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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책방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는 부제가 붙은 시선집을 신경림 시인이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한권의 책으로 묶어 펴냈다.

정희성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에서부터 천상병의 '귀천',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 시인이 가려 뽑은 50편의 시들은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데 모은 것으로 시와 시 해설, 그리고 그림까지 어우러져 있어 간직하거나 선물하기에도 기분 좋은 시집이 될 것 같다.

책을 열자 내가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문정희 <겨울사랑> 중)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하얗게 뛴다. 천년백설에 눕고 싶어진다. '그 여자네집'(김용택)을 읽으면 옛날 그 아련한 기억 속의 까까머리 소년과 그 아이네 집 돌담과 가곡 '그 집 앞'이 떠오른다.

@BRI@'슬픈 사람들끼리'(이용악) 중에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끼리" 대목에선 이별은 더디고 더디게 사라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를 보라. 언어의 생명력, 언어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한다. 마치 우리 인생의 함정을 그대로 드러낸 듯하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시선집 <처음처럼>을 엮어 펴낸 신경림 시인의 말대로 시로는 돈도 벌지 못하고, 쌀을 생산하지도 못하고, 자동차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돈 벌고 쌀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정서를 풍부하게 만든다.

영상와 인터넷 등의 보편화로 시심을 잃어가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자꾸만 잊혀져가는 좋은 시들을 한데 엮어서 소개하는 것은 소중한 일일 것이다. 우리 시를 좀 더 널리 읽히는 것을 목표로 해서 편집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경림 시인은 요즘 시를 쓰시나요? 아니, '어떤 시를 잉태하고 있나요?' 문득 묻고 싶어진다.

아~겨울바다가 눈앞에 펼쳐 보일듯 한 시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호승 시인의 '문득'이란 시를 소개한다. 바다가 눈앞에 보이나요?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다산책방(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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