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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에서 하룻밤 묵은 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동해역에 도착했다(삼척항 포기).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역이다. 산간에는 눈이 내린 모양인데 해안 쪽은 꾸물거리는 정도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오늘은 여기서부터 기억을 좇아 천곡동굴과 묵호항, 그리고 망상해수욕장까지 걸어볼 요량이다.
죽변항에서 하룻밤 묵은 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동해역에 도착했다(삼척항 포기).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역이다. 산간에는 눈이 내린 모양인데 해안 쪽은 꾸물거리는 정도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오늘은 여기서부터 기억을 좇아 천곡동굴과 묵호항, 그리고 망상해수욕장까지 걸어볼 요량이다. ⓒ 이동환
묵호항 가는 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아니라, ‘기찻길 옆 바다’다. 끝 간 데 없는 철로와 바다가 묘한 어울림으로 나그네 휑한 가슴을 꿴다.
묵호항 가는 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아니라, ‘기찻길 옆 바다’다. 끝 간 데 없는 철로와 바다가 묘한 어울림으로 나그네 휑한 가슴을 꿴다. ⓒ 이동환

@BRI@결혼이라는 게 아무래도 21세기에는 푸대접거리가 될 모양이다. 요즈막엔 특히 네덜란드식이네, 프랑스식이네, 하며 싱글의 자유, 싱글의 멋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보니 결혼을 무슨 무덤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것도 참 좋지. 그러나 평생 젊지 못 할 바에야 늙어서는 어쩌랴? 평균수명이 늘어나 인생 반을 쭈그렁 방자로 살아야 하는데…, 검버섯 핀 얼굴에 새로운 사랑을 꿈꾸랴? 이성을 홀리는 매력 따위 남아 있을까?

내가 혼자 여행한다니까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이참에 원 없이 일회용 바람피우려고? 숨겨 놓은 여자 있지? 오죽하면 오늘 절친한 후배가 전화를 해와 대뜸 이런다.

"형! 이참(아무도 모르는데)에 바람 좀 피우시지?"

물론 농담이다. 그는 존경할 만큼 가정에 충실한 남자다. 세태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농이 나온 것이다. 간간이나마 연락하고 사는 친구들 20여명 가운데 바람을 피우거나 세컨드가 없는 꺼병이는 나를 포함해 단 셋이다. 세상이 이렇다!

지난 번 마광수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기사에는 안 썼지만 한 가지 동의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결혼 얘기다. 마 교수는 결혼을 인생 종장으로, 나는 결혼을 남자의 마지막 희원(希願)으로 여긴다는 차이 때문.

그 여자, 내가 만난 최고 미인

동해시 명물 천곡천연동굴. 우주를 떠받친 형상이 일품인 ‘샘실신당’이다.
동해시 명물 천곡천연동굴. 우주를 떠받친 형상이 일품인 ‘샘실신당’이다. ⓒ 이동환
저렇게 흘러내리기까지, 저렇듯 쌓아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저렇게 흘러내리기까지, 저렇듯 쌓아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 이동환
동굴 들머리에 전시된 외국 기석들. 위 그림  왼쪽→오른쪽, 밑 왼쪽→오른쪽 순으로, 블루아케이드(아르헨티나) 수정청마노(아르헨티나) 자마노(인도네시아) 아케이드(콜롬비아)
동굴 들머리에 전시된 외국 기석들. 위 그림 왼쪽→오른쪽, 밑 왼쪽→오른쪽 순으로, 블루아케이드(아르헨티나) 수정청마노(아르헨티나) 자마노(인도네시아) 아케이드(콜롬비아) ⓒ 이동환
1992년 가을. 한 여자를 만났다. '이선생 왜 장가 안 가?'하며 늘 관심을 보이던 모 고서점 사장이 소개한 여자다. 나보다 여자 나이 셋(당시 서른다섯)이 많았다. 더구나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이선생 같이 자유분방한 사람한테는 이해심 하나 끝내주는 여자가 제격일 거야'라는 소개자 말에 수긍했고, 그예 인사동에서 만났다.

첫 인상? 이십대 초반인 줄 알았다. 다리만 절 뿐,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였다. 더구나 빼어난 미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얼굴보다는 몸매에 관심 있었는데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첫 만남에 무려 여섯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박식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였다. 나처럼 바이올린 음악을 좋아하고 워즈워드의 시를 암송하며, 모딜리아니나 고갱보다 칸트가 왜 모자란 존재인지를 읊을 줄 알았다. 시쳇말로 첫 눈에 '뻑' 갔다.

묵호항은 꼭 어머니 품 같다. 뒤바람 따라 콧속을 파는 갯내가 차라리 싱그럽다.
묵호항은 꼭 어머니 품 같다. 뒤바람 따라 콧속을 파는 갯내가 차라리 싱그럽다. ⓒ 이동환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꽤 눈에 띄는 항구 시장.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꽤 눈에 띄는 항구 시장. ⓒ 이동환
오징어가 지천이다. 왼쪽 손가락 두 개 둘레 오징어는 40마리 만 원(평일 50마리), 오른쪽 어른 팔뚝만한 오징어는 5마리 만원(평일 8마리)이란다. 장사 좀 되시냐고 주인에게 물으니 해가 갈수록 힘들단다. 주말에만 간신히 밥 먹는다고.
오징어가 지천이다. 왼쪽 손가락 두 개 둘레 오징어는 40마리 만 원(평일 50마리), 오른쪽 어른 팔뚝만한 오징어는 5마리 만원(평일 8마리)이란다. 장사 좀 되시냐고 주인에게 물으니 해가 갈수록 힘들단다. 주말에만 간신히 밥 먹는다고. ⓒ 이동환
연극이다 음악회다 함께 다니며 몰큰몰큰 사랑이 무르익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어머니한테 말씀을 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선택을 당연히 들어주실 줄 알았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

그때 처음 어머니에게 대들었던 것 같다. 같은 삼팔따라지끼리 결혼해 이남 땅에 피붙이 하나 없이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신 어머니 심정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설득과 협박(?)을 번갈아도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반대로 나를 협박하셨다. 너 그 꼴 보기 전에 어미 먼저 죽겠노라고(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어른).

망상해수욕장. 주말이라 간간 연인들이 눈에 띈다. 모래밭에 다정한 발자국이 널려 있다. 애틋한 기억과 내 미래에 대한 상념으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연인들이 사진 찍어달라며 나그네 조용한 꼴을 못 본다.
망상해수욕장. 주말이라 간간 연인들이 눈에 띈다. 모래밭에 다정한 발자국이 널려 있다. 애틋한 기억과 내 미래에 대한 상념으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연인들이 사진 찍어달라며 나그네 조용한 꼴을 못 본다. ⓒ 이동환
추위 따위 괘념 않고 한 시간 가량 서 있었다. 겨울바다, 그 의미를 가슴에 새겨본다.
추위 따위 괘념 않고 한 시간 가량 서 있었다. 겨울바다, 그 의미를 가슴에 새겨본다. ⓒ 이동환
어쩔 수없이 여자에게 사실을 얘기해야만 했다. 어머니와 전쟁 치르느라 두어 달 지친 끝에 나도 포기 심정이었다. 용기 없는 나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줄래요? 사실 몸이 이렇다 보니…, 태어나서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나를…, 바다에 데려다 줘요. 이별여행이라도 좋고…."

동해역에서 묵호항 갔다가 망상해수욕장까지…. 1993년 1월을 그 여자와 그렇게 보냈다. 참 많이 울었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죽는다면 다 어머니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기억뿐, 추억은 없다

1993년. 어머니 등쌀을 못 이기고 스물두 번이나 선을 봤다. 그래서 만난 여자가 지금 잉걸엄마다. 20대부터 결혼 전까지 꽤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모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 종착역이 잉걸엄마다.

이 글을 읽으며 혹자는 '나쁜 시키'라고 하실지 모른다. 할 말 없다. 난 잉걸엄마를 처음 본 순간 그 여자를 싹 잊었으니까. 대신, 결혼 후 나는 일회용 기회라도 딴 눈 안 판다. 중요한 건 혹자의 의심이 아니다. 내 아내가 나를 믿으니까.

결혼 전 방황이야 그렇다 쳐도 요즈막 우리네 결혼풍속도가 심상치 않다. 툭하면 이혼이다. 내 생각에 여자보다 남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연속기사 첫 글에도 썼지만 '수컷본능'을 무슨 훈장처럼 여기는 풍조가 큰 이유다. 인류를 지속해 온 건 결혼이다. 결혼 폐해? 그거 다 남자들이 만든 거다. 조선조 사대부들 행위깨나 들춰보면 못 된 전통 안 보이나?

이 글 쓰고 욕깨나 먹을 줄 알지만 내 속내니 어쩔 수 없다. 이 연속 기사 먼저 치 댓글에 후배가 안 그래도 한 토 달았더군. 너무 솔직한 게 탈(?)인 잉걸아빠 어쩌고…. 이왕 욕먹을 김에 한 마디 더 하자.

여자들이여! 남자의 사랑고백 따위 믿지 말 것! 책임과 약속을 다 하겠노라 하는 말만 간신히 믿어 볼 것! 남자란, 아니 수컷이란 어차피 한 여자에게만 평생 눈길 머물지 못하는 동물이므로.

덧붙이는 글 | 11월 말부터 나는 들떠 있었다. 3년여 만에 황금휴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나갈까? 어디 좋은 데 없나? 이런저런 계획을 짜던 나는 결국 포항에서 시작해 해안선을 따라 북진여행을 하기로 했다(하루 15km씩 걷고 나머지는 차로 이동). 한겨울에 도보여행이라니 주변에서는 걱정 일색이다. 내가 속한 지역모임에서는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어쨌거나 나는 12월 5일(화), 서울역에서 아침 7시 40분발 포항행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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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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