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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소희

[축제때 찍은 경찰들의 뒷모습]
[축제때 찍은 경찰들의 뒷모습] ⓒ 왕소희
우리는 경찰서 앞마당에 앉아 있었다. 어깨에 총을 멘 경찰은 지니와 내가 앉아있는 의자 앞으로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지마! 그대로 앉아있어!"

호텔이 아닌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우리를 불러들였다. 실은 시내 호텔 사람들의 고자질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호텔에 묵지 않는 것도 오르차의 주요 고객인 한국인들을 움직이는 것도 못마땅했다.

거대한 체격에 카이저수염을 기른 십여 명의 경찰들은 지니와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그리고 돌아서 람과 가네시를 둘러싸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we are…."

람이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들은 멱살을 움켜쥐며 언성을 높였다.

"힌디로 얘기해! 건방진 새끼!"

십여 명의 경찰들은 집단 구타를 하려는 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뭐든 트집을 잡을 게 필요했다.

"stop it!!(그만해)"

지니와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를 겁주는 거죠?! 우리가 뭘 잘못했어요!?"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난 너무 무서워서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너희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경찰이 우리 앞으로 다가와 윽박질렀다. 그리고 힌디로 몇 마디를 내뱉었다. 대번에 그가 욕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 하겠어! 지금 당장!"

지니가 소리를 질렀다. 어깨에 총을 맨 채 흥분한 경찰들이 무섭긴 했지만 우리의 분노도 폭발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 사는 방법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일한 거요! 그리고 아무런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소. 저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대하지 마시요. 적어도 기본 예의는 지켜야하는 거 아닙니까?!"

람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살벌한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비웃었다.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린 관심 없어. 하지만 외국인이 호텔이 아닌 마을에 머무르는 건 불법이야. 오늘 당장 마을에서 나가! 그리고 저녁 7시 이후엔 마을에 있어도 안돼. 우리가 계속 감시할 테니 조심해!"

우리는 경찰서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난 천하장사와 씨름이라도 한 듯 피곤함을 느꼈다. 마을사람들과 우리는 몇 번이나 그 악명 높은 인도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의논을 했지만 역시 방법은 없었다. 경찰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돈이었고 돈을 준다고 해도 끝이 없었으며 마을에서 너무 너무 멀리 떨어진 대사관은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린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오르차 시내의 밤 풍경]
[오르차 시내의 밤 풍경] ⓒ 왕소희
밤 7시. 시간은 벌써 늦어 우린 당장 그날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오르차의 모든 호텔을 뒤진 람 덕분에 우린 방 하나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성수기여서 모든 호텔이 만원이었다. 그나마 그 방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한 겨울인데도 무슨 배짱인지 창문이 뻥 뚫려 있었으니까.

거대한 창틀만 남은 오싹한 방으로 지니와 나를 들여보낸 뒤 람과 가네시는 마을을 향해 어두운 오솔길로 사라졌다. 추운 겨울 긴 어둠을 지나 마을로 돌아갈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 근처 깔라푸나네 집에 들러 이불을 빌려온 것이다.

"이거 덮고 자. 내일 다시 호텔을 구해보자."

이불을 끌어안고 나무로 된 문을 밀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니와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정전이 되었다.

"언니."

지니가 나를 불렀다. 지니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언니라고 부른 적도 존댓말을 쓴 적도 없었다. 우리는 늘 친구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그날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함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나도 어둠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언니 혼자였거나 나 혼자였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야…."
"……."

그리고 어둠 속에 침대를 더듬거리며 찾아가 빌려온 이불을 뒤집어썼다.

"당신은…."
"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사랑 받고 있지요!"

우리 입에선 저절로 이 노래가 나왔다. 이런 노래라도 불러야 밤의 정적을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겨울 바람을 피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하하하"

언젠가 이 날을 생각하면 이 노래가 떠오를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바로 자자고 했지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오르차 시내에 위치한 쉬시마할]
[오르차 시내에 위치한 쉬시마할] ⓒ 왕소희
다음날부터 오르차에서 골랄끼또리아 언덕으로 출근을 했다. 새벽에 언덕에 올라갔다가 밤 7시 직전에 마을을 빠져나왔다.

언덕일은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정부에서 음악 쇼를 위한 허가서를 얻고 가능하다면 언덕을 정부로부터 기증받아 그곳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마을사람들의 꿈이었다. 우린 서서히 진짜로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 왕소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행복 닷컴, maywang.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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