속이 약간이나마 풀리나 보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는데 민속춤 공연이 눈에 들어온다. 규모와 의상의 정밀도로 볼 때 약간의 어설픔은 있지만 동작이 격하고 음이 빠르다. 정말일까? 저들은 저토록 정열적인 춤을 추었을까. 남녀의 연정을 형상화한 춤이 많다. 어디까지가 전통춤이고 어디까지가 현대적인 안무인지는 잘 모르겠다.

투루판의 밤, 그리고 해후

투루판의 밤 풍경. 시골스럽고 푸근하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야외 극장이 만들어지고 양외 당구장도 성업이다. 비가 없는 지역이니 가능한 일이다
투루판의 밤 풍경. 시골스럽고 푸근하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야외 극장이 만들어지고 양외 당구장도 성업이다. 비가 없는 지역이니 가능한 일이다 ⓒ 오창학
저녁을 먹고 2호차 일행이 당도할 때까지 투루판의 밤거리를 소요한다. 워낙 더운 지대다 보니 밤 깊은 시간이 놀기에 제격인가 보다. 사람이 많다. 흑백 텔레비전 하나를 놓고 야외영화관이 운영되기도 하고 야외 당구장이 성황이다. 여기만의 특징인지 중국 전체가 그런 것인지 유료로 키 재기를 해 주는 곳이 많다.

23:40분. 초주검이 된 2호차 일행들이 투루판 숙소에 도착했다. 차가 멈춘 후 태양 아래 고생했던 무용담, 암담한 심경과 구난, 자포님이 모친 병환으로 귀국할 뻔 했던 일 그리고 이곳으로의 이동 과정들. 고작 이틀만의 해후임에도 해줄 말도, 들어줄 말도 많은 만남이 됐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날이 밝으면 우린 예정대로 쿠차를 거쳐 카슈가르로 향하고 2호차 일행은 우루무치로 향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차가 빨리 수리되어 카슈가르에서 만날 것이고 늦어질 경우 타클라마칸을 횡단하는 사막공로로 뒤쫓아와 치에모에서 합류하게 되겠지. 만나자마자 이별.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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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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