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열린우리당의 이광재 의원이 그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정배 의원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창당 주역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먼저 탈당하는 건 인간적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하릴없는 소리다. 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생산성은 없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천 의원이 인정했다. "면목없다"고 했다. 이 의원이 쏟아낸 말과 같은 비난을 달게 받겠다는 뜻이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했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게 사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민생개혁세력을 결집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책임지는 자세라고 했다.

천 의원이 이렇게 나오면 말을 바꿔야한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할 게 아니다. "그러면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답부터 말하자. 천 의원이 내놓는 처방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없다.

천 의원이 말했다. "각계각층의 뜻있는 인사들과 협력해 미래 비전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 뜻을 모아 나가겠다"고 했다. 원칙과 철학이 있는 대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다.

이 정도의 처방전이라면 그가 버린 열린우리당도 이미 내놨다. 당의 이름으로 미래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선언한 지 오래 됐다.

차이가 있다면 통합의 주체를 미래평화개혁세력과 민생개혁세력으로 달리 부른다는 정도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이마와 마빡의 차이만큼이나 적다.

의아한 게 있다. 천 의원은 탈당의 주된 사유로 사수파의 발목잡기를 들었다. 바로 이 요인이 "민생개혁세력 전진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그런데 탈당 기자회견에선 "어느 위치에 있든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국민 상당수가 참여정부의 민생 책임을 거론하는 마당에 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친노직계그룹인 사수파를 걸림돌로 지목했다.

앞 뒤 안맞는 '탈당의 변'

앞뒤 정렬이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올드 앤 뉴'를 가르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살 수 있느냐"고 거듭해서 물어도 답은 같다. 갑갑하다.

다른 게 하나 있긴 하다. '살아야 하는' 주체를 민생개혁세력이 아니라 천 의원 본인으로 설정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천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당에 잔류하느냐 탈당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천 의원이 당에 잔류할 경우 그는 '원 오브 뎀', 그것도 후발주자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여기에 사수파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 의원이 마이크를 들어봤자 '변방에 우짖는 새'가 되기 십상이다.

탈당을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탈당을 하면 통합을 선창할 수 있다. 선창할 뿐만 아니라 먼저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이외의 통합세력, 즉 민주당이나 외부세력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통합의 가교 또는 구심으로 설 수 있다.

열린우리당에 머물면 후발주자를 벗어나기 힘들지만 탈당을 하면 통합의 선발주자가 될 수 있다. '급'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비단길은 아니다. 민주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계개편을 주도해서는 안 될 인물로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 외에 천 의원을 꼽았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실패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다. 내딛는 앞길에 진달래꽃이 아니라 재가 벌써 뿌려진 셈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민주당은 구심을 잃었다. 한화갑 대표가 무대 뒤로 사라졌고, 고건 전 총리마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작용할 여지가 큰 곳이 민주당이다. 이 점만 잘 활용하면 전체를 껴안지는 못하더라도 부분을 취할 수는 있다.

어찌보면 전체를 껴안는 게 부담일 수도 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지역주의'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과유불급을 경계하는 게 낫다. 그러려면 정치권 밖 외부세력을 함께 아우르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절실하다. 그래야만 지역과 이념을 두루 모으는 리더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낚싯대 버리고 그물 친 천정배

잘 볼 필요가 있다. 천 의원의 탈당을 전하는 오늘자 신문 보도가 갈린다. 천 의원이 호남 맹주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진단한 신문이 있는가 하면, 그가 개혁신당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한 신문도 있다.

보도가 이렇게 엇갈리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볼 수 있다. 사실과 허위가 엇갈리는 게 아니라 부분의 진실을 담은 보도가 공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 의원은 낚시질이 아니라 그물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품은 많이 들지만 소득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최선의 가정이다.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소득에 비해 비용만 많이 들이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배신'이란 구멍으로 그물 안 물고기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려면 통합의 축과 경로를 미세조정해야 한다. 천 의원이 혈혈단신으로 깃발을 꽂는다고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게 아니다. 주도세력을 구축하고 여기에 다른 세력을 덧대는 경로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통합의 축과 경로는 무엇인가? 천 의원이 반드시 답해야 하는 사항이다. 대답 시점이 그리 먼 것 같지도 않다. 당장 내일, 열린우리당 내 호남지역 출신 의원들의 좌장이라는 염동연 의원이 탈당할 예정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천 의원은 그와 어깨동무할 것인가, 아니면 거리를 둘 것인가?

태그:#천정배 탈당, #탈당, #사수파, #천정배, #민생개혁세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