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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식 '홍탁삼합' 드세요.
ⓒ 이종찬
이른 봄
뒷마당 텃밭에 묻은 장독 속 포옥 익은 묵은지 꺼내
볏짚 태운 잿더미 속 포옥 삭은 홍어 한 점 올리고
타닥타닥 장작불에 포옥 삶은 돼지고기 한 점 겹쳐
볼 터지게 한 입 가득 넣으면
어느새 콧구멍에 싸한 꽃샘바람 이누나

눈물 핑 도는 모진 겨우살이 서러워
누룩 내음 훅 풍기는 막걸리 한사발 쭈욱 들이키면
어느새 온몸에 새 기운이 펄펄 살아뛰누나
혓바닥 톡톡 쏘며 찰떡처럼 쫄깃하게 감기는 너
보고 또 보아도 보고픈 지독한 그리움처럼
먹고 또 먹어도 먹고픈 지독한 맛사랑

누가 너더러 홍어 거시기라 했는가
너는 홍어 거시기라도 되어 보았느냐

- 이소리, '홍탁삼합' 모두


▲ 금빛 모래가 깔린 아름다운 낙동강.
ⓒ 이종찬
▲ 엄마야 누나야! 겨울강변 바라보며 '홍탁삼합' 먹자.
ⓒ 이종찬
그곳에 가면 맛이 보인다

시인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시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금빛 모래밭이 펼쳐진 낙동강. 낙동강 옛 본포 나루터(경남 창원시 동읍)가 있었던 강기슭에서 은빛 투명한 빙어떼처럼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저만치 옛 임해진 나루터(경남 창녕군 부곡면 청암리)가 있었던 갈대밭이 보인다.

@BRI@그 갈대밭 끝자락 언덕 위를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자락 곳곳에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언뜻 보기에도 이 집들은 낙동강에서 잡히는 싱싱한 물고기를 잘게 썰어 파는 횟집들임이 분명하다. 근데, 막상 이 횟집 안으로 들어서면 수족관 안에는 낙동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잘 보이지 않고 싱싱한 바다 물고기들만 잔뜩 헤엄치고 있다.

게다가 차림표에도 민물고기 조리는 몇 없고, 홍탁삼합. 그리고 참돔 광어 도다리 등 바닷고기 모듬회, 대구탕, 가오리찜, 아귀찜 등 온통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 조리가 대부분이다. 이곳을 으레 송어회나 향어회, 빙어회, 민물 메기탕 등이 차림표를 채우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처음 찾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이곳 지리적 조건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곳은 바다와 맞닿은 낙동강 끝자락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부산의 바다가 있다. 게다가 요즈음처럼 겨울철에는 낙동강이 꽁꽁 얼어붙기 때문에 민물고기를 쉬이 잡을 수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이곳의 횟집에서는 민물고기와 바닷고기를 계절에 따라 조리할 수밖에 없다.

▲ 살짝 구운 김에 산돼지고기와 함께 싸먹는 홍탁삼합.
ⓒ 이종찬
▲ 경상도식 홍탁삼합은 홍어를 살찍 삭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 이종찬
홍어는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가 제철

홍어,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전라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제 전라도 서남해안에서 잘 잡히는 홍어도 전라도 고유의 음식이란 굴레를 훌훌 벗어던진 듯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서울뿐만 아니라 경상도 곳곳에서도 코끝을 톡 쏘는, 쫄깃하면서도 독특한 맛의 홍어를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의 바닷물고기다. 몸길이가 약 150㎝인 홍어는 <본초강목>에 '태양어(邰陽魚)'라 적혀 있고,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魚)', 생식이 괴이하다 하여 '해음어(海淫魚)'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자산어보>에는 '분어(鱝魚)' 혹은 홍어(洪魚, 속명)라 적어 놓았다.

홍어의 몸은 마름모꼴이며, 머리는 작고 주둥이는 짧게 튀어나와 있다. 홍어의 등은 갈색이며, 곳곳에 황색의 둥근 점이 흩어져 있고, 아랫배는 희다. 홍어의 수컷은 꼬리 등 쪽 가운데 날카로운 가시가 1줄로 나 있고, 배지느러미 뒤에 대롱 모양의 생식기 2개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홍어의 암컷은 꼬리 등 쪽 가운데 3줄의 가시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홍어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 번에 4∼5개의 단단한 껍질에 싸여 있는 알을 낳는다. 홍어의 수명은 5∼6년이며, 먹이로는 오징어류와 새우류, 게류, 갯가재류 등이다. 홍어가 가장 맛이 좋은 때는 산란기인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다. 이때가 되면 전라도에서는 보리싹과 홍어 내장을 넣어 '홍어 앳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 전라도에서 잔치상에 오르지 않으면 잔치상을 망쳤다고까지 하는 홍어.
ⓒ 이종찬
▲ 포옥 삭힌 홍어는 강알카리성 식품이어서 산성 체질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꿔주기까지 한다.
ⓒ 이종찬
'홍탁삼합(洪濁三合)'의 뿌리는?

전라도에서 잔치상에 오르지 않으면 잔치상을 망쳤다고까지 하는 홍어.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찜 등으로 인기가 높은 홍어. 근데, 묵은지에 폭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를 얹어 막걸리와 함께 먹는 '홍탁삼합(洪濁三合)'의 뿌리는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안내자료에 따르면, 옛 전라도 사람들은 목포에서 홍어가 잘 잡히는 흑산도를 향해 떠날 때 고깃배에 막걸리와 묵은 김치를 실었다. 고된 뱃일을 하다가 지치거나 배가 고플 때마다 막걸리와 묵은 김치를 참으로 삼아 먹었던 것. 하지만 가끔 태풍이 불거나 바람이 심해지면 흑산도 어느 항구에 닻을 내려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며칠 동안 바다에서 잡아올린 흑산도 홍어는 절로 삭혀졌고, 뱃사람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흑산도에서 돼지고기를 사서 푹 삶았다. 그리고 뱃머리 위에 묵은 김치와 포옥 삭은 홍어까지 썰어 한 상 차려놓으니 막걸리 한 잔 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더불어 포옥 삭은 홍어의 톡 쏘는 독특한 맛까지 있었으니, 이 어찌 소문이 나지 않으랴.

특히 포옥 삭힌 홍어는 강알카리성 식품이어서 산성 체질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꿔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삭힌 홍어는 위산을 중화시켜 위염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자주 조리해 먹으면 관절염과 신경통, 여성들의 다이어트, 골다공증, 산후조리에까지 더없이 좋다 하니 홍어의 효능을 더 말을 해서 무엇하랴.

▲ 이곳의 홍어는 살짝 숙성시켜 쏘는 맛이 은은하면서도 꼬들꼬들한 감칠맛이 난다.
ⓒ 이종찬
▲ 씹을 때마다 약하게 톡톡 쏘는 꼬들꼬들한 홍어의 독특한 향기... 쫄깃쫄깃 혀끝에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산돼지고기... 살짝 구운 김의 고소한 맛... 아삭아삭 씹히는 묵은지의 기막힌 맛...
ⓒ 이종찬
경상도식 홍탁삼합 드셔보셨나요?

요즈음 경남 창녕 옛 임해진 나루터가 있었던 낙동강 기슭에 마치 다슬기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횟집에 가면 볏짚을 태운 잿더미에 파묻어 적당히 삭인 홍어가 사람들의 발길을 한껏 끌어당기고 있다. 특히 이곳 횟집에서 차려내는 경상도식 홍탁삼합은 먹는 방법과 그 맛이 조금 독특하다.

이곳 횟집의 홍탁삼합은 살짝 구운 김 위에 살짝 삭힌 홍어와 삶은 산돼지고기, 묵은지를 함께 싸서 막걸리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삭힌 홍어 또한 전라도처럼 콧구멍을 톡 쏘면서 눈물까지 절로 찔끔 나게 하는 그런 진한 맛이 아니다. 이곳의 홍어는 살짝 숙성시켜 쏘는 맛이 은은하면서도 꼬들꼬들한 감칠맛이 난다.

지난 11일(목) 저녁 5시께. 여행작가 김정수와 함께 맛본 이곳의 홍어는 말 그대로 경상도식으로 새롭게 태어난 부드러운 홍탁삼합이다. 특히 살짝 구운 김 위에 산돼지고기와 살짝 삭힌 홍어, 뒤뜰에 파묻은 장독 속에서 갓 꺼낸 묵은지를 올려 허연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먹는 그 맛은 별미 중의 별미다.

씹을 때마다 약하게 톡톡 쏘는 꼬들꼬들한 홍어의 독특한 향기…. 쫄깃쫄깃 혀끝에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산돼지고기…. 살짝 구운 김의 고소한 맛…. 아삭아삭 씹히는 묵은지의 기막힌 맛…. 그리고 달착자근하게 넘어가는 막걸리 한사발….

▲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식 홍탁삼합도 맛보고, 낙동강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겨울풍경에도 젖어보자.
ⓒ 이종찬
먹고 또 먹어도 자꾸만 먹고 싶은 경상도식 홍탁삼합의 이 독특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게다가 막 지는 겨울해가 낙동강의 금빛 고운 모래와 푸른 강물을 붉게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석양빛 하늘에 V자를 그리며 떼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때까지 덤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신선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그래. 돼지띠인 정해년 새해 들어 세 번째 맞이하는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식 홍탁삼합도 맛보고, 낙동강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겨울풍경에도 젖어보자. 산돼지고기 한 점, 홍어 한 점, 묵은지 한 점, 김 위에 싸서 막걸리와 함께 먹다 보면 몸 속에 재물이 절로 굴러들어오는 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미디어 다음>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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